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사토 유야
작품명 : 크리스마스 테롤 invisible x inventor
출판사 : 학산문화사 파우스트 노벨
발행일 : 2008년 11월 25일
충동에 이끌려 미지의 외딴섬에 도착한 여중생 토코는 그곳에서 만난 청년에게 어떤 남자의 감시를 의뢰받는다. 밀실 상태의 벼랑가 오두막에서 노트북만을 마주하고 있는 남자. 토코는 쌍안경으로 그 남자의 감시를 한결같이 수행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눈앞에서 사라지는데….<교보문고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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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기
플리커 스타일,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수몰 피아노. 그리고 '크리스마스 테롤'. 이걸로 단편을 제외하면 한국에 들어온 사토 유야 소설은 정ㅋ벅ㅋ입니다.
크리스마스 테롤은 '카가미가 사가'가 아닙니다.
이 책은 사토 유야의 절필 선언이자, 자신을 그런 지경으로 몰아넣은 독자와 비평가를 작정하고 까는 글입니다.
1. 본문 발췌
무시.
무관심.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두 가지다. 내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태도로 서평을 써 대는 평론가, 내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태도로 독파 리스트를 쌓아 대는 서평 사이트의 관리자들, 내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지방의 서점. 나는 책장을 펼쳐 들 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서점을 지날 때마다 심한 슬픔에 휩싸인다.
(...)
'플리커 스타일',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수몰 피아노'. 내가 세상을 파악하려 하던 과정에서 태어난 기형의─그러나 예정대로의 산물들. 그것은 엔터테인먼트라고 단언하기에는 어렵고, 미스터리로 칭하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고단샤 노벨즈의 독자가 원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강도强度를 믿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전해질 곳에는 전해지겠거니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예측이 너무 순진했었나? 아니면 세상이 정말 거지 같은 것인가? 지금에 와서는 도무지 모르겠고 확인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분노니 슬픔이니 허무함이니 하는 단순한 감정조차 품지 않게 된 지금에 와서는. (종장, 250~251p 발췌)
2. 줄거리
여중생 토코는 학교를 어느 날 큰맘 먹고 학교를 땡땡이 칩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걸어 항구에 도착했다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화물선에 탑승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작은 마을이 있는 섬. 그 곳에서 다음 배가 도착할 때까지 한 남자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그 남자가 맡긴 것은 집 안에 박혀 노트북만 두드릴 뿐인 한 남자의 감시. 지루하나마 그 작업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잠시 눈을 땐 사이 그 남자는 돌연 사라지고 맙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실종수색을 하고, 그 와중에 집으로 송환된 토코. 하지만, 혼란 뿐인 정신상태로 학교 생활이 제대로 될 리도 없어서, 우연히 만난 한 기묘한 쌍둥이 남매와 함께 섬으로 돌아와 그 남자, 나오토의 실종을 다시 한번 조사하게 되는데...
3. 작가로서의 고백
이 책은 책 하나를 통째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쓴 글입니다. '사소설'을 썼다는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고백'과 '고민'을 책의 서사와 지문에 빼곡히 채웠다는 것입니다.
미스테리의 '트릭'과 '소실자' 모두 작가 자신의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심경을 형상화 한 것이며, 서술 면에 가서는 아예 본문 중에 난데없이 작가가 끼어들어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건내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말에 와서는, 작 내 서사를 고의로 망가트리고, 환상의 시궁창에 쳐 박은 뒤, 작가로서의 비통함과 한 맺힌 절규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후기>조차 후기가 아닌 <종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본문에 연계시키며,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보수적인' 시장과 문단을 비난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 책을 '모든 작가지망생의 성서'라고 불렀습니다만, 확실히 그렇겠지요. 과연 누가 '작가로서의 고민'을 이렇게 독기 품은 문장으로 써낼 생각을 할까요. 이 책의 가장 앞에는 "소설가는 아이돌 스타와 마찬가지로 '멋진 직업'이라는 꿈을 꾸게 해 줌으로써 지위를 확립해 왔다"라는 후쿠이 켄타라는 사람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꿈을 대놓고 박살내겠다는 듯, 거침없이 자신의 상황을 깎아내리고, 독자와 평단을 원망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글을 옹호하는 독살스러운 글을 써 냈습니다. 그 어떤 자기고백적인 소설가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그 행위를, 당당하게 저질러 버린 책입니다.
이 책을, 이런 짓을 해 버린 작가를 여러분은 받아 들일 수 있습니까?
'감상'을 쓰기에는 적절치 않은 글입니다. 재미 있다, 없다의 평가를 내릴 글이 아니지요. 그래도 한번 쯤 읽어 보는게 좋을겁니다.
4. 마치며
그런데 이 혼을 망가트리는 듯 써 버린 '크리스마스 테롤'은 이 파격때문인지 중판에 들어가고(즉, '돈을 못벌게 하는 작가라서 내 처진' 사토 유야를, '돈을 벌어주는 작가'로 만들어 주고), 사토 유야는 '1000의 소설과 벅베어드'로 미시마 유키오 상도 수상하고, 2006년에는 자기보다 더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결혼도 하고, 작품 활동도 잘 하면서 잘 나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인생 아이러니.
지금의 사토 유야에게 물어 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작가로서의 진실된 절규입니까, 아니면 '안 팔리던 한때의 방황'일 뿐인 부끄러운 과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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