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단점들이 그 빛을 가립니다.
첫번째로 소설 특성상 주인공이 영생할 수 없고 결국 제목처럼 연대기 형식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이게 독자의 집중을 흐트러뜨리게 됩니다. 마치 다른 평행세계의 국사책을 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작가 나름대로 김세훈의 가계 인물들과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 시켜가며 대화체를 구사하기도 하지만 인물 그 자체를 다루는 대부분의 소설에 적응된 독자들에겐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차라리 역사를 좀 더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인물을 중점적으로 부각 시키고 세훈을 1부로, 현도를 2부로, 서윤을 3부로 가져가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식으로 쓰자면 21세기까지 한 10년은 걸리겠지만요. 이런식의 단점은 역사를 폭넓게 조명하기 힘들고 다른 역사적 인물을 함께 다루기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만 플롯을 어떻게 구성하냐에 따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능력도 충분하고요.
두번째는 대한제국연대기의 장점이자 단점인 실제와 비슷한 세계역사흐름입니다. 작가의 풍부한 역사지식과 경제,산업,정치 등등 발전사에 대한 그럴듯한 설정과 고증은 이 작품의 미덕입니다만 그로인해 앞으로의 진행상황이 뻔히 보이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거의 현실의 영국과 같은 포지션인데 보스턴 차사건으로 인한 영주(미국)의 독립같이 현실 역사를 소설에 맞게 녹아낸 사례는 흔한 대체역사 소설에서 흔히 보기 힘든 이야기지만 이후 흘러가는 세계사는 마치 상황만 조금 다른 현실의 역사서적을 보는 기분을 받게 하기도 하지요. 예컨데 14권을 덮는 순간 굳이 2부를 보지 않아도 ‘아 북해는 독립할 것이고 한국은 쇠퇴일로를 걷다 흘러간 제국으로 남을겠구나, 그리고 남은건 세계대전 뿐이네' 정도? 현실 역사보다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적당히 분열되어 국가가 좀더 많아진 상태로 굳어지는 것 외엔 흘러갈 수순이 어느정도 보여서 뒷내용에 대한 흥미를 충분히 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부에서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작가의 성향을 미루어볼때 대한제국이 다시 강성하거나 어떤 나라가 역사를 주도할 것 같지 않더군요.
이게 좀 이 책의 근본적인 문제인데 대체역사물을 보는 독자층을 휘어잡지 못하고 절반은 재미없다고 떨어져나가는 이유기도 하죠. 대체역사물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사실 좀 이율배반적인게 내용이 현실같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나라가 겪었던 과거의 피해사실을 보상받길 바라는 마음이 크거든요. 김진명씨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성공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지요. 비명을 찾아서 같은 경우야 뭐 장르소설이라기 보다 순문학에 가까우니 좀 열외로 놓고 보자면 결국 대한제국연대기는 이도저도 아닌 소설이 되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어떤면에선 굉장히 사실적인 이야기지만 민족적인 감정과 인물에 대한 대리만족을 재료로 팔아먹는 대체역사물로선 실패라고 봐도 다르지 않지요.
물론 그렇다고 ‘결국엔 대한제국이 지구를 정복하고 자손들은 대대손손 하하호호 잘먹고 잘살았다’로 끝내는건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가깝지만 작가가 너무 연대기라는 형식에 충실한게 그냥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의 설정은 단순한 서사적 나열이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배경으로서 간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쓴다고 설정의 낭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 행간의 내용을 개연성있게 받쳐주니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큰 손해가 아니거든요. 대한제국연대기의 아무리 튼실한 설정도 이것이 그저 역사의 나열이라면 현실의 역사서적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지역의 어떤 왕조가 어떤 정책때문에 갈등이 있었고 반란이 일어났고 그로인해 새로운 정치가 들어섰다’ 에 대한 설명이 딱딱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쓴 만연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그것이 정말 소설이 아니라 단순한 설명문 같이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작가는 지구 전체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싶어서 이런 선택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이런 방법뿐이 없었는지...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좀 아쉽네요. 작가 본인이야 그렇게 쓰고 싶어서 제목부터 연대기라고 지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면은 좀 불호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점을 떠나서 대체역사물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긴합니다. 이만큼 개연성있게 쓴 대체역사물이 흔하지 않으니까요. 솔직히 웬만한 타 대체역사물들은 굳이 이렇게나마 언급하고 싶지도 않을정도로 엉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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