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방수윤
작품명 : 허부대공
출판사 :
1. 어느 경공고수의 이야기
뜬금없지만... 경공의 천재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어떤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경신술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엄청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합니다. 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단숨에 200장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반면 그를 제외한 무림고수들은 제아무리 뛰어난 이라 해도 겨우 30~40장 정도밖에 못넘습니다. 천하제일경공고수라 해도 50장이 한계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200장을 넘습니다.
물론 근거는 있습니다. 그는 경공술에 있어서 천재 중의 천재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소설을 본다면, 독자는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경공술의 천재'라는 근거도 있고 거기에 의거해서 200장을 뛰어넘습니다만... 그래도 독자들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잖아. -_-」
2. 어느 가족신공 고수의 이야기
허부대공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부운은 가족신공의 고수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족신공에 있어서만큼은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으로 엄청난 내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이는 5의 성취가 고작이라면 부운은 1000의 성취를 이미 쌓고 있었던 겁니다.
그 놀라운 화후로 인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만 있다면 어떤 잘못도 용서가 되고 어떤 인간이라도 포용하며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가족신공이 1000에 이르렀으니 불가능은 없겠죠. 물론 근거는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잖아. -_-」
3. 통념과의 거리
두 경우에 공통점이 있다면, 독자들이 형성하는 통념과의 거리가 매우 멀다는 겁니다. 위의 무협에서 작품을 읽다보면 천하제일경공고수는 50장을 뛰는데 주인공이 200장을 넘는건 아무리 봐도 좀 심했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근거를 제시했다 하더라도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정도는 몰라도 저건 좀 무리.... 이런 자연스러운 생각 말입니다.
허부대공에서 아무리 부운의 과거를 근거로 제시했다고 해도 그게 독자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 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 그런 과거라면 이정도 집착은 가능할거야」라고 하는 한도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으니까요.
4. 그러나 이렇게 바꾼다면....
만약의 이야기입니다만,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전자의 경공소년 이야기에서 이런 식으로 설정하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200장은 무리다. 하지만 중간에 나무잎이 서너개 떠있다면 그걸 밟고 강을 건널 수는 있다」라면? 훨씬 더 납득하기 쉽지 않을까요?
「200장」은 거대한 갭입니다. 그러나 「나뭇잎」이라는 매개체가 생김으로 인해서 커다란 차이를 메울 수단이 생기죠. 글을 쓸 때, 독자의 상식/통념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 인물을 내세운다면 이런 식의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가가 내세우는 인물과 독자가 가진 생각 사이에 200장의 거리가 있다면, 그것을 좁혀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5. 만약 허부대공이...
만약, 허부대공에 이런 모습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부운이 너무나 결핍된 과거 때문에, 새로운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운 가족을 꿈꾸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희망을 종종 내비친다면? 이런 모습이 있다면 부운의 맹목적인 희생과 양보도 어느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말하자면 나뭇잎 하나가 생기는 겁니다.
「결핍된 과거 - 현재의 부운」 사이에는 200장의 거리가 있지만,
「결핍된 과거 - 부운의 희망과 꿈 - 부운의 행동」사이에는
100장 정도씩의 거리밖에 없는 겁니다.
거기에 만약 이런 모습도 들어간다면 어떨까요. 아내(이름이 기억안나네요 -_-)가 비록 부운을 무시하고 깔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쌍한 마음에 혹은 뭔가 다른 의도로 그에게 아주아주 가끔이라도 친절한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그런 작은 행동들 하나에 부운이 미미하나마 '자기의 가족'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 모습이 작중에 나타나 있다면?
어둠속을 헤메는 이에게 아득히 멀리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은 맹목적인 희망을 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운에게 이런 작은 희망의 불씨가 주어지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나타난다면... 지금의 부운이 취하는 이해못할 정도의 가족에 대한 집착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6. 맺음말
결국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부운의 행동과 그 행동의 근저에 깔린 과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각 사이에는 200장이 넘는 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갭을 메울 만한 장치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허부대공을 매우 재밌게 보고 있고 수작이라고 여기지만, 납득이 안되는 건 납득이 안되는 겁니다. 억지로 독자인 제가 그 갭을 메울 만한 논리를 만들어내서 스스로 납득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전에 작가가 자연스레 부운에게 동화하도록 만드는 설득력을 가졌어야 합니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17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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