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랍시고 형수가 과일들을 좀 주었다.
사과 한 알, 배 한 알, 귤 둘, 그리고 바나나 한 뭉치.
냉장고에 바나나를 넣고 나니 더이상은 넣을 공간이 없어 나머지는 박스 채로 내버려 두었다.
난 아주 게으른 성격이다.
뭐든 땡길 때까지 미룰 수 있는 데까지는 미루곤 한다.
저번 구정 때도 형수가 과일들을 주었었는데 그걸 제때제때 먹지 않고 그 비싼 배가 냉장고 속에서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가 맛없는 놈을 먹은 적이 있어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어제 배를 깎아 먹었다.
배를 입에 넣는 순간 에 내 실수를 깨달았다.
배가 아직 싱싱하기는 하지마 평온에 있던 놈이라 맛이 없다.
배는 냉장고 속에서 찹찹해진 놈을 깎아 먹어야 청량감이 있는데 하나에 몇천 원씩 하는 배를 이렇게 시시하게 먹게 되다니....
그건 그렇고, 바나나는 내키지도 않는 것을 열심히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도 아직 세 알이나 남았다.
벌써 시커멓게 변색이 된 놈이 아주 문드러지기 전에 다 먹어 치워야 하는데....
Commen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