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시하
작품명 : 여명지검 1~3
출판사 : 청어람
▶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시하님의 여명지검 5권이 설 전에 배본된다고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 기쁜 마음에 예전의 감상을 하나 옮겨봅니다. 2009년 2월 18일에 쓴 것이니 만 1년이 다 되어가네요. 실은 3권까지의 감상이고 4권에 대한 건 따로 적었지만 작품 소개에는 충분할 듯 합니다.
▶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니 참고로만 봐주세요. :D
서안(西安)의 어린 거지 단영사!
매일 아침 옛 왕궁의 무너진 탑에 올라가
가장 먼저 여명을 맞이하던 그를 찾아온 특별한 인연!
사부가 심장에 심어준 징벌의 장미를 키우며
불우하던 거지 소년은 염왕의 사자로 성장해 간다.
자신의 삶과 무수한 인생에 새로운 새벽을 열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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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극사전기, 무제본기를 낸 시하님의 세번째 출판작입니다. 전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여명지검을 접하고 나니 마음이 동하네요. 그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글을 쓸 줄 아는 작가라면 이름만 믿고 책을 집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명지검과 같은 류의 무협을 가리키는 정확한 명칭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저는 모르겠습니다. 기환무협이라 하기에도 거리가 있는 듯 느껴지구요. 가장 비슷한 성향의 작품을 생각해보니 백작 회 님의 두 작품, '열 세번째 제자'와 '풍진세계'가 떠오르는군요.
무협소설에서 사용하는 성장 코드는 수십년에 걸쳐 발전해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연이며, 신무협으로 들어서며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취라는 측면이 부각되다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있죠.
절벽에서 떨어졌더니 고인의 유진이 남겨진 동부더라. 건강체조인 줄 알았더니 절세신공이더라. 피 흘리는 노인을 도와줬더니 비급 하나 던지고 가더라. 남들 다 비웃는 삼류무공을 10년간 반복했더니 지고의 경지에 이르더라. 전쟁터에서 한 십년 굴렀더니 쌈질이 숨쉬는 것보다 쉽더라. 몸 빠개지게 수련하니 뭘로 때려도 안빠개지더라 등등. 요즘엔 묘한 것들도 많이 나왔죠. 맞을 수록 강해지더라, 노가다 할 수록 세지더라, 붕가붕가가 내가 갈 길이더라, 내 내공이 내 내공이고 니 내공도 내 내공이더라 등등.
그런 흐름의 하나가 바로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한 발전 코드입니다. 흔히 말하는 깨달음 운운 도道 운운 하는 그런 것이죠. 대표적인 작가로 조진행님이 있고, 요즘 분들 중에서는 악공전기의 문우영님 정도. 이런 부분을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켜 구사하는 작가로 백작 회 님이 있습니다.(그냥 생각나는 분들만 적은 겁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주인공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남들이 못보는 것을 보며, 다들 보는 것을 다른 형태로 보고,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아내며, 형태 없는 것을 규정짓습니다. 이질적인 관념으로 세상을 접하고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죠.
곁에서 보면 빙 둘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느릿해서 답답하고, 아예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는 결론이 나오게 되죠. 그걸 아는 것은 이야기 밖에서 지켜보는 독자 뿐이구요. 독자만은 그 길을 함께 하면서 즐거워 하고, 감탄하고, 깜짝 놀라고(우리는 일반인이잖아요), 통쾌해 하는 거죠.
여명지검의 주인공 단영사는 그런 아이입니다. 작은 일에서 큰 것을 읽어내고, 간단한 움직임에서 천지의 이치를 끌어내며,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우고, 거친 탁류 속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움켜쥘 수 있는 인물이죠. 그는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신분이나 무력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단영사가 평생을 걸고 찾아나가야 할, 그의 알 수 없는 내면세계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치열한 소망입니다.
작중에 거대한 괴물이 되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상상을 하며 큰 희열을 느끼는 단영사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네, 단영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는 아직 진정한 괴물이 되진 못했고, 진실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길을 내고, 계단을 쌓고, 그것을 밟으며 한걸음씩 한걸음씩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인간같지 않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단영사와 함께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여정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욕심인 줄 알지만 이런 글이 많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갈고닦은 끝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를 찾기란 너무나 힘든 현실이 안타깝고, 그런만큼 시하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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