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성상현
작품명 : 낙오무사
출판사 : 파피루스
0.성상현, 혹은 크라스갈드와의 첫 인연.
작가 성상현과의 첫 만남은 대략 6~7년 전, 제가 중딩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창 드림워커 홈페이지에서 꾸질거리고 있던 필자는 추첨 이벤트에 당첨되어, 홈페이지 관리자였던 편집자 이 ㄷㄱ님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택배를 뜯어보니, 왠 무협 소설 두 권이 떡~ 하니. 당시까지만 해도 무협소설을 한 번도 읽지 않았던 필자는 '아, 뭐야. 무협소설이네. 판타지로 주지.'하면서도 이 책을 서울랜드까지 가져가 읽게 됩니다.
그 책이 바로 제 인생의 첫 무협소설이었던 '일월광륜' 1, 2권이었습니다. 이후 필자는 성상현 작가의 뒤를 따라 무협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덤으로 이 때 받았던 일월광륜은 무려 작가 사인본... ㄷㄷ;
1.성상현 작가의 전 작품들.
일월광륜(7권 완결) 이후로 필자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상현 작가님 또한 꾸준히 책을 내오셨습니다. '역천'(5권 완결)은 못 읽고 좀 나중에 읽었지만, '낙향무사'(10권 완결)이나 '천년무제'(10권 완결)은 연재되는 동안 꾸준히 읽었습지요.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성상현 작가님은, '완결 권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패기무협'이란 느낌입니다. 처음 읽은 일월광륜 때부터 그런 면모를 느꼈습니다. 디씨 판갤문학이 아닌가 싶었던 낙향무사 때도 완결편인 10권만큼은 전율했구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혹평을 받았다던 역천도 개인적으로는 참 훌륭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천년무제 때는 말할 것도 없지요.
완결권에서, 주인공은 자신으로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적 앞에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지금껏 자신의 노력으로, 지략으로, 힘으로 계속해서 적을 물리쳐온 주인공이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싸우는 진정한 상대는 지금껏 주인공을 괴롭혀온, 주인공이 외면해온, 주인공이 고민해온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굉장한 능력을 지녔던 주인공조차 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 눌려 쓰러집니다. 이대로 포기하거나 현실에 굴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고민, 번뇌를 떨치고 다시 일어섭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위해,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 일월광륜의 주인공, 이현의 대사를 인용해볼까요.
"그것이 의다."
네. 그리고 이것이 무협소설입니다. 성상현님의 무협소설은 언제나 이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 마지막, 완결권에서 보여주는 사나이의 의협. 개인적으로 성상현님을 굉장히 좋아하고 인정하는 이유도 이겁니다. 초반에 잠깐 반짝, 하고 중반부에 에이 뭐야... 하면서도 결국에는 "그래 이게 무협소설이지..." 하고 감탄하게 되는, 그런걸 성상현님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천년무제 완결 이후 몇 달이 지나, 성상현님은 새로운 작품을 출간하게 됩니다.
2.낙오무사.
소설방에 들어서 신작 목록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낙오무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구질구질한 3류 쓰레기 인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미 제목부터가 맘에 듭니다. 낙오무사. 뭔가 인생 막장 삘이 나지 않습니까. 일단 체크.
새로 나온 달빛조각사 38권을 읽고 돌아와, 서가에서 낙오무사를 찾아봅니다. 찾았습니다. 작가를 확인합니다. 아는 이름입니다. 성상현님입니다. 신납니다. 달빛조각사보다 이걸 먼저 찾아볼걸 그랬습니다.
1, 2권을 빼와서 일단 몇 장 넘겨봅니다. 재밌습니다. 계속 봅니다. 좀 놀랍니다. 성상현 작가님이 어느새 이렇게 발전했나? 아, 천년무제 끝무렵에 발전하긴 했었지. 그래도 이정돈 아니었던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습니다. 그냥 재밌습니다. 어느새 1권 다 봤습니다. 2권 폈습니다. 계속 재밌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2권 다 봤습니다. 3권이 없다는 사실이 저주스럽습니다. 으아아ㅏㅏ 미친 절단마공! 당황하지마라, 이것은 마교의 함정이다!
그렇습니다. 낙오무사 재밌어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꼽아보자면, 성상현님이 지금까지 써온 글 중 가장 뛰어난 글이 아닌가 싶군요. 낙향무사 때처럼 판갤문학 쓰느라 개드립 치지도 않고, 더 이상 주인공이 대놓고 깽판치는 뺀질이도 아닙니다. 담백합니다. 그럼에도 재밌습니다. 웃길 부분에선 웃겨주고, 멋있어야할 부분에선 멋있습니다. 문장 필력이나 이야기 흐름 구성, 기타등등 제가 평가할 수 있는 모든 면에 있어서 성상현 작가는 한 단계 진보했습니다.
그래요, 요즘 무협 작가 분들 무공성취하는 속도가 장난 아니게 빠른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요. 어디서 영약이라도 먹고 오셨나, 성상현님은 더 이상 제가 알던 그 작가 분이 아니에요. 갑자기 절세고수로 나타나는건 반칙 아닙니까...!
3.내용 소개.
낙오무사의 이야기는 20년 전, 마교가 망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요즘은 마교 망하면서 시작하는거 많지 뭐... 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갔더니, 어라. 무림까지 망했다는군요. 마교가 망하고 공동의 적이 사라져서 자기끼리 싸우다가 결국 망했답니다. 무림이 망한 여파로 상계에도 대공황이 일어나 같이 망하고, 그러다보니 조정도 망하고, 그런 식으로 중원 전체가 우르르 흔들린 상황입니다. 이건 좀 참신하죠.
주인공은 그렇게 무림이 망하고 난 뒤, 비낙교라는 다리 아래에 모여 사는 낙오무사 중 한 명입니다. 낙오무사 중에도 가장 막장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역시나 망해버린 제갈세가의 아가씨로부터 자신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무림이 망하기 직전인 20년 전에 제갈세가에게 한 번 생명의 빚을 진 상황.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때까지 자신을 지켜달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무림 전체가 망했다는 부분에서 눈치채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배경설정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무림이 망하고 무인들이 대부분 죽은 상황이기에 등장인물 중에는 별다른 고수들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싸움은 대부분 머리 수싸움, 혹은 머릿수 싸움(...)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편끼리도 치열하게 암중모략을 다투는 것이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지요.
여기에 설정 그 자체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존의 무림 방파가 다 망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필사적으로 이를 대신할 방법을 찾아 헤메는 모습. 더 이상 무림인은 찾아보기 힘들고, 자신을 지켜줄 정의의 무림인이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싸워나가는 상대도 사실 무림인이 아닌, 그저 살려고 버둥거리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니 무슨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을 보는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이 설정은 낙향무사 때부터 발전해온 성상현 작가 특유의 '무림시망ㅋ'설정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낙향무사 때는 말로만 무림이 망했고, 천년무제 때는 무림이 한 번 망했다 살아났지만, 낙오무사에서는 무림이 진짜 망했습니다. 읽으면서 이 사실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 주인공은 제갈세가를, 덤으로 무림중원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가. 앞으로 성상현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고 넘어가면 안되겠죠. 낙향무사 때부터 쭉 일관된 패턴을 보이듯 이번에도 주인공은 싸움 잘하고 능력있고 잘 생긴 인생막장입니다. 여기까지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성상현 작가는 변화를 아는 작가입니다. 주인공이 유들유들 뺀질거리는 성격이던 두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놀랍게도 주인공이 개그를 별로 안칩니다. 주인공 혼자 놔두면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겁다는게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훨씬 담백한 맛을 낸다고 표현해야할까요. 그래도 여주인공을 위시한 주위 인물로 웃길 때는 포인트 잡아서 빵빵 터트려줍니다. 여러모로 볼거리가 충만합니다. 결론은 재밌습니다.
4.우려되는 점.
일단은 여기까지 너무 칭찬만 썼다고 말을 들을까봐 우려가 됩니다. ^^; 그래서 이번에는 기존의 성상현 작품군에서 보여줬던 단점들을 몇 개 짚어보고, 뒷 내용에서 우려되는 점을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주인공 주변 등장인물들의 공기화. 이건 꽤나 꾸준한 단점이지요. 무협소설이 원래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설이긴 하지만, 성상현 작가님의 글에서 주인공 주변의 등장인물들은 진짜로 찬밥 신세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낙오무사도 이런 조짐이 벌써부터 보이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위험해요...
다음으로는 힘이 부치는 액션. 이건 일월광륜 때부터 꾸준한 단점이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쓴다지만, 나중가면 점점 힘에 부쳐서 액션 씬 비중이 약해지는 그런 면이요. 성상현 작가님 나름대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같고, 실제로 천년무제 때는 약간이나마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낙오무사에서는 어떨지 걱정이 됩니다. 아직까지는 머리 싸움과 간단히 싸우는 것 만으로도 박진감 넘치는 구도를 만들어냈지만, 뒤로 가면 어떻게 될지...
5.결론.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았지만, 성상현님의 이번 작품 낙오무사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성상현님 글 중에 최고였습니다. 물론 아직 1, 2권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기대할 가치는 무궁무진 하다는 생각입니다. 기대해봅니다. 절세고수를 향해 나아가는 성상현님의 앞날,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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