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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
11.11.14 20:37
조회
3,788

작가명 : 기리노 나쓰오

작품명 : 그로테크스

출판사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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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일본 전역을 들끓게 한 '동경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 사건'을 소설화, 현대 여성의 복잡기괴하며 일그러진 심리를 예리하게 파해쳐 보인 심리 소설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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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으로 뉴욕타임즈 선정 '꼭 읽어야 할 추리문학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기리노 나쓰오. 현대 사회의 잔혹한 이면을 묘사하는 하드보일드 작품이 장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로테스크'가 처음으로 읽는 기리노 나쓰오.

사실 읽은지는 몇 개월이나 지났습니다만, 읽고 난 직후에는 꽤나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어 당장에 감상문을 못썼어요. 그렇게 가만히 있자니 더 못쓸 것 같았고. 그래도 이렇게 일단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이 이야기는 일단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두고 있습니다. '모티브로 두고 있다'는 애매한 문구로 적은 이유는, 이 소설 속의 사건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와 잘 나가는 대기업의 간부로 활약하던 여사원이 밤에는 길거리 싸구려 매춘부로 활동하다가 살해당한 사건. 재정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헐값'에 팔아넘기길 주저않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는 당시 일본 사회에서 꽤나 이슈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그녀를 그렇게 몰아붙인 것인지. 그녀는 왜 길거리에서 몸을 팔았던건지.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는 같은 여성으로서, "왜 사회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하여부터 부정적인 감상을 품었고, 바로 그 때문에 이 사건의 상세한 사항을 추적하고, 그 여성의 이야기를 상상 속에서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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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명성대로, 글 자체는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상당히 두껍고 지면에 글자가 빽빽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따라가는 것 자체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술술 읽혔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한 문장에서 전달하는 정보량과 심리서술의 양 또한 매우 많은 편입니다.

책은 모델이 된 대기업 여사원이자 길거리 매춘부였던 '가즈에'의 고등학교 동창인 '나'를 화자로, '나'의 여동생인 유리코, '나', '가즈에', 그리고 가즈에와 유리코의 살해자인 중국인 불법 체류자 '장'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의 서술을 기본으로하여 '유리코'와 '가즈에'의 일기와 수기, 그리고 '장'의 진술조서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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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제는 '외모지상주의', 혹은 '외모 계급사회'입니다. 여성으로 태어난 시점에서 '외모'로 모든 가치를 평가받고, 본신의 노력은 전혀 인정받을 수 없으며, 오로지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로 평가받는 사회 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절세의 미"를 갖춘 유리코, "노력으로 성공하고자 했던 이" 가즈에, "자신이 못생겼다는 걸 알기에 악의로 무장한" 나의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그 외에도 적절한 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가졌던 동창생 친구의 이야기도 있고, 어쨌거나 이 소설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혼란스러운건, 소설 어디에도 '성공하는 여성'의 모습이 제시되지 못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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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코는 모든 남성을 유혹하는 절세의 미를 타고났으며, 그 자신 또한 그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알며, 성적인 쾌락 속에서 살아가지만, 늙어서 빛나던 '미'를 잃고는 그저 길거리의 흔해빠진 창녀로 쓸쓸히 살해당합니다.

가즈에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노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크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자신이 '노력'으로 쌓아온 것들이 아니라는 것에 절망하고, 그 절망을 밤거리의 남자들이 자신을 '원하게' 하는 것으로 발산합니다. 허나, 그것은 결국 그녀를 멈출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내몰 뿐이지요.

'나'는 유리코에 대한 처절한 열등감과 가즈에의 우둔함에 대한 멸시를 철저한 자기합리화와 악의의 갑옷으로 무장한체, 그들의 파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과는 상관 없는것으로 치부하며 홀로 고독히 살아갑니다.

그 외에도 많은 여성들이 등장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성공'은 없습니다.

가장 그럴듯하게 다가간 것으로 제시되는 인물이 "적당히 주변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다가 결혼하여 직장을 그만 둔" 가즈에의 입사동기입니다만, 그녀 또한 "이미 패배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노력할 마음이 안든다"는 말로, 결코 '승리자'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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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외모계급사회라던가, 주인공들의 심리묘사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 할 게 없습니다. 이건 직접 읽고 각자의 감상을 가지라고밖에 말 할 수가 없네요.

다만, 한마디 하자면, 정말 제목처럼 '그로테스크' 한 세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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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감상을 파탄으로 몰아간 것은 결말부.

'유리오'의 존재는 분명히 '나'에게 구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에 복선도 이리저리 깔아두었고, 유리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그의 배경도 지극히 그런 기색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런 결말이 나와야 했을까... 기껏 '나'가 얻은 구원의 씨앗을, 그 씨앗 채로 그로테스크한 수렁으로 밀어버린 엔딩은,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의미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역겹고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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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는 별개로, 솔직히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된 만큼, 중심 인물은 '가즈에'여야 할 터인데, 솔직히 가즈에 파트보다 유리코 파트가 훨씬 재밌습니다(...). 현실에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는 '괴물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 팜므파탈적인 '타고난 탕녀'의 묘사가, 오히려 만화적인 면까지 있어서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아요. 특히 가즈에, '나', 유리코의 '고등학교' 시절을 묘사한 부분은 어지간한 제대로 된 학원물 저리가라 할 정도였고.

'장' 파트는 그 자체로 보자면 상당히 뛰어난 파트입니다만, 소설 전체와 결부시켜보자면 결국 '거짓'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하고...

살인 사건을 다룬, 일단은 미스터리 장르에 속할 책인데도, 서사적으로도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이 남네요. 읽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게 남긴 하는데, 그것을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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