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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4.11.07 23:31
조회
3,448

제목 : 빼앗긴 자들

작가 : 성 데네브

출판사 : 문피아

* 들어가며.
  작가님의 요청에 따라 이곳에 비평을 공개합니다.
 파라독스 사의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이하 크킹)를 기반으로 쓴 소설이라고 해서 무척 기대했었습니다. 어쨌든, 성 데네브님이라는 파라독스의 노예 동지를 뵙게되어 무척 반갑네요. 전 호이나 유로파를 즐기지만 크킹도 진정한 타임머신 중 하나죠. 일단, 저도 리얼리티라는 환상에 빠져들길 좋아하는 한 사람의 몽상가로서… 성 데네브님의 시도를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대가 큰 만큼 당연히 그에 대한 아쉬움도 생길 수밖에 없죠. 크킹을 기준으로 잡으시면서 그에 맞게 강도 높은 개연적 설명이 필요하게 되어 버린 셈이죠. 소설의 리얼리티라는 거대한 사기극을 위해선 그만큼 치밀한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다른 팬터지류 소설과 비교하여 이 소설만의 장점을 여기 게시하진 않겠습니다. 잔혹한 장면에 대한 작가님의 묘사가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또 각각의 소재를 활용하는 상상력은 정말 기상천외했거든요. 다만 그것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제시되지 않아 독자에게 부당함을 불러일으켜 설득되지 않았던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럼. <빼앗긴 자들>의 스토리라인을 시놉시스화해서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 보고 제 개인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문제점을 분석한 후 4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는 전적으로 저라는 한 개인의 취향에 기반한 주관적인 평가에 불과하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특히 이 글의 비평 기준은 현재 장르 시장의 대세와 조금 다를 수도 있기에 크게 신경쓰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인기 요소는 개연성이나 고증과 별로 상관없어요. 고증 부분에 대한 비평은 그냥 이런 생각도 있는가 보다 정도로 참고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현황 (어느 한 독자의 눈에 비친 시놉시스 라인)
  1) 왕국이 있습니다. 음. 약한 나라인 거 같습니다. 왕자가 있습니다. 왜 반역을 했는지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만, 일단 아버지인 왕에게 반역을 했는데 실패했고 생포당했습니다. (주인공의 동료들은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왕자는 똑똑하고 용감하지만 아버지인 왕은 아둔하고 겁쟁이인지라 반역은 결코 실패할 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실패했죠. 일단 왕자만 심판을 받습니다. 아버지 옆에 있는 정체불명의 검은 로브의 사나이가 의미심장하게 주인공을 바라봅니다.
 
 2) 유일한 후계인 왕자는 대단한 처벌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반역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제 생각엔 반역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정통성을 갉아먹어 귀족들에게 명분을 제공할 거 같지만 어쨌든 그런 모든 걸 처리할 계획이 나름 되어 있겠죠.) 하지만 뜬금없이 왕은 자기 아들을 거세형에 처합니다. 자신의 유일한 후계자인 아들을 말이죠.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것도 검은 로브의 영향인 거 같습니다.
 
 3) 그런데 진짜, 거세당해버립니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용감한 왕자는 고자가 되었고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 왕자 앞에 드디어 검은 로브가 나타납니다. 스스로를 추방된 쌍둥이 동생이라 밝힌 검은 로브는 '오래된 신'을 섬기며 그 신은 무척 관대해서 섬기기만 하면 대단한 권능을 내려주는 거 같습니다. 여하튼 왕자의 쌍둥이 동생은 세계를 뒤엎을만한 대단한 마법사인 거 같습니다. (저도 좀 섬기고 싶군요. 쳇.) 고자가 된 주인공의 상처를 치유해주지만 남성을 치료해주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검은 로브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자 그날 왕이 바로 죽어버립니다.(검은 로브의 쌍둥이 동생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귀족이라면 반역이라는 흠집을 문제삼아 정통성 논란을 일으켜 볼 시도를 하겠지만 어쨌든 귀족들은 그런 고자 남자 칼레인을 왕으로 인정합니다. 고자니까 후계가 없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죠.
 
  4) 이야기는 진행되고 검은 로브는 왕이 된 칼레인에게 자신이 그의 쌍둥이이며 칼레인이 왕자로 편하게 먹고 자라는 동안 불길하다는 이유로 쫓겨나 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다가 '오래된 신'의 종교를 만나 그렇게 대단한 힘을 얻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분명 지옥을 맛보았겠죠. 독자로선 아직까지 추측만 허용됩니다. 여하튼 그 검은 로브는 주인공을 깔끔하게 치료해줄 정도의 권능을 지녔지만 정작 자신의 나병은 고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5) 오래된 신의 종교로 개종한 칼레인은 검은 로브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사생아인 칼리스토를 인지(자신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합니다. 또 귀족들의 불만을 알수 없는 힘으로 깔끔하게 처리하고 이단 종교 취급을 받는 오래된 신의 종교를 받아들이며 불거진 기존의 종교, 아타나시우스 교단과의 불협화음도 말끔하게 처리합니다. 기존 대주교도 쫓아내 버리죠.
  이때부터 찌질했던 칼레인은 멋진 모습을 갑자기 확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고자가 되면서 절망에 빠졌던 칼레인은 아들의 재롱을 예뻐하며 아들 바보가 됩니다. '오래된 신'의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제 고자왕 칼레인의 작은 왕국는 새로운 활력을 얻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6) 하지만 잠깐의 행복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죠. 평소 호시탐탐 왕국을 노리던 세오덴과 나르셀 백작이 쳐들어 옵니다. 1,000 vs 10,000의 규모. 10배가 넘는 압도적인 적의 무력 앞에 칼레인은 농성을 선택하지만 3일만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모든 건 선대 왕이 너무 허약했던 탓이죠.
  칼레인의 아들인 칼리스토는 다섯 살 아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마법의 능력을 지녔죠. 그건 바로 그 오래된 옛 신의 사제인 쌍둥이 동생이 신의 권능을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다섯 살 아이가 미래도 조금 보는 거 같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병사들의 사기도 복돋아 줍니다.  검은 로브의 쌍둥이 동생은 그 아이가 전쟁의 승패를 쥔 아이라며 넌지시 복선도 던집니다.
 
 7) 하지만 비극이 일어납니다. 쫓겨난 대주교의 음모에 의해 칼리스토가 잔인하게 칼로 난자당해 죽게 되죠. 폭주한 칼레인은 죽은 아들의 힘을 잠시 빌려 모든 걸 부술 기세로 나아갔지만 뭐 해보지도 못 하고 화살에 맞고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또 다시 검은 로브의 쌍둥이 동생이 나타납니다. 이번엔 상처를 치유해주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의 의문도 풀어주고 이번엔 주인공의 남성성도 회복시켜줍니다. 음. 그래도 자신의 나병은 치유할 수 없는 저주인 모양인지 모든 걸 칼레인에게 넘겨주고 그는 죽습니다. 정확히는 죽는다기 보단 칼레인과 하나가 되기로 합니다.
 
 8) 칼레인이 세오덴과 나르셀에게 강대한 마법을 활용해 통쾌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신의 권능을 쓰는 한 인간의 분노는 무섭습니다. 일부로 약한 척을 하며 여유를 부려 상대를 기고만장하게 만든 다음 가장 처참한 꼴로 추락시킵니다. (그러니까 이 판타지의 세계에선, 신은 가려가며 섬겨야 하는 거 같군요. 제대로 된 신을 섬기지 못 하면 그 어떤 노력을 해도 한 순간에 파멸할 테니까요.)

 

* 여기까지가 1부 칼레인 계의 끝입니다. 2부는 아직 진행이 별로 되지 않았기에 패스. 
 
2. 문제점 분석
 1) 주인공
  칼레인의 얼굴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성데네브 작가님이 거세라는 폭력이 지닌 충격력 때문에 거리 두기를 시도하신 거 같은데 현대의 독자들에게 그런 것쯤은... 제 짧은 생각으론 칼레인과 주변 인물의 생김세에 대한 묘사를 조금만 더 추가한다면 아마 조금 몰입도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칼레인은 똑똑하다고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보기엔 정말 바보로 보일 겁니다. 국왕이 시행한 거세형에 대한 의문은 칼레인의 자존심 때문에 시행된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저 멍청이는 상황 파악도 못해서 저렇게 손해보는 데 똑똑해? 하는 느낌이죠.
  그런 칼레인은 또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대단한 정치적 수완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자존심 센 왕자, 자애로운 아버지, 장난꾸러기 청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 등 너무 많은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컨셉을 확실히 정해 그 성격에 걸맞게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좋을 거 같습니다.
 
2) 구테타
  중세 왕국에 있어서 정통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암살이라면 모를까 구테타가 의미가 있을까요? 공작이 나오고 백작이 나오는 걸 보니 전형적인 봉건제 사회 체계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봉건 귀족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귀족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문제이죠.
  왕을 때린다는 건 귀족이 힘을 모아 왕을 때린 자신을 때려도 별 문제가 없다는 걸 의미하게 됩니다. 정변에 성공하고 왕위를 계승한다 한들 칼레인이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겁니다. 귀족들은 정통성을 문제로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게 될 겁니다. 게다가 중세 왕국은 현대의 정부와 같은 거대한 행정 체계가 수립되어 있는 국가는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큰 일들은 왕과 귀족들이 모여서 서로 토의하며 진행될 것인데 기회라는 추상적인 보상 때문에 확실한 자신의 정통성을 낮추는 반역의 시도는 몽상가의 일이 되어버립니다. 칼레인은 자기 얼굴을 스스로 세게 때린 셈이죠.
  또 첫 화의 왕과 왕자의 대화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반란이 진압당했고 왕자는 잡혔고 딱히 세상을 포기한 것도 아닌데 왕 앞에서 막 나가죠.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요. 반란죄를 저지른 자와 군주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한테 응석부린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기묘해요. 적어도 그런 모습은 귀족들이나 신하들 앞에선 보여줘선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반란은 혼자 일으키는 게 아닐 텐데 동료들은? 어디론가 증발한 느낌이랄까. 설명을 안 해줘도 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눈알이 뽑혀나가거나 고문을 받는 동지들이 있다면 더욱 긴장감 있는 현장을 만들 수 있겠죠?
 
3) 거세형
  칼레인은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의료 기술이 발달한 현대와 다르게 고, 중세는 왕족이라 해도 오래 살지 못 했습니다. 모멘토 모리.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몰라요.
  괜히 고대의 남자들이 이곳저곳에 씨를 뿌리고 다니려고 발악한 게 아닙니다. 고대 왕국에서 갖는 후계자의 중요성으로 볼 때, 거세란 건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형벌입니다. 형제나 사촌 등이 무지막지하게 많지 않다면요. 차라리 눈을 빼앗았으면 몰라도. 아들을 거세한다는 건 한 유전적 자살과 마찬가지잖아요?
 쌍둥이가 살아 있어서 괜찮다는 건 보류해두시길. 보두앵 4세의 경우도 나병인지라 후계자가 없었죠. 현대 의학에 대해선 잘 모르기에 나병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중세의 왕이라면 나병 환자를 두고 신체 건강한 칼레인을 거세시키진 않을 거 같아요. 적어도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테니 그걸 설득시키려면 다양한 장치를 미리 심어둬야 할 것입니다.
   첫 화에 드러나는 왕의 생각으로 볼 때, 저 검은 로브의 계략이나 음모로 차후 설명되는 장치라 여겨지는데 제가 보기엔 독자의 의문에 대답하는 방식이 추가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야 그 의문은 당연해. 근데 조금 있다 설명할거야 기다려 보라니까?’의 느낌 말이죠. 그리고 차후에 쌍둥이 동생이 마법을 부려 모든 걸 해결해주었을 때 느낄 독자의 허탈감은 어찌하실 겁니까. '너네 왜 거세당했는지 궁금했지? 사실 마법사가 있지롱~' 이렇게 되어버리거든요.
  마법이 나쁘단 건 아니지만 훌륭한 마법이 되려면 먼저 규칙이 주어지고 독자가 그 규칙을 아주 잘 알며 그것 이내에서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티의 추구를 장점으로 내세우신다면 그만큼 더 많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정밀 기계가 될수록 단 하나의 나사만 빠져도 삐걱거리게 되거든요.
 
4) 공성/농성
 10,000 vs 1,000의 농성전. 3일만의 항복. 공성 무기를 제작하는 데만 3일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성벽이 어느 정도인진 몰라도 정말 낮은 성벽이거나 공성군의 투석기가 대포 이상의 힘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중세 역사 중에서 제대로 만들어진 석조 성이 물리적인 직접 공격에 의해 함락당한 적은 딱 3번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간단한 모트 베일리 요새조차도 함락시키기 위해선 엄청난 희생을 치르어야만 했습니다.
  콘스탄틴노플 함락의 경우도 10배의 전력 차를 50일이나 버텨냈죠. 그것도 500kg의 석환을 쏘아내는 8M짜리 초거대 청동포-우르반 포가 하루에 4번이나 불을 뿜었음에도 말이죠. 그것도 결국 성벽을 못 뚫어서 배를 육지로 옮기는 등 오만 쇼를 벌여서 간신히 정복한 겁니다.
  강선 및 후장식 대포가 개발되기 전의 대부분의 공성은 좌절되었고 주로 포위하여 성의 비축식량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17명의 수비병이 3천 명의 공성군을 3달간 버텨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성벽 위의 적을 공격한다는 건 정말로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총안 속에서 공격을 하는 수비군을 화살로 사살한다는 것도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고요.
  게임에서 묘사되는 공성은 현실과 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성벽이 아주 낮고 해자가 얕아 큰 쓸모가 없다는 서술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트레뷰셋이나 투석기, 그리스의 불 등 대단히 강력한 무기들임이 분명하지만, 도시 국가들의 힘이 꺽이고 중앙 국가로 편입되는 시기가 영국제 주조 철포의 보급 이후란 걸 상기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아니면 리얼리티의 형성을 포기하시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라티움-그리스인이 화낼 거 같습니다-의 불의 위력이 네이팜급이라던가 아니면 말 그대로 D&D식 마법의 체계로 화력을 강화한다던지 그게 아니라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적 지식에 의존한다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 같더군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예루살렘 성을 참고하신 거라면 그건 군사 전문가들에게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은 장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벽의 특정 부분이 무척 약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요. 반지의 제왕 공성전이야 유명하지만, 오크와 엘프의 판타지 세계 전쟁입니다. 현실과는 많이 다르죠.
 
3. 제안
 1) 거세 공포로 긴장감 주기
  거세 공포는 말 그대로 공포로서 작용하는 것이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린다면 원래 가지고 있던 공포로서의 매혹이 깨어지고 말아요.
  수많은 아버지들은 널 거세하겠다는 위협을 사용해 아들로부터 어머니를 지켜내며 아버지의 규칙과 사회의 법을 아들의 몸에 아로새기죠. 그렇다고 진짜 잘라버린다는 건 그만한 대체제가 있거나 그래야만 하는 강력한 동기, 즉 남자의 번식욕 이상의 어떤 고귀한 이상 정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진 그런 게 잘 드러나지 않는군요.
  이런 공포가 소설 전반에 걸쳐 긴장감을 형성하기 위해선 공포의 정체를 숨겨놓으셔야 합니다. 검은 검집 속에 모셔져 있어야만 합니다. 공포 영화에서 괴물이 제 아리따운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보여주면 누가 무서워하겠습니까. 물론 공포라는 요소를 염두해 두시지 않았다면 별 문제가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2)를 받아들이며 이러한 거세 공포에 대한 긴장을 처음부터 복선으로 은연 중에 깔면서 나중에 그 멋진 거세 장면으로 한방에 터트린다면... 100만V급 전율을 우리들에게 선물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작가님~ 어떨까요?
 
2) 소설의 시작 시점 당기기
  이 소설의 시작이 칼레인 왕자가 음모를 꾸미는 것에서부터였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 째. 주인공에 독자들이 몰입할 건덕지가 생깁니다.
 '아버지를 엿먹이자.'
  물론 차지할 어머니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내면에 숨겨진 오이디푸스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시나요?
 둘 째. 반란의 당위성이 설명됩니다.
  지금 작가님이 설명하신 것이 무조건 당위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설득이란 다른 차원의 요소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편을 가릅니다. 전 삼국지 읽을 때 늘 유비편이었거든요. 때론 조조편이 되기도 하지만요.
  만약 독자들을 칼레인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거세 당했을 때의 부당함은 정말로... 폭발할 겁니다. 지금 쓰신 그 장면 그 자체로 보면 최고예요. 하지만 뭔가 밋밋하죠. 그래? 주인공이 거세당했어? 음? 그렇구나. 그게 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칼레인을 응원하지 않거든요.
 셋 째. 마법이 사라집니다.
  마법이 마법인 이유는 뜬금없고 곤혹스러운 모든 개연적 설명들을 마법으로 처리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법이 독자와 세계 속의 인물들이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규칙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마법 또한 개연적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3) 소설의 진행 시점 전환
 빼앗긴 자들을 보며 칼레인이 아니라 칼리스토가 주인공이었으면 어떨까 종종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둘을 번갈아 가며 주인공으로 내세우던가요.
  첫 째. 개연성을 부여해줄 기회가 생깁니다.
  위와 같은 이유입니다. 3인칭인만큼 주인공을 둘로 해도 좋을 겁니다. 왕자의 바보짓을 어둠 속에서 케어해주며 현재 빼앗긴 자들에서 '마법'으로서 설명되고 있는 모든 것에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것이죠.
  둘 째. 삼인칭 시점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칼레인이 음모를 꾸미고 다른 한편 칼리스토가 그걸 파훼하며 사건이 진행한다면 칼리스토의 마법에 대해 독자에게 설명해줄 기회가 많아집니다. 적어도 독자들이 도대체 칼리스토가 무슨 짓을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죠.
  셋 째.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라 크킹식 정쟁을 추가로 묘사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또 그 두 쌍둥이가 동상이몽을 꿈꾸며 왕국을 음모의 거미줄로 얽고 섥는 모습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독자에게 다가올지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물론 여기서 독자라 하면 제 취향의 독자 얘깁니다.
 지금은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정보가 너무 적어요. 그리고 그게 모두 칼리스토의 마법으로 처리되죠. 물론 그 모든 게 나중에 언젠간 다 설명되리란 건 압니다. 정보의 누수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는 흥미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사안이죠. 하지만 그건 흥미를 기준으로 잡고 물줄기의 세기를 조절할 일이지 물줄기의 세기 자체에 집착하시면 안 됩니다. 칼리스토의 마법이 독자에게 적당히 받아들여질 정도는 풀어주셔야 사람들이 차후 전개를 따라갈 거 같아요.

 

4) 전개 방식의 표준화
글 전체에 흐르는 구성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온갖 복잡한 문제의 등장 -> 마법 -> 해결. 이라는 마법같은 구도 자체를 선호하시더군요. 물론 그런건 취향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해서 약간의 기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ex) 4클레스의 고비에 막혀 있던 칼레인. 특히나 오래된 신의 신도가 됨으로서 아리스타나의 마법과 충돌하여 더는 힘을 못 쓰게 된다. 설상 가상, 적들이 쳐들어 왔고 막아낼 힘이 없는 칼레인은 항복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쓰는 마법과 같은 힘을 보다가 번뜩이는 깨달음을 얻는다. 적의 공성 무기가 라티움의 불을 도시에 쏟아내는 위기 상황에 칼레인은 폐관 수련과 같이 깊은 명상에 잠긴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마법의 힘과 오래된 신의 힘의 근원을 깨닫고 서로 병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칼레인. 하지만 그 사이 도시는 함락직전. 게다가 아들 칼리스토가 음모에 휘말려 죽었다는 걸 알게 되고...
분노한 칼레인은 마법과 오래된 신의 힘을 사용하여 복수를 시작한다.

 

위 시놉시스가 작가님의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저런 방식이 독자들에게 친숙한 표준적인 먼치킨식 데우스 메키나 구성이란 거죠.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되어가는 원리와 원칙이 해결 방법에 통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감탄과 놀라움은 신기한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영역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한 건 아예 이해 불가능의 영역이 되어버려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어집니다.

 즉, 독자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심어주기 때문에 어떤 놀라운 일이 터져도 감탄할 수 있는 거죠. 그러한 기대를 벗어나면 '기도 안 차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아주 살짝, 예측이 가능해야만 감탄의 재미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를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스포츠의 규칙 내에서 괴의한 일들이 일어나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죠. 메시가 마법같은 드리블을 해야 재미있는 거지 누가 손으로 축구공을 쥐고 럭비하듯이 달려서 이겼다고 한다면 축구 아무도 안 볼겁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도 데우스 메키나는 그런 식으로 활용되었을 겁니다. 관객들도 상황을 알아요. 아, 이 상황에서 신이 나오겠구나. 하지만 궁금해하죠. 제우스가 나와서 벌을 줄까? 아니면 헤라가 나올까? 어라? 마르스가 나와서 깽판을 치네! 이런 식이란 거죠. 하지만 갑자기 거기서 조로아스터 교의 마트라가 나온다면요? 에이 그게 뭐 하는 놈이야. 뜬금없네. 하게 되는거죠.


 * 리뷰&비평 후기.
 당연히 저보고 적으라면 그렇게 재미있게 못 적습니다. 그렇게 할 줄 알면 이미 돈 많이 벌는 유명한 베스트 작가가 되었겠죠. 원래 남의 티끌은 제 머리에 묻은 똥보다 더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부디 제 부당한 폭력적 독해을 용서해주시길.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는 오로지 제 개인의 제멋대로인 취향에 근거한 아주 주관적인 평가에 불과합니다. 다만 홍보하실 때 크킹은 내세우지 않으시는게 좋을 거 같습니다. <빼앗긴 자들>은 크킹의 요소를 많이 차용해서 무척 흥미롭지만 고증이라는 핵심 메커니즘을 빼앗으셨으니...어쩌면 제목 그대로 이 모든 것이 작가님의 계산대로였던 것일지도. 



Comment ' 2

  • 작성자
    Lv.28 Thursday
    작성일
    14.11.09 18:47
    No. 1

    남성은 빼앗아도 개연성은 뺏지 말아요! 라는 타이틀이 왜 이리 귀여울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순수국산
    작성일
    14.11.22 17:03
    No. 2

    난 역사를 공부하고 싶지 않아.
    소설을 읽고 재미를 느끼고 싶은거지.
    라고 생각했던 글.
    정보가 너무 많아 힘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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