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최후식
작품명 : 용병시대
출판사 : 청어람
*편의상 반말을 사용하겠습니다 양해를.
용병시대는 의도적으로 외면한 작품이다. 표류공주의 아릿한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멍청한 머리가 '최후식'이라는 이름을 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은 그 먹먹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이상 다시는 최후식 작가님의 작품을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책을 붙잡으며 오열하는 바보 같은 상황은 한 번이면 족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책방에 들어서면 항상 보이는 것은 '용병시대'였다. 너 도대체 뭐냐? 도대체 무엇이길래 내 눈길을 이렇게 붙잡는 거야? 스스로 바보같은 말을 던져보며 애써 여러 책을 빌렸지만 항상 내 걸음의 범위는 용병시대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용병시대는 나의 시선을 받을 때 마다 자기를 품으며 나를 붙잡을 준비를 했었나 보다. 나는 어제 드디어 용병시대에게 백기를 내 걸며 그의 몸을 붙잡았다. 네가 이겼어. 많은 사람을 거쳐간 듯 꼬질한 때가 타 있는 두툼한 책의 질감은 언뜻 그리운 기분마저 들었다. 2권의 책.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애매한 느낌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최후식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가 준비한 일련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책을 덮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오리 사냥법'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월인 작가님의 '두령'을 기억 하는 분이 계실까? 월인 작가님은 두령의 초장에서 늙은 원숭이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것은 두령을 지탱하는 뼈대이자 두령이 두령일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늙은 원숭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두령은 천상 두령일 수 밖에 없는 자의 어리석을 만치 따스한 정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심성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며 그가 두령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우매한 독자는 장천호가 왜 장천호인지, 그가 어째서 두령인지 4권의 짧은 글에서 납득할 수 있었다.
용병시대도 그러하다. 초장에서 화자는 오리를 사냥하는 자를 성인으로 대접한다고 하였고 작가는 두 명의 이방인을 등장시켜 오리 사냥 법에 토론케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인으로 대접한다는 것과, 어떻게 하면 오리를 잡을 수 있느냐에 대한 방법이다. 낯선 용병은 콩과 참기름을 통해서 오리를 잡는 법에 대해 말하였다. 하나의 콩을 삼킨 오리가 그것을 배설해 내면 다른 오리가 그것을 먹고, 또 다른 오리가 그것을 먹고, 또 다른 오리가 그것을 먹어 종내에는 모두가 콩에 연결된 실에 사로 잡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용병은 얼마나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던가? 그 때쯤 너는 실만 잡아 당기면 되는 거야.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오리를 잡는 법을 보여주었다. 용병들에게 있어 바보촌의 사람들은 오리였을 것이고, 그들이 아끼는 막내 지민(화자이자 주인공)의 목숨은 참기름이 발라진 콩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콩을 먹고 배설했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콩을 먹었다. 또 다른 사람이 콩을 먹었고 또 다른 사람이 콩을 먹었다. 종내에는 땅에 떨어진 콩만 남았다. 사냥꾼인 용병은 간단하게 실을 들어 올려 바보촌 사람들을 사냥했다. 오리를 다 잡은 용병에게 있어 이제 지민은 콩일 필요가 없었다. 지민은 다시 오리가 되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그 오리를 사냥할 의무가 생겼다. 하지만 용병은 고심 끝에 지민을 콩으로 놔두었다. 때문에 지민이 스스로가 콩이 되어 오리들을 사냥한 것이 되어 버렸다. 오리를 잡은 지민은 더 이상 어린아이 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인이 되었다. 그가 콩이 되어 바보촌의 사람들을 잡았기에 그는 어린날과 결별을 고할 수 있었다. 작가는 오리 사냥법을 통해 지민에게서 어린이를 빼앗았다. 이것이 오리사냥을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이 이상의 비극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직 오리 사냥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민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던 오리들은 이제 지민에게 있어 참기름이 발라진 콩으로 변환되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 그들은 어떻게 나설 수 있었는지 말야. 콩을 삼킨 지민은 스스로를 고통속으로 밀어 넣는다. 파득 파득 날개짓을 하면서 전장을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그의 배 속에는 아직 실이 묶여진 콩이 남아 있다. 그 콩은 '약속'이라는 미명하에 배설이 되어 다른 오리들의 배 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맨 처음 콩을 삼킨 지민은 내부를 날카롭게 베는 실을 따라 다른 오리들을 품에 안는다. 콩과 참기름이 아니야. 오리일 뿐이야. 마치 운명처럼 지민이 삼켰던 참기름 묻은 콩은 다른 오리들에게 전이 되어 간다. 그 속에서 그들은 하나의 운명을 마주치게 되고 함께 날개를 퍼득인다. 심장 옆을 관통하고 옆구리가 베어도 몸 속에 자리잡은 실을 오리가 어쩔 수 없어 하는 것 처럼 지민 역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이 대미를 맞이할 때 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냥꾼은 과연 누구일까? 작가분일까 아니면 지민의 가혹한 운명인 것일까? 혹 그가 상대해야 할 정적인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소름이 돋았다. 표류공주의 결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원하는 오리가 채워졌을 때 사냥꾼은 실을 들어 올려 오리를 망태에 담을 것이다. 그 갑갑한 올가미 속에서 하나의 실로 엮어진 오리들은 푸드덕 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 사냥꾼이 표루공주와 같은 비극을 위한 장치라면 용병시대에 손을 댄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또 다시 책을 붙잡고 오열하며 며칠 밤 낮을 폐인처럼 살아야 한 단 말인가? 깜짝 놀라 용병시대를 저 만치 떨어 뜨려 놓으려고 했었다. 지레 겁을 먹어 책을 멀리하는 것 처럼 우스운 일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무협이지만 무협이 아니요, 판타지지만 형식을 달리하는 판타지, 광할한 전쟁의 서사시, 솜씨 좋은 문체와 내용 전개가 부드러운 용벙시대다, 라는 생각 따위는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에 홀린듯이 다시 용병시대를 들어 처음 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책을 읽게 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용병시대는 콩이었고, 나는 그것을 품에 넣은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도 이 이후로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던지 나는 용병시대에 연결되는 하나의 실에 매달려 그것에 퍼덕이며 목말라 할 것이다. 사냥꾼(작가님)이 풀어 주던지(해피앤딩), 망태기에 담던지(표류 공주와 같은 결말)의 행동을 겸허히 기다리며 말이다.
p.s. 이런 명작은 정말 독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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