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일이 있어서 천하공부출소림을 아직 덜 읽었던 차에 백야의 취생몽
사를 접하게 되었다.
취생몽사를 평하기 전에,
현재의 백야를 평한다면 <이제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었다.> 이다.
취생몽사는 한 사람의 독백으로 회상하여 불과 며칠간의 이야기를 전3권의
무대로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고, 그의 이야기꾼의 자질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년전에 금년 무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낼 사람으로 백야와 고명윤을 꼽은
바 있었다. 고명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주춤거리고 있음이 안타
깝지만 백야는 말 그대로 어둠을 밝히듯, 밤 없이 스스로 계속 발전해나가
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난번 만났을 때 간단히 이야기 했던 것들이 이제 스스로의 글 속
에서 용해되고 저절로 만들어져나가는 것 같아 보기가 매우 좋다. 신인의
글을 보고 난 다음의 이러한 느낌은 지난날 좌백을 처음 보았을 때 이후,
처음이라 해도 이젠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용대운이란 중고신인(?)의 등장이후, 실제로 중견으로 커올라간 신예로서는
좌백이 현재로는 유일하다. 많은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스스로와
의 싸움에서 별 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거나 너무 느린 집필 속도로 인해
서 많은 신인들이 그저 그렇게 묻혀가고 있다.
무협은 한편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어쩌다보니 대본소에서 다시 대여점으로, 그 루트를 주축으로 하게 되어 판
매량에 절대적인 제약을 받게되었다. 결국 꾸준한 창작만이 그 사람의 이름
을 중견이란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아주 좋지 못하면서도 특이한 형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실력있는 신진들이 이제 판매량에서는 거의 경악할 수준의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굳이 이름을 들지 않아도, 이 무림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년에 뽑았던
10대작가라고 하는 그 이름중 6, 70%이상은 무명이라 해도 좋을 참혹한 판
매부수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면에서 꾸준한 백야의 창작은 스스로의 능력에다 플러스 알파를 덧붙이
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제 백야의 글을 보자.
홀연히 나타난 사막의 여행자.
그의 이야기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루의 장면은 예로부터 수없이 씌여졌고, 고룡이 가장 즐겨하던 포맷이기
도 하다. 그러나 백야는 그 나름으로의 색깔을 칠해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느낌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 많이 바꾸고, 많이 생각해서가 아니라 쓰면서 스스로의 느낌이
들어간다는데 차이가 있다. 스스로의 생각이 들어간 장면이 아니라, 남이
쓴 것이 좋아보여서, 그 장면을 흉내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은 그저 베끼
기나 표절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장면을 스스로의 색깔로 포장해내면, 그때부
터는 그 장면이 그의 것이 된다.
굳이 아쉽다면, 그처럼 빨리, 급하게 길을 재촉해야 할 상황에서 노닥거리
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하자(瑕疵)가 되겠지만, 읽
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부분에서의 하자가 아무렇지 않게 대강 말만 맞추어 넘어가게 되면 그
글이 명작으로 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보아도 좋은 글, 또 보고서도 여전히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글은 약점
이 없는 글이다. 약점이 없다기 보다는 그 약점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
글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남장여인의 등장에서도 명백한 해답의 준비가 부족했다.
나름대로 감정의 이입에는 성공했지만 왜 그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가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레즈도, 게이도 아닌 상태라 조금 묘하게 비극으로 끝이 났다.
하나 그 자체에서 의도한 느낌 자체는 그 나름으로 자리했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어린아이가 건장한 어른을 이긴다.
얼핏보면 말이 안되지만 무협에서는 무공을 수련한 아이라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바로 그런,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개연성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목표점으로 가다가, 쉬러 들린 곳에서라는 말로 주점 부분에서의 쉼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겠다는 개연성이 부족했다는 의
미다.
또 주인공의 무공이 며칠 사이에 대진(大進)하는데 그렇게 일시에 강력해진
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구무협의 기연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고, 근래에
들어서는 매우 경원시하는 일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 글을 읽으면서
뭐 이래? 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대비가 되어 있고 설득력이 있는 까닭이다.
같은 글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천지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점이
고, 그것이 바로 필력이다.
후배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아이가 있다.
그의 가족은 처참하게 죽었다.
원수는 무림제일고수, 그의 세력은 천하를 덮었고.. 운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주인공은... 운운...>
이걸 보면 무협을 많이 읽은 독자는 음, 또 그런 스토리군. 하고 넘어갈 것
이다. 그러나 그러한 독자들에게 음, 과연 어떻게 커나갈까? 어떻게 복수를
하지? 라는 기대와 흥미를 가지게 하면 그 무협은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필력이다.
백야는 이제 그러한 필력이 생겨난 듯 보인다.
이 한 편으로 단정은 자칫 빠를지 모르나, 내가 본 것이 옳다면 그는 10년
후에도 우리 곁에서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꾼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기꺼운 마음이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편이었고, 마지막의 마무리는 아쉽기도 하고 여운이 남
기도 했다.
다만 내 머리가 나쁜 것인지 아직도 남매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
사족을 달자면, 늘 유장(悠長)이라는 두 글자를 음미해보라는 것. 그리고
유장에서 진일보는 그 유장함이 단순한 유장함이 아니라 도도한 흐름을 가
져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서 그 유장함은 거대한 물길이 되어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마지막 지적이다.
건투를 기대한다.
盛夏 蓮花精舍에서 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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