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수수림
작품명 : 무인의 길
출판사 : 북두
'무인의 길'은 제목처럼 '무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인공의 고민과 깨달음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설입니다.
소림 근처의 작은 무가, 유가장. 유가장의 소장주로서 어릴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유서문은 유가칠권을 익힌 후 소림사의 현오대사에게서 백보신권과 보리달마심공을 배우게 됩니다. 소림사에서의 수련을 끝낸 유서문은 유가장으로 돌아가던 일에 사람들을 위협하던 산적을 보게되고 평소 꿈꾸던 협행을 행합니다. 하지만 그의 주먹에 사람이 죽게 되자 살인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무협소설에서 '무공'과 그 무공을 이용한 '싸움'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무공이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싸움이 거의 없는 무협소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무협소설에서는 무공을 이용한 싸움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설봉님의 '산타'처럼 실전무술일 수도 있고, 금강님의 '절대지존'처럼 초인들의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이라는 것이 현대의 격투기 대회가 아니라 고대 중국에서, 돈 혹은 명예 혹은 원한을 이유로 하여 벌어지는 것이기에 죽음과 살인은 거의 필수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거기다가 무림이라는, 살인기술을 익힌 걸어다니는 살인병기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배경인 만큼 피와 시체는 그야말로 시산혈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입니다.
당연히 살인도 자주 나옵니다.
그것이 엉겁결에 휘두른 칼에 적이 죽은 것이든, 주먹으로 두들겨 팬 다음에 지쳐서 헉헉거리는 것이든, 손을 휘둘러서 수백 명을 한 번에 죽이는 것이든...
무협소설의 주인공들은 살인을 많이 합니다.
살인이유나 방법, 표현은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많이 죽이다보니 가끔 이런 공격을 받게 됩니다.
'무협의 주인공들은 모두 뇌수술이라도 받아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놈인가?'
무협에서 주인공의 첫 살인 이후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1. 아무렇지 않다. 본래 무림은 비정한 곳이다.
2. 자신의 입술을 한번 깨물어준다. 그러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가 3초 후에 정상으로 돌아온다.
대부분 이렇습니다.
물론 고대 중국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과 살인에 대한 것이 지금과 같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협소설에서 죄다 주인공이 살인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무인의 길'의 주인공인 유서문은 특이한 주인공입니다.
무고한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을 털려던 산적을 힘 조절 잘못 해서 죽였다고 몇 년 동안 괴로워하고 그 후로도 사람이 다칠까봐서 사람을 상대로는 무공을 펼치지도 못할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사실 무협소설을 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철학적인 고찰, 고대 중국의 시대상, 문화상, (실제)무술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느끼려고 볼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 하나 죽이고 '으아아아~ 나는 살인자다! 나는 죄인이다!'라면서 구석에서 엉엉 울고 싸움이 나면 벌벌 떨면서 죄책감과 공포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면... 솔직히 짜증이 나고 답답할 것입니다.
과연 이 답답한 성격의 주인공을 어떻게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게 하느냐가 핵심 포인트일 것입니다. 주인공의 착하고 순수한 면으로 사로잡을 수도 있겠고, 주인공이 느끼는 괴로움을 독자들이 공감하게 할 수도 있겠죠.
'무인의 길'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매번 강호에 나타나서 혈겁을 일으키는 현음과 지련, 그리고 언제나 홀연히 나타나서 그들을 막는 천단과 패왕이라는 네 개의 비밀세력에 얽힌 무림의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유서문의 번뇌와 고민과 깨달음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무공이란 무엇인가. 살인은 무엇인가. 무인의 길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유서문의 고민과 이해, 깨달음이지요.
언뜻 평범한 '무림정복을 노리는 비밀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는 자들'이라는 스토리에 유서문의 저러한 고민과 깨달음이 더해져서 '무인의 길'은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1권에서는 어느 정도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서 실전도 충분히 해냅니다. 죽이는 것은 못 하지만 두들겨 팰 수는 있거든요.(그 전에는 그것도 못 했습니다.)
음, 마지막으로 좀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은... 이거 사람들이 너무 착하네요.
사파 놈들이야 악당인건 마찬가지인데 정파 사람들 이렇게 착하면서 용케 강호를 지켰군요.
유가장 사람들이 자신들의 친척이거나 가족이었을 이들을 죽이고, 유가장을 공격한 자들을 이겨내서 그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자 차마 죽이지 못 하고 안으로 데려와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고문도 못 하고 그냥 계속 묻기만 하다가 무공만 폐지하고서(무공 폐지하면서 유서문이 상당히 괴로워하던데...) 밖에 놔두고(동료들이 데려가라는 순수한 호의에서) 그들이 동료들에게 살해되자 안타까워하면서 무덤까지 만들어주고...
너무 착한 것 같습니다. 모두 스님이나 도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랄까요.
물론 정파인데다가 착한 이들이니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좀 과하더군요. 피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들도 여럿 죽었는데 말입니다. 숙부가 죽고 유가장의 무인들이 여럿 죽은 상태에서도 오히려 적들의 무공을 폐하는 것에 괴로워하는 유서문의 모습은 답답하더군요.
답답해서 '안 죽이고 돌려보낸 악당이 돌아와서 모두 죽여버리는 내용이 나오면 좋겠군.'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닥치는 대로 사람 죽이고 강간하고 약탈하면서 '으하하하~!' 웃는 놈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으음, 역시 저는 성격이 험악한가 봅니다. -_-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건 순전히 제 취향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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