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진우
작품명 : 프라이버시의 철학
출판사 : 돌베개
프라이버시 파괴는 인간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첫걸음이었다.
-볼프강 조프스키Wolfgang Sofsky, <Verteidigung des Privaten>
[프라이버시는 얼마까지 유효한가?]
일전 시사 이슈에 관해 배우던 중 서울 강남구의 감시카메라 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다. 서울의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길거리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 인위적이고 우발적인 범죄의 발생을 막기 위함이라 했다. 그에 관한 논쟁에서 나는 판옵티곤을 떠올렸었다. 사방 곳곳에 달려 있는 감시카메라, 그로 인해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으며, 규율을 내면화하게 되어 가는 무기력한 개인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면 감시카메라를 몇 기 더 설치함으로서 범죄의 발발을 막을 수 있다면 그는 또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실용적이기 까지 하다. 그렇다면 나의 무의미하고 감성적이었던 반대는 허망한 주장이 아니었는지. 그에 관한 심려를 깨끗이 씻어준 책이 바로 이 <프라이버시의 철학>이다.
[자유의 토대로서의 개인주의]
이 책은 바로 위에서 필자가 예로 들었던 상황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사회와 개인이 부딪치는 영역, 그 경계에서 ‘프라이버시’는 과연 어떻게 작용하는가? 가 이 글의 핵심이다. 이 책은, 프라이버시를 개인의 정체성Identity과 동일시함으로써, 그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의 사적 영역, 그리고 도덕성의 기초에 서 있음을 논증하고, 개인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을 로크(소유), 홉스(몸), 칸트(인격) 등 근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통해 구분, 정의함으로써 개인의 도덕성의 침해를 보여준다.
우리는 근대 자유주의자들이 천착했던 개인의 문제들이 현대의 프라이버시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p.181, <프라이버시의 철학>
그리하여 등장하는 것은 세 종류의 프라이버시, <공간>, <정보>, <결정> 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의이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음직한 이 논의는 여러 가지 예화와 논증을 통하여 현대사회에서 프라이버시는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며, 개인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유라는 점을 역설한다. 선거 때마다 프라이버시는 논제가 되지 못할 정도로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자기 정보의 누출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다. 개인에게 온전한 결정을 가능토록 하는 것은 오직 비밀 뿐이기에, 개인의 결정이 공공성에 노출되는 순간 그 개인은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프라이버시만이 그 해결책일 수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의 프라이버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 자신도 프라이버시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흔치 않다. 기껏해야 시사를 배울 때 만이라던가. 그런데 위의 책은 간만에, 정말로 간만에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또 정리하게 해 주었다. 개인의 사적 영역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여러 윤리적 기준, 사회적 가치들과 부딪칠 때, 그 경계는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과연 개인의 영역을 어디까지일 수 있을까?
우리는 대체로 사회가 개인에게 자유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고독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고대인들이 “공동의 세계 밖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사적 사유로 일행을 보내는 삶을 ‘백치와 같은 삶’ 이라고 평가했다면, 현대인들은 공적인 일에 매달려 자기 자신의 삶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라고 말한다. / 그렇다면 사회가 출현하면서 가정의 사적 영역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공론 영역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조건이었던 노동과 생산이 사회적 영역으로 진입했다면, 가정의 사적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도 사적 영역은 자유를 실현하는 조건이 될 수 있는가? -p.109 <프라이버시의 철학>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정을 통해서 얻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바로 직장에서조차 카메라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프라이버시의 공간’은 아니었는지. 우리가 삭막한 사회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인격을 유지한 덕분은 프라이버시 덕이 아니었는지. 이 책을 읽고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여러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소설도 아니고 더군다나 인문학 서적인지라 조금 딱딱한 책이지만, 되도록이면 이 소개, 감상글이 여러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0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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