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정운
작품명 : 가면의 대공
출판사 : 동아
대륙사상 최연소 대현자에 마법사, 그리고 극강의 검사.
몇 천년의 세월을 윤회하는 대현자 시스페로지누스의 환생.
소설의 제목은 가면의 대공.
위 세가지를 들으면 귓가가 쫑긋해 집니다. 언뜻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런 소재인 만큼 반대급부로는 이와 비슷한 것을 연상케하는 먼치킨적인 많은 소설이 이미 쓰여나왔습니다.
과연 이러한 소재를 작가는 어떻게 요리해 나갈까 궁금하더군요.
읽어보니 줄거리를 잘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첫 작품이라지만 자신이 짜 놓은 대로 잘 진행한 걸 보면 실력이 있더군요.
주인공은 스스로의 기억을 봉인하고 환생한 인물.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담하게 잘 써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실력이 있다는 것이 꼭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글은 잘 쓰지만 이야기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쓴 글이라면 아주 괜찮지만 독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쓴 것이라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나 호기심, 긴장감 등을 적절히 부여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읽으면서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대단히 즐거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재미 보다는 자신이 구상한 것을 하나 하나 쓰고 이어놓는 것에 더 집착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소설의 분위기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주인공은 대단히 뛰어난 천재이면서도 그 심성이 도저히 소년으로서가 아닌 무감각하고 노쇠해 보이는 노인과 같습니다. 염세적이고 약간 비관적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비관적이라는 의미는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듯 누군가 방향을 가리키면 그것에 따라가는 모습에서 느껴집니다.
그 와중에 뭔가 희망적인 생각이나 자기 발전 혹은 수련, 학습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이전에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사용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말해 과거를 그대로 살고 있는 듯한 인물이란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재미를 줄 수는 있겠으나 흥미로운 사건들이 없었고 마치 굵직한 줄기로만 스토리가 이동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굵직한 것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사실 근본적으로는 제 취향과도 연계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소소한 사건들의 재미를 좋아하는 성격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게 분명합니다. 이야기꾼들은 별것 아닌듯 가벼운 사건들에서 재미를 뽑아내고 그것을 어느샌가 굵직한 스토리에 가느다랗게 연결해 놓지요.
또한 주인공의 운명을 누군가가 쥐어 흔드는 듯한 전제 자체를 안 좋아합니다. 어딘가 얽매이는 듯한 느낌을 주니까요. 이 소설에서는 처음에 두 여신이 나와 주인공에게 운명을 부여하게 되는데 어느 여신을 선택했을지는 힌트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소설은 잘 썼지만 감정이 염세적이고 침침한 주인공이 축 늘어져있는 듯 느껴져서 그 부분에서만 아쉬웠습니다.
재밌게도 비슷한 전제를 가진 사나운 새벽의 주인공이 떠오르더군요. 그 소설의 주인공 또한 극강의 흑마법사이며 극강의 검사였고 또한 기억이 봉인된 채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려 애쓰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은 겉으론 어둡고 정처없었어도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껴야 했으며 궁극적으로 행복을 끊임없이 갈구했습니다.
가면의 대공은 소설은 잘 썼지만 사건이 너무 굵직한 줄기로만 이루어졌고 주인공의 생각이나 대화가 침침하고 소소한 재미를 부여해 주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음 작품은 좀더 밝은 분위기에서 재미있는 사건들을 많이 넣어준다면 인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꾼은 언뜻 단순한 이야기만 가지고도 긴장감과 흥미진진함, 호기심을 독자에게 전달해서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짜내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에겐 너무나 간단한 작업이라는 양 수많은 이야기를 뽑아내지요.
복잡한 이야기로 무거운 분위기를 내면 독자에게 글 참 잘 쓴다는 칭찬은 얻을 수 있겠으나 더 많은 사람을 아우르는 이야기꾼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은 어떻게 쓸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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