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정수 작가님
작품명 : 제왕록 4권
출판사 : 드림북스
0. 여는 글.
개인적으로 비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추천글은 종종 쓰고 감상글도 몇번 써봤지만 지금까지 비평글은 써본 적이 없습니다. 가가라이브나 쪽지 같은 걸로 요청할 경우에만 조심스럽게 어떤 점을 지적해 준 적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만큼 타인이 쓴 작품을 비평하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필요하고, 또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왕록 4권을 보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이렇게 한 자 적어봅니다.
1. 작가 및 작품 소개.
제왕록은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를 쓰신 박정수 작가님이 혼신의 힘으로 필생의 역작을 쓰겠노라고 강하게 다짐한 작품입니다. 제왕록은 판타지 세계의 인물 '칼스'로 환생한 주인공이 농노의 아들로 시작하여 일개 병사로 군에 입대하여 조장, 기사를 거쳐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전형적인 성장물의 왕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중세 문명에서는 생각하기 어려문 발상으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 또한 여타 작품에서 많이 보아온 설정입니다. 이 작품은 대단히 독특하거나 확 끌리고 하는 것은 없지만 정통적이고 왕도에 가까운 진행으로 독자들을 서서히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제왕록은 분명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2. 4권의 문제점 - 후작 영애 '쥬디스'
4권에 들어가면 '단전호흡'을 사용하는 주인공이 검술과 마법을 조합해 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단전호흡 이런거 판타지에 나오는 걸 반기지 않는 취향이지만 뭐 그냥 가볍게 넘어가겠습니다. 중반쯤 넘어가면 행글라이더를 설계하여 성벽을 그냥 넘어 버리네요. 근,현대 과학을 중세 판타지에 접목하는 것 또한 여타 소설에서 많이 나왔던 것입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크게 대단하거나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4권 8장부터 나오는 쥬디스라는 여성 캐릭터입니다. 후작가의 영애로 히로인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군요. 나름 검좀 휘두른다고 해서 흑장미라 불리는 모양이네요. 시녀와도 친하게 잘 지냅니다. 그런데 등장하자마자 주인공인 칼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무려 후작가의 영애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관심을 가지시는군요. 처음에는 농노출신이라서 무시하는게 보통일텐데 말이지요. 하지만 시녀와도 친하게 지내시는 분이니 신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타입이라고 간주하고 넘어갑시다.
우리의 후작 영애께서는 열여섯에 마나 익스퍼트에 오른 주인공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직접 만나려고 행차까지 하십니다. 그런데 후작가 영애치고는 말투가 좀 가볍고 경박해 보이네요. 하지만 본문 중에 '기사단에서 거친 사내들과 지내다 보면 아무리 여자라도 덩달아 거칠어지기 마련이다'라며 나름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여기도 좋게 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후작영애께서 칼스와 만나셨습니다. 먼저 얼굴을 쳐다봅니다. 속으로 '뭐야? 꽤 잘생겼잖아?'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시선이 아래로 향합니다. 탄탄한 가슴과 식스팩이 작렬하는 상반신이 나오는군요. 후작 영애께서 얼굴이 화끈해지십니다. 칼스의 몸매에 한방에 뻑 가버려서 상대가 말을 건네도 멍을 때리며 대답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네요.
후작영애께서 농노출신 기사에게 한방에 뻑 가버렸습니다. 읽어보면서 이건 뭥미? 했습니다. 이후 '흑장미'라 불리며 뛰어난 검술 소질을 가진 그녀는 천방지축으로 돌변해 버리고 맙니다. 좋게 말하면 '사랑에 빠진 처녀는 용감하다'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미친년입니다. 실제로 작중 인물도 그녀보고 '미친년'이라고 언급을 합니다. 작가님도 후작 영애께서 살짝 맛이 갔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도 뭐 그냥 '성격이 참 지랄맞구나'라며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3. 넌 대체 왜 있는 거니?
진짜 문제는 후작 영애께서 4권 8장 이후로 꽤나 비중있게 등장하여 천방지축처럼 날뛰면서 글 전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다들 '제왕록'의 캐릭터 같은데 쥬디스는 미소녀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의 히로인을 가져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지면 쥬디스 혼자만 작중 인물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혼자 따로 놉니다. 쥬디스 같은 캐릭터는 라이트노벨에 등장할 캐릭터지 제왕록처럼 성장물의 왕도를 걷는 작품에 나올 캐릭터가 아닙니다. 설사 나오더라도 엑스트라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쥬디스가 5권 이후에도 계속 나와서 메인 히로인, 최소한 2,3위 후보에는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박정수 작가님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캐릭터를 집어넣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4. 다음편을 염려하면서.
아직 5권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박정수 작가님께서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을 쓰고 싶으시다면 쥬디스라는 캐릭터에 대해 다시한번 잘 고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로인이란 것은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잘 넣으면 약방의 감초같지만 잘못 쓰면 글 전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라이트노벨 작가들이 히로인을 너무 부각시켜 주인공을 공기처럼 만들어 버린다면, 많은 판무 작가분들은 히로인을 잘 살리지 못합니다. 한방에 주인공에게 뻑 가버려서 여러 히로인이 줄줄이 들러붙다가 나중에는 공기가 되어 버립니다.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독자분들을 고려해서 그렇게 쓸 수도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것이 글 전체의 몰입도를 저해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 점에서 제왕록 4권은 1,2,3권에 비해 높은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5권에서는 개선되어 좋은 모습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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