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는 왕이로소이다
작가: 최영진
출판사: 파피루스
(완결까지의 네타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 운명은 이미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쥐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황제
그와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예정된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던
심지어 살아온 삶마저 거짓이었던 비운의 소년, 루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둘의 만남, 그리고 대립
그 순간에 시작되는 아릿하고도 위대한 이야기
가혹한 운명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 그때
제 운명의 유일한 주인이 될 것이라고, 소년은 굳게 결심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두 발을 딛고 선 대지처럼 굳건한 의지 아래
태양처럼 찬란한 금빛 신화가 펼쳐진다!
이게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책 뒤 소개 글입니다. 이걸 읽고 독자는 책에 어떤 기대를 품게 될까요? ‘아, 루이라는 얘가 어떻게 왕이 되고, 멋지게 살아가는 이야기구나. 금빛 신화래. 오 멋진데?’ 겠지요. 개인적으로 책 소개 글은 참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독자는 저런 기대를 품고 책을 읽게 됩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초반부는 농민으로 살았던 루이가 사실 황자란게 밝혀지고, 그의 아버지 황제의 인도 하에 어렵게 황제가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과정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루이의 정체성 혼란, 아버지 황제의 진실, 루이와 아버지의 대립, 루이가 황제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 모습, 거기에 적국의 공주라는 매력적인 설정의 히로인에다, 멋진 조연들까지. 여기까진 최고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책 중반부에 리베레카라는 강력한 적이 등장합니다. 리베레카는 로카스트를 다스리는 배후 실력자로, 루이와 황제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솔직히 갑자기 튀어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능력도 강해서 최종 보스답게 행동하지요. 황제도 사실상 리베레카 때문에 죽게 되었고, 루이의 어머니 시신을 능멸하기까지 합니다. 자, 여기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암약 세력에 의한 이간질로 의해, 루이와 결혼한 공주가 세뇌 당했다고 믿게 된 공주의 오빠(다른 제국의 황제)가 루이를 습격, 정신을 잃게 만들어 점점 이야기가 꼬여갑니다. 이 오해는 나중에 풀리고, 비극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면 독자도 납득이 갑니다. 비극이 좀 있어야 나중에 주인공-루이가 멋지게 활약할 테니까요. 정신 잃은 루이가 깨어나 모든 걸 정리해주겠지! 여기까지가 5권 내용입니다.
그리고 6권. 루이가 쓰러진 뒤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는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됩니다. 루이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도 않는데 나라 안의 적들은 점점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고, 루이가 존경하던 스승마저 마지막에 암살합니다. 계속 누워있던 우리의 주인공, 루이는 6권 끝이 되어야 깨어납니다. 여기서도, 독자는 루이가 상황을 정리해줄 걸 기대합니다. 황제가 되기 전에 보여줬던 멋진 모습들! 그 위엄! 하지만 마지막 7권은.
루이가 하는 행동은 전부 삽질이 되고, 상황은 더 꼬여 암약 세력의 선동에 백성 반란마저 일어나 루이는 잡혀가 단두대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목이 잘리려는 순간, 루이의 친위대가 나타나 그를 구출하고 소설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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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리베레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수는? 소개 글에 나왔던 ‘태양처럼 찬란한 금빛 신화’는 어디로 갔죠?
에필로그를 읽으며 머리가 아찔했습니다. 처음엔 작가 님이 M이신가? 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독자가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기대했던 멋진 왕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저 적들에게 이러저리 휘둘리다가 마지막엔 백성들한테까지 배신당해 죽을 뻔한 왕. 복수도 없습니다.
물론 작가 님이 처음부터 비극을 노렸다면, 이해할 수도 있죠. 다만, 그랬다면 초반부에 그런 뉘앙스를 심어주셨어야 합니다. 독자가 가졌던 기대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아쉬움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작가 님이 처음부터 비극적으로 끝내려고 했어서?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초반부에 루이의 멋진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여주셨기 때문이죠. 루이의 연설, 행동, 이런 게 정말 진정한 왕다워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한숨뿐이죠.
그럼 뭐가 문제냐? 그건 작가 님이 너무 이야기를 벌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꼽는 건 적 리베레카의 딸, 베로니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대체 왜 필요했는지, 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베로니카는 어머니 리베레카의 실험에 가족을 희생당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를 따라다니는데, 이게 왜 필요했을까요? 독자가 베로니카의 비극적인 사랑을 보며 슬퍼하기 위해서? 이건 말도 안 되는 장치입니다.
베로니카는 우리의 주인공 루이(독자가 감정이입하는)의 원수 리베레카의 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독자가 보기를 반길까요? 또, 그 이야기가 루이와 직접적으로 얽히고 그랬다면 모를까 솔직히 별 상관이 없습니다. 베로니카 이야기는 루이 이야기와 거의 따로 놉니다. 여길 다루지 않아도 이야기 진행에 별 상관없을 정도로요.
즉,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작가 님이 이 글에서 너무 많이 말하고자 했다는 겁니다. 주 이야기(루이) 전개에 방해가 될 정도로요. 7권이란 분량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양입니다. 하지만 본 스토리마저 흐지부지 된 상황에서,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꼭 풀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이 비평인 척하는 글은, 단순한 취향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작가 님이 비극적인 내용으로 원래 구상하셨을 지도 있지요. 하지만, 작가 님이 독자들에게 소설 초반부터 쭉 심어주셨던 ‘루이의 멋진 모습’이 와르르르 무너지는 마무리를, 독자들이 납득하고 쉽게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전 멋진 왕을 보고 싶었지, 이렇게 호구스러운 왕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복수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책을 읽으며 독자가 루이에게 감정이입하며 느꼈던 리베리카에 대한 증오는 대체 누구한테 풀면 될까요?
이렇게 장문으로까지 글을 쓴 건, 제가 이 작품과 작가 님의 글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책을 전부 사기도 했어요. 작가 님의 문체도 좋습니다. 약간 오버스러운 감도 있지만, 독자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문체였지요. 등장인물의 감정을 제 감정처럼 느끼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굳이 이렇게, 이 작품을 이런 마무리로 하셔야했는지. 독자가 품었던 기대를 배신하면서까지, 이런 마무리를 하셔야했는지.
제가 이런 글을 쓴 게 작가 님에게 누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문으로 글을 쓰면서까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하기에.
최영진 작가 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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