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현욱
작품명 : 아내가 결혼했다
출판사 : 문이당
딸 아이들의 학교에서 해질녘 도서관이라는 부모 참여 프로그램을 개최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도서관에 자주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학교에 들를 때면 늘 도서관에 들르고 있어 서먹하지는 않았다.
원래는 5시부터였지만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은 6시 반. 이미 많은 아이들과 학부형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도서관을 시끄럽게 오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고르다가 문득 눈에 띈 책 한 권.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손예진의 팬이기도 한 필자가 몇 안 되는 성인을 위한 책들 중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넓고 푹신한 쇼파에 자리를 잡고 책에 빠져들기 시작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읽어내려갔다.
이름이 나오는 등장 인물은 단 세 명. 주인공 나, 그리고 아내인 인아. 아내의 또 다른 남편 재경.
소설은 주인공이 인아라는 인물을 처음 만나면서 그녀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출발한다.
보통 사람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녀의 가치관에 주인공 나는 심한 갈등을 겪지만, 결국 그녀의 매력에 항거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녀와의 결혼에 목을 맨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해 연애-결혼-부부-가족의 단 네 장의 챕터로 끝맺는다.
우선 아내 인아, 아니 인아의 가치관은 이 소설의 주를 이루는 뼈대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주인공의 고뇌는 책 전체를 통해 절절히 표현되고 있다.
인아는 남자와의 관계를 거부하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관 따위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섹스)앞에서 여지없이 무시된다. 이런 여자친구, 나중에는 부인이 되는,를 둔 주인공은 기존의 가치관과는 너무나 다른 그녀에게 적응하려 노력한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그녀만큼 주인공을 성적으로 만족시켜주는 여자도 없었고, 그녀만큼 그를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매력에 굴복한 주인공은 결국 다른 사람과 부인을 나누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녀의 또 다른 남편이 그에게 반문한다.
"만일 당신이라면, 그녀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하더라도 그녀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인아는 누구의 아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아이를 갖는다.
주인공은 인아에게 누구의 아이냐고 캐묻지만 인아는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할 뿐 누구의 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인아 자신의 아이인 것이지 어떤 남자의 아이냐가 아니다.
결국 이 아이는 세 남녀의 미묘한 관계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정리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가족은 그 무엇도 뛰어넘게 만들어버리는 마력이 있다.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 따위는 자신을 가장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으며 난 주인공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인아와 같은 여인을 만났을 때 그와 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노골적인 몇몇 성애 장면이나 직설적인 심리묘사가 다른 사람에게 쉽게 권하기에는 민망하게 느껴지지만, 사랑을 알고 결혼에 대해 생각해볼 나이의 후배가 있다면 한 번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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