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황규영
작품명 : 천하제일협객
출판사 : 누가 채갔을것임
작가 황규영.
저는 그의 자신만만함을 좋아합니다.
그는 자기가 쓴 작품이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독자도 그가 쓴 작품이 정말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 이유를 살그머니 말합니다.
"저는 제가 재미있을 것 같은 주제를 씁니다."
이 말에는 그에게 부여된 더 큰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재미있을 것 같은 주제를 쓸 뿐만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가집니다. 좋아서 쓰는 글 힘들정도로 하진 않는다며 살짝 웃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글을 바라볼 수 있는 작가인 동시에, 그 자신이 보편적인 취향을 가진 독자이기에 그는 소설가로서 너무 많은 특혜를 부여받았습니다. 장르문학의 신이 진정 존재한다면 아마 그는 실수로 피 한 방울을 인간 세상에 떨군 일이 있을 겁니다. 적어도 황규영 작가가 표사를 쓰기 전에.
그는 비록 글에 어두움과 무거운 사상을 지닌 소설을 쓰지 않지만 그것은 그가 그런 것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가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도 작가인 고로 보는 눈이 있어 댓글을 읽습니다.
댓글에서 독자는 항상 작가에게 요구를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나는 이게 마음에 안든다.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장르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점은 대부분 다릅니다. 자신이 보기에 틀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황규영 작가는 분명 그들의 지적을 한 귀로 듣습니다. 동시에 황규영필터로 걸러내 다른쪽 귀로 흘려보냅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미 그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그가 꿈꾸고 정의한 무협세계에선 영원히 근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물이 근엄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근엄은 하더라도 모든 것에 근엄할 수 없다는 인간의 다중성을 스스로 정의해놓았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는 근엄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너무도 세속적이고 희극적인 모습을 거리낌없이 보입니다.
극단적인 성격의 인물은 기존의 무협소설에서 흔합니다. 그게 캐릭터를 정의내리기 사실 더 편하니까요. 대사를 적게넣으면 자연히 무거운 캐릭터가 되는 거고 살인을 거리낌없이하고 씩 웃음지으면 잔혹한 캐릭터, 혹은 다른 인물들의 주인공에 대한 평가를 통해 주인공은 어떠한 인물이다라는 생각을 독자에게 갖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황규영작가가 세상을 살아오며 느끼기로는 그런게 아니올시다라는 겁니다. 아무리 공식석상에서, 회사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친한 친구 앞에선 누구보다 소탈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정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비판이 그에게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료가 하나만 있다면 비교하고 견주어 해석할 수 없듯 칭찬과 비판이 동시에 존재해야 그또한 갈 길이 보이는 항해자입니다.
그는 작품마다 자신이 생각하는게 맞는지 알기위해 실험을 하고 있고 그것이 독자의 취향과 어우러질 수도 혹은 약간 어긋나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시장에서 실패한 작품인 소환전기가 이때 자주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실패또한 그가 원하는 작품에 한걸음 나서게 해주는 발걸음이 되어주고 자료가 되어주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애초부터 실패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모든 작품을 다 재밌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마 그래서 그는 어쩌면 비판을 읽으면서도 흐뭇해할 지 모릅니다. 이미 짠 항로가 있는 그에게는 그 비판조차 그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 줄 나침반의 역할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테니까요.
그런 그의 성격은 단지 끝을 보고 싶기에 다시 펜을 잡았다는 첫작품 표사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옛날 04년도에 고무림에서 연재되었던 소설입니다. 휘둘리기 쉬운 초보작가 때부터 자신에게 이런저런 주문(지적)을 하는 독자에게 표사가 습작이라는 사실마저 이용하여 자신의 스타일대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완결짓겠다고 당당히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습작이니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말란 의미였지만 제 생각에 더이상 습작이 아닌 지금의 그의 소설에서도 이 이야기는 똑같더군요.
그래서 그는 비난은 절대 사절하지만 비판은 환영하고 동시에 비판을 흘겨듣는 무서운 컴비네이션을 구사하는 작가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소설을 마음껏 써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만드는 사건들에 '실소'하고 비평하기도 하지만 그 희극적인 사건들에 반갑게 웃어젖히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 어쩌면 그러한 질주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원군일 수 있겠습니다.
그의 글은 말로 억지 웃음을 자아내기 보다는 상황으로 웃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황규영 작가가 손쉽게 지어내는 그 다양한 상황들에 코드가 맞아 떨어진다면 즐기게 되는 것이고 만약 맞지 않아 거부감이 든다면 그것은 이 작가의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작가의 개성이며 문체임을 이해해야 하고 자신의 취향이 다름에 아쉬워해야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과일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과일이 틀린 것이라 말하는 것이 희극적인 일이듯이..
그가 만드는 사건들은 마치 굵은 가지를 두텁게 뒷받침하는 잔가지와 같습니다. 거기에 잎사귀가 붙어 풍성한 나무를 만듭니다.
'환생을 한다. 차원이동을 한다. 높은 신분을 감춘다. 강한 능력을 감춘다. 신기한 능력을 지닌다. 시간을 지배해 이득을 얻는다. 등등.' 듣기만 해도 그 소재 자체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일으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작품들은 이 소재를 이용했다는 것만으로 출판이 되기도 하지만 저는 그것만으론 많이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론 독자의 갈증을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한 소재를 제대로 자신의 소설에 우려내지도 못하고 출판되어봐야 뒤로 갈 수록 외면을 받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전 황규영 작가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위와 같은 소재를 똑같이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에서 최대한 많은 재미를 뽑아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소소한 사건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어딘가 부족한 작품들은 단지 소재의 큰 줄기로만 밀어붙이는 반면 황규영작가는 소소한 사건들을 이용해 소재의 재미를 최대한 뽑아내며 조금씩 줄거리를 다음 단계로 밀어 나가지요.
그래서 독자들은 그 재미있는 소재에 더 몰입하게 되고 또한 즐거움을 참을 수가 없게 됩니다.
천하제일협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언뜻 간단한 사건들을 가볍고 이해하기 쉽게 이어놓아 독자의 입맛을 살짝 돗굽니다. 그것을 유치하게 느끼게 하느냐 아니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기게 하느냐가 실력인데 황규영작가는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일정한 선 이하로 내려가지 않기에 위화감을 주지 않습니다.
가독성(可讀性)을 높이고 근래 독자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물의 대화를 튀게 만들기 보다는 희극적으로 펼쳐지는 상황에 인물의 대화가 적절히 배이도록 만들어 글을 적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일상에 소소한 사건을 만들어 배치하고, 또 그 사건들을 줄거리에 절묘하게 엮어놓는 작가의 능력은 과히 언제고 가벼운 입담으로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꾼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밖엔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절대 조연들이나 거대한 스토리에 주인공을 얽매이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은 마치 실에 꿰인 인형처럼 조종당하거나 작가가 거대하게 규정해 버린 운명에 헤매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움직이고 그리고 주변은 변합니다.
어둠이 어딘가로부터 솟아나 점차 세상을 잠식해 오지만 주인공이 움직이는 곳에선 그 어둠이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틀립니다.
그 모습은 많은 통쾌함을 독자에게 안겨줍니다.
동시에 자유로움과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전 황규영작가가 좋습니다.
그의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듭니다.
큰소재 빼곤 볼게 없는 소설과, 소재의 맛을 소소한 사건으로 열심히 뽑아내는 소설.
천하제일협객이 후자란 점에서 그는 뼈대에 아주 부드러운 살을 잘 붙여넣는 멋진 요리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 취향이 황규영작가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p.s. 진화하는 작가 황규영에게 무엇이 더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한가지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표사때보다 확실히 작명센스는 나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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