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5.01.25 21:47
조회
2,843

제목 : 달빛이 머무는 여관

작가 : 만능개미

출판사 : 문피아


 

 제가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으나, 만능개미님께서 제게 요청을 해주셨기에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스토리, 개연성, 사상 등을 모두 판단해볼 것이기에 다수의 스포일러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평은 개나소나 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은 부디, 여기서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1. 간단한 작품 소개


 '달빛이 머무는 여관'은 너무 기니까 '달빛 여관'이라 함부로 줄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관업에 종사하는 어느 30대 남성의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간단하죠? 좀 더 추가하자면, 드래곤 급 마법 능력을 지닌 미소녀 종업원과 소드마스터급 주방장이 게으르고 나타한 평범한 30대 남성이 여관을 잘 꾸려가도록 도와주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2. 복잡한 작품 분석


 까까머리 시절, 국어 선생님께선 소설이란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으로 이루어진댔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여관'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배경부터 뜯어 봅시다.

 

 1) 배경

 

여관 들어가는 소설 중에 기억나는게 박향 작가님의 '에메랄드 궁'이 바로 떠오르네요. 모텔을 운영하는 소시민 부부의 얘기입니다. 모텔을 궁전으로 두고 궁전과 왕자, 공주와 대비되는 쇠락함, 평범함, 인간의 섹스, 이어짐에 수반된 헤어짐 등이 잘 그려진 그런 소설이었죠. 배경의 상징과 스토리 전개와 주제가 삼위 일체를 이루었다고요. 물론 그러니 뭐 여러 군데서 상을 받았겠죠.

 

 어쨌든, 달빛 여관도 여관이란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이상, 그 무대가 여관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겠죠. 그렇다 보니 이 여관의 분위기란 게 작품 전체에 걸쳐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모든 배경엔 성이 있어요. 페미니스트분들 화낼 지도 모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적어도 수천 년간 우리가 그런 상징들을 써 오긴 했으니까요. 공간엔 여성적인 공간도 있고 남성적인 공간도 있죠. '필드'라 했을 때 소녀들이 축구장에서 공기놀이 하는 그림을 떠올리는 사람 잘 없잖아요?

 

 그럼 여관은 어떨까요? 여관하면 사람들 생각하는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쉼터인데 임시적인 곳이죠. 또한 수동적인 곳이구요. 성적으로 바라보자면, 당연히 창녀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누구나 와서 돈만 내면 빼고 가는 곳이죠. 너무 노골적이라 불편하시다고요? 그럼 '여관'이란 상징과 '아내'란 이미지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살펴보세요. 저라면 '여관을 하는 아내'란 상징에 바람, 외도, 불륜을 안 집어넣고는 못 베길 겁니다.
 
 그런데, 이 소설엔 섹스가 없어요. 성행위가 안 나온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걸 보려면 포르노를 보고 말죠. 제 말은 이 소설의 핵심 배경에 'sex'가 없단 뜻입니다. 표현하자면, 거세된 공간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여관 종업원 하다보면 당연히 성적인 행위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에메랄드 궁'의 여주인공 옥희가 그렇죠. 매일 매일 손님이 싸지른거 치우면서 이 새끼들 또 싸질렀내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해요. 아무리 종업원이 위대한 마법 소녀라 해도 여관업을 하는 이상 그런 건 어쩔 수 없단 얘기죠.

 

 그뿐 아니라, 여관의 무성성은 계속 이어집니다. 거세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이는 주인공은 미소녀 종업원에 대해 별다른 감정도 없습니다. 심지어, 미소녀 종업원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치한 손님 한 명 없어요. 물론 드래곤 급 마법 소녀라 치근덕거리는 걸 요리조리 잘 피한다 적혀 있지만, 일단 중세 시대, 여관 여급이라하면 거의 다 창녀 아니었던가요? 적어도 '달빛 여관'만 특수하다 해도, 여관은 단골보단 낯선이들이 많은 장소이기에 늘 언어적 폭력 속에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온유한 성격이라... 제 생각엔 그 미소녀 종업원의 성격이 굉장히 삐뚤어지다 못해 포악해질 것 같은데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웃자고 쓴 라이트 판타지에 창녀가 나올 필요는 없긴 하죠. 허나 그럴 거면 뭐하러 여관을 했는지 의문이란 겁니다. 차라리 '산장' 같은 걸 해서 '내 마누라는 xx', 너네 내 마누라 건들면 죽어!를 쓰셨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제 생각에 만능개미 작가님이 달빛 여관에 뒤집어 씌우려는 이미지는 여관이 아니라 '집'입니다. oh sweet home my home! 이런거요. 그래서 소설의 분위기가 계속 뭔가 뒤틀려요. 중세적 여관의 공간 속에 사건들이 푹 녹아나는게 아니라, 여기 뭔가 이상한 공간이란 느낌이 확 옵니다.

 왜 그런거 있잖아요. 그 옛날 만화책 '용비불패'에 보면 마을 전체가 연극으로 이루어진 그런 암살자 집단이 있거든요. 마을 전체를 세트로 두고 타겟이 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덥치곤 한다죠. 달빛이 머무는 여관에 대한 제 느낌은 딱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더 이상한 거세된 비현실적 공간요.

 

 아마도 그래서 저 여관엔 달빛만 비치는 지도 모르죠. 달빛이 비치고 여관 방의 밤은 익어가고 미소녀가 순수한 미소를 띄며 돌아다니지만 심지어 아무도! 아무런! 시도도차! 안 하는 그런 상황이란 거죠.


 최초의 로맨스조차 여관적이지 않아요. 제 비평이 배경에 대해 너무 집착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사양반과 암살자 미소녀의 짝짓기가 메밀꽃 필 무렾처럼 자연스럽다기 보단 어르신들이 보기 좋으시게 짝을 지어준다는 그런 느낌이란 말이죠. 오히려 그 연놈들, 이 여관에 기어들어와서 신혼 살림을 차립니다. 주인공 발더는 그런 그들을 ‘인정’해주고 품어주는 어르신(아빠)의 역할을 하지요...

 그 부분 이후로부터 전 달빛 여관은 여관이 아니라, 일종의 공동 주택이라 보았습니다. 아, 물론 공중식당 있는 공동 주택요. 아니, 그것도 아니에요. 달빛이 머무는 여관은 대가족이 살고 있는 큰집입니다. 할아버님 발더와 손녀딸들의 애교가 있고 바가지 긁는 마누라와 아들이 함께 살아가는 그런 집이죠.


 이게 저 같은 독자에겐 생각보다 호러로 다가옵니다. 적절할 때 유머가 제시되고 또 재미있어 보이는 사건들이 터지는데, 뭔가 웃질 못 하겠어요. 이거 뭔가 두려워요. 읽다보면 내 거시기가 잘려 버릴 것 같은 그런... 그러다 보니 아까운 유머들이 빛을 발휘하지 못 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2) 인물

 

 주인공은 평범해야만 한다는 집착이 달빛 여관을 온통 짓누르고 있어요.

 물론 온갖 먼치킨물들이 세상에 범람하고 이에 차별을 두어 역전된 광고 효과를 누린다는 것도 나쁘지 않죠! 하지만 달빛 여관의 주인공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달빛 여관의 주인공이 정녕 평범하던가요? 이미 주인공은 숙련된 암살자를 기습해서 때려 눕힐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걸 위해 몇 가지 트릭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장면에서 주인공이 시체가 되었어야 진짜 평범했죠.

 

 그뿐이겠습니까? 모든 먼치킨 주인공들 처럼 달빛 여관의 주인공에게도 과거가 있습니다. 물론 인물에겐 당연히 과거가 있어야겠지만, 문제는 그게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죠. 아직은 비밀입니다만, 현재 연재분까지 보면 남쪽의 절대자-괴수-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이며 의뢰를 받아 일을 대신 해결해주기도 하죠. 그리고 북쪽의 절대자-드래곤-의 알을 구출해주어 여관을 선물로 받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이 정도면 역사에 기억될 정도죠. 그 인맥 만으로도 세계 정복하고도 남을 겁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런 위대한 일들을 경험한 인물이 모든 면에서 형편없다는 겁니다.
 경험은 인간을 성숙시키며 그런 위대한 존재를 만나고 접촉하며 사고를 넓히다 보면 당연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어 있죠. 게다가 초반에 절대자들에 대한 주인공의 반항심까지 표현되어 있어요. 드래곤의 위대함을 보면서 벌벌 떠는 대신, 뭔가 반항심을 품어본다는 것엔 당연히 그런 깨달음 같은 게 전제되어야 하겠죠? 결코 돈이나 세면서 자신에 대한 작은 손해와 피해에 민감하게 굴 그런 상황은 아니란 거죠.


 물론 그런 인간도 있을 것이며 그걸 소재로 글을 써도 좋습니다. 왜, 판타지나 무협 세계 보면 '현경',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만 피해가 가도 고슴도치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찌질하게 구는 군상들 천지잖아요? 절대적인 힘만 주고, 깨달음은 쏙 빼서 골빈 초딩 양아치를 만드는 게 물론 인기의 지름길이긴 하죠.(세상의 중심에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외치던 어떤 글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런 쪽은 결코 아니거든요.
 
 주인공 발더의 뉘양스로 보면, 용비불패의 구도가 조금 기억나요. 드래곤에게 투자를 받았으니 돈을 미친듯이 벌어야한다는 것일수도 있겠죠.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면 드래곤이 화나서 대륙을 불태워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런데 딱히 돈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란 거죠.

 

 그것도 아니라면, 음... '균형'에 대한 고찰이 가끔 나타나던데 그거랑 상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균형을 주장하는 건 드래곤이고 주인공은 거기 반항하는 케릭터잖아요? 드래곤에게 더 나은 균형이란 걸 가르쳐주기 위해 여관을 하면서 서서히 교육시키며 인간의 우월함을 주장해본다던가 하는 것 말이죠.
 하지만, 여관 종업원을 늘리지 않고 돈은 벌어야겠고 한숨이나 쉬며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가 드래곤의 균형을 깨트릴 새로운 사상이란 생각은 안 들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더가 그냥 멍청이 케릭터도 아닌 거 같아요. 드래곤의 알을 구출해주고 절대자인 드래곤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할 때, 여관이나 차려보자고 했으면 적어도 나중에 후회를 할 거 아닙니까. 힘을 받을 수도 있었고 마법을 얻을 수도 있었죠. 그런데 주인공은 그런 후회도 없죠.


 도대체 이 애, 정체가 뭐죠?
 숨겨둔 그랜드 마스터급 검기가 튀어나와도 딱히 안 놀라울 거 같은걸요. 차라리 평범함이란 가면을 벗기는 게 어떨까요. 이미 충분히 안 평범하다고요...

 그리고 그런 주인공의 무목적성, 혹은 목적의 불명확성이 지금 달빛 여관의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독자인 제가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전 아직도 발더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지금까지는... '가정집 같은 여관에 엘프 같은 딸이 나를 마누라처럼 챙겨주면서 믿음직스런 식칼잡이 친구가 안보도 확실히 해주고 내 재산 너희가 함부로 건드리면 좆되게 드래곤이랑 남쪽의 절대 괴물 친구가 짱짱하게 지켜봐주는 가운데, 그냥 편하게 누워 쉬면서 이것저것 생각 하는 둥 마는 둥 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큼 돈이 꾸준히 벌려주면 좋겠다.'가 바로 한 독자가 바라본 발더의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걸 표현하려 했다면 오히려 발더의 비중을 확 줄여버리는 게 어떨까 싶어요. 굳이 걔가 주인공 안 해도 되잖아요. 기사 양반이나 드래곤 마법 소녀, 혹은 암살자 수장 딸내미를 주인공으로 했으면 이 여관이란 공간에서 묘사된 드라마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3) 사건

 

 도대체 발더 옆엔 왜 그런 '강케들'이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물론 그것들이 앞으로의 사건들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종업원들의 과거들이 하나씩 밝혀져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주인공에게 힘이 없다 보니 일종의 소녀 판타지와 비슷한 느낌이 됩니다. 한 평범한 소녀가 판타지 세계로 가고 거기서 온갖 힘 센 왕자님들 꽃밭에 둘러쌓여 사건을 해결해나가죠. 그러다가 소녀가 뭔가 그 왕자님들의 심금을 울리는 한 마디를 하고 왕자들은 놀라서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합니다.

 

 소녀형 판타지에서 소녀 대신 발더-게으르고 나태하고 배나온 30대 아저씨-를 집어넣으면 위 도식이 성립하죠. 하지만 그렇다보니 뭔가 이상하죠? 배나온 30대 아저씨와 왕자 공주님들이라니.
 물론 소녀 판타지에서 소녀들이 '난 평범해!'이라 스스로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걔들 예쁘죠? 그리고 나름의 매력이 있도록 설계됩니다. 그러니 왕자들이 빌붙어서 강아지짓을 해도 대충 납득이 되긴 하죠.

 

 그런데 우리 주인공, 발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글쎄요.

애정있게 읽었지만 전 아직 발더를 잘 모르겠거든요. 발더의 매력을 좀 더 물씬 풍겨서 독자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발더가 평범하고 힘은 없지만, 인맥과 놀라운 경험는 있잖아요. 그걸 활용해서 뭔가 비범함을 만들어낸다던가 해야 좋을 거 같군요.

적어도 그런 걸 숨겨두셨다면, 빨리 그리고 자주 나와야 할 거 같아요.

글을 잘 쓰셔서 전반적인 몰입감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주인공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조금 두통이 일거든요.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소녀 발더와 힘쎈 왕자들’ 구조가 계속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발더는 정신적 깨달음의 스위치를 온 해주는 역할을 계속 맡게 될 텐데, 둘 중 하나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약케 코스프레를 그만하거나, 바보 코스프레를 관뒀으면 하는 거죠.


 강하면 바보라도 용서가 되요. 그런데 약한데 바보인건 용납이 안 되죠. 약한데 바보이면 적어도 미소녀라도 되던가... 그것도 아니면 머리라도 잘 쓰던가.
 진짜 평범함을 그리고 싶다면, '연대'의 힘 같은 거라도 써봐요. 놀라운 연설로 사람들을 뭉치게 만들어서 뭔가 한다던가. 아니면 기가 막히게 운이 좋다던가. 아니면, 반지의 제왕 호빗처럼 '선량함'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킨다던가. 왜 그런 좋은 가치들 많잖아요. 아니면 지극한 게으름의 힘으로 운수대통하여 적들을 놀라게 한다던지.

 

 

3. 간단한 소감


 사실 개연성 부문에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었지만, 관두기로 했어요. 유머를 위한 과장의 부문이 많을 테고, 또 이런 라이트 판타지 지향이란 게 뻔히 보이는데 지나치게 머리 싸매야할 필요는 없어 보이거든요.

 

 다만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철학적 담론들을 안 쓰시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조심스래 해봅니다. 가벼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랄까. 아니면 이왕 쓰실 거면 조금 더 성찰을 한 후에 작품에 녹여보는 것이 어떨까요?

 

 예컨데, 루드의 깨달음 부문을 가지고 이야기 해볼께요.

 루드가 '발더'의 멍청한 표정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되잖아요? 그리고 그걸 무아의 경지로 표현하셨지요. '무아의 경지'란 게 현실적으로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에 제시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대해선 우린 비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맥락 그대로의 내부적 규칙을 앞으로도 계속 따라야 할 것이니까요. 눈물을 마시는 새를 보세요. 이영도 님은 자기가 정한 규칙 틀 내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하십니다.

 

 하지만, 달빛 여관에선 그게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무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왜 한 사람에게 고백하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죠? 전 그 부분 이해가 잘 안 되더군요. 자기 존재의 인식의 틀을 깨부수었다고 적혀 있잖아요?
 '자신에 대한 경계'를 부수었으니 기존의 '사랑'도 의미를 잃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존재의 인식 틀까지 산산히 부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영혼인데, 어찌 기존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성장해서 그만큼 경계가 거대해진다면 경계 안의 작은 사람에 대한 의미도 덩달아 작아지기 마련 아닐까요? 우리가 사랑을 하고 집착을 하는 것도 결국 자기 존재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불과하잖아요.
 그리고 거기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을 굳이 표현하고 싶다면, 그걸 깨부수고 나서의 루드의 행동은 엄청나게 달라져야만 했죠. 세렌을 대할 때, 신선이나 스님이 아이를 대하듯 해야하지 않았겠습니까?

 심지어 그 깨달음이 거짓이었고 별로 대단찮았다 할 지라도,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면 조금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유로운 관조를 할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적어도 고백도 못하고 찔찔거리고 있다가 평범한 여관주인에게 독촉당해서 겨우 고백하는 장면이 안 나왔어야 했을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발더가 활약할 여지가 없어지긴 하겠지만요.

 

* ps. 다 적고 보니 너무 악평만 이어나갔군요. 하지만 작가님이 이 점은 염두해두셔야 합니다. 전 딱히 ‘만능개미’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그저 제 눈에 보기에 별로 마음에 안 든 것들만 집어 얘기할 뿐이란 것을요. 남의 눈에 완벽하게 아름답게 보이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이영도님의 소설에 대해서도 이것보다 더 한 비판을 할 수도 있거든요. 마르케스도 도스토프에스키도 제임스 조이스도 그 누가 와도 타인의 눈에 완전히 마음에 들 순 없어요.

 게다가 저는 다른 훌륭한 비평가님들과 달리 별로 대단한 학위도 없으며 심지어 출판해본 경험도 없습니다. 같은 아마추어 글쟁이일 뿐이죠. 그냥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취사선택하시면 될 일이지, 비평의 방향대로 나아가려 하시면 안 됩니다.

 다만 글이란 건 요사스러워서 자기가 쓰고 보면 기초적인 오탈자조차 잘 안 보일 정도로 콩깎지가 씌워지는 습성이 있죠. 그러니 이런 작업들이 최소한의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만능개미
    작성일
    15.01.25 22:41
    No. 1

    오랜 시간 들여서 정성스럽게 비평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틀린 말씀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적하신 대부분의 내용, 가령 여급에 대한 추잡한 수작질 및 루드의 깨달음 등등은 결국 제가 글 안에서 미처 표현해내지 못한 부분입니다. 지루한 사족이라 생각되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만 표현해도 제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독자분들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전적으로 제 부족함이 전혀 다른 방향성을 띄어서 문제가 됐지만 말입니다 ㅎㅎ;;

    앞서 말씀하신 '집'이란 개념을 정확히 봐주신 점 또한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되도 않는 개똥철학을 괜히 넣어 후회되기도 합니다만, 이게 결국 앞으로의 전개에까지 영향을 주는 형태로 변질돼버려서 싹 잘라내기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봐야겠군요 ㄷㄷ

    수정할 때, 그리고 이후의 글을 씀에서도 지적해주신 부분들을 꼭 유념하여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단 말씀 드리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맞춤법빌런
    작성일
    15.01.26 17:10
    No. 2

    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영자 님의 '영웅 마왕 악당'이 생각 나더군요.
    이 소설은 진중한(?)소설이 아니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인 것 같네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싫어하실수도...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평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찬/반
1398 판타지 뭔가 부족한 피닉스의 기사 +4 Lv.52 어킁 15.09.16 2,773 4 / 1
1397 판타지 흡혈왕 바하문트의 설정 오류(스포 주의) +6 Lv.27 줄자 15.08.25 2,284 7 / 0
1396 판타지 세계의 왕 19권을 읽고..이런식으로 할거면 유료 ... +20 Lv.31 아자토스 15.08.05 9,991 30 / 1
1395 판타지 맥스 씨 계속 읽어야 하는가. +7 Lv.30 Rodinia 15.08.04 4,551 27 / 2
1394 판타지 매검향작가의 소설에 대해서 +2 Lv.53 제이라노 15.07.18 2,876 19 / 13
1393 판타지 레닐하츠 연대기 비평 +4 Lv.42 myco 15.07.11 2,160 7 / 0
1392 판타지 용사관찰기 비평 +2 Lv.42 myco 15.06.24 2,585 4 / 0
1391 판타지 용사관찰기 부정적 비평 +1 Lv.30 Rodinia 15.06.23 2,243 3 / 0
1390 판타지 전설이 돼라 총체적 난국. +20 Lv.30 Rodinia 15.06.17 6,275 30 / 0
1389 판타지 드래고니아 사가 비평 +2 Lv.42 myco 15.06.12 2,137 6 / 0
1388 판타지 메타트론-박제후 +20 Lv.9 합리적인삶 15.05.31 3,631 20 / 1
1387 판타지 로만의 검공-알라 +7 Lv.9 합리적인삶 15.05.27 8,645 28 / 4
1386 판타지 50권 분량으로 기획한 ELITE-PANIC 선배님들의 고... +4 Lv.5 이광주 15.05.21 1,856 2 / 3
1385 판타지 기억의 추적자 비평입니다. +6 Personacon 대마왕k 15.05.20 2,422 23 / 4
1384 판타지 기억의 추적자 비평 부탁드립니다. Lv.13 PhaseWal.. 15.05.19 1,604 2 / 3
1383 판타지 블랙 나이트-호접몽 +4 Lv.99 하늘나무숲 15.05.13 2,006 1 / 7
1382 판타지 마스터 피스 -다원 +12 Lv.9 합리적인삶 15.04.28 4,833 38 / 4
1381 판타지 히어로 메이커-마지막한자 +12 Lv.9 합리적인삶 15.04.19 4,240 12 / 14
1380 판타지 힐타노마키아 : 로덴바움편 +4 Lv.15 사평 15.04.18 2,197 6 / 0
1379 판타지 대세와는 조금 다른 완결작, 비평 요청합니다. +4 Lv.5 의무병 15.04.15 2,049 4 / 0
1378 판타지 소드마스터 +7 Lv.99 위법 15.04.06 4,987 11 / 2
1377 판타지 호뿌2호님의 작품에 대한 비평 +5 Personacon 가디록™ 15.03.20 2,172 9 / 3
1376 판타지 월광의 알바트로스 - 성장물에서 먼치킨물로.... +15 Lv.40 노멀남 15.03.15 5,341 8 / 2
1375 판타지 단태신곡을 읽고(스포다수) +9 Lv.1 Aulemah 15.03.08 2,913 6 / 0
1374 판타지 킹메이커, 만화같은 소설 +12 Lv.4 心境 15.02.27 4,117 61 / 0
1373 판타지 세계의왕은 그냥 열왕대전기 MK2 네요 +8 Lv.1 초칠 15.02.25 3,565 12 / 3
1372 판타지 노블리스트를 읽고 참 불쾌했습니다. +48 Lv.68 인생사랑4 15.02.25 6,856 28 / 55
» 판타지 달빛이 머무는 여관, 여관이 아니라 산장이었어야... +2 Lv.1 [탈퇴계정] 15.01.25 2,843 19 / 2
1370 판타지 via, 주객전도 +12 Lv.4 心境 15.01.21 3,311 22 / 2
1369 판타지 (그냥 감상)당신의 머리위에 억지가 눈에 거슬리지... +21 Lv.92 응아랑 14.12.22 4,281 6 / 3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