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조진행
작품명 : 기문둔갑
출판사 : 북박스
완결입니다.
그런데 그리 크게 흐뭇하지는 않네요.
6권까지는 정말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기문둔갑을 손에 들면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7권, 아주 작은 어긋남을 느꼈달까요?
청산부의 몰락이 너무 쉽다 여겨져서...
뭐, 세상사 내 마음 같은 것은 없는 법이고,
초반 잘 나가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많은 것이고,
소정이 주인공도 아님에야...
청산부,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7권은 무척 재미있었고 의미심장했으며 8권을 무척이나 고대하게 했습니다.
8권, 그다지 몰입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소단에 공감할 수 없었달까요?
저는 공손하영의 무사함을 확신하고 있었고, 부모님과 소정의 무사에 적지 않은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절망에 빠진 소단과 그제까지의 일치감에 타격을 입었을까요?
그 외에도 공손하영과 청선부, 소단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는 것에 의문이 있었기에 더욱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9권, 그대로는 좋았습니다.
이전의 꽉 찬 느낌에 비하면 조금은 느슨해진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10권을 읽고 나니 꼭 필요했었다 싶습니다.
표현 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아쉬워했던 것 외에는 별 불만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집중은 깨어진 상태.
구룡표국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 철없던 여아, 그 동행의 경박하던 사촌 오라비들을 보면서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10권, 힘이 좀 빠지네요.
소단과의 괴리를 크게 느꼈습니다.
소단의 깨달음이 깊어지고 그 경지가 높아진 것이 원인이지 싶습니다.
그 깨달음에 동조할 수 없었기에 그 경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8권부터, 도가적 색채가 짙어지면서부터, 소단과의 공감이 조금씩 깨어졌던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道可道 非常道니까요.
개인적으로 노자는 이해했다 깨달았다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머리에 두루뭉술하게라도 닿아 있는 반면, 장자는 장주지몽 이외에는 통 와 닿지를 않는데,
소단이 깨달음 또한 그러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수긍할 수 없는...
특히나 靑山常運步에 대한 소단의 처음 깨달음은...
나중에 고쳐 깨달았지만 그조차 크게 공감할 수는 없더군요.
사실은 하나여도 진실은 하나가 아닌 것이고
개개가 살며 얻는 깨달음은 같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할 터이지만...
그런데, 그래도...
9권 이후 10권, 참 빨리 나왔습니다.
가장 빠른 출간 주기였기에,
조금 더 시간을, 공을 들여 주셨으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네요.
완결 어떤 느낌이셨을지...
시원섭섭? 섭섭보다는 시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섭섭하셨다면 더 붙들고 퇴고에 힘쓰셨을 터인데,
빨리 완결내고 개운하게 다른 글 쓰고 싶으셨가 보다 생각합니다.
9권까지 없었던(아니면 보지 못했던) 오타가 두 군데 보이더군요.
37쪽 6행 왕소단의 이름이 왕소정으로, 256쪽 6행 장공의 이름이 장영으로...
처음보는 이름에 어? 하고 나니, 하단 문장에 내색하다의 목적어가 없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때문에 한숨 짓는 완결입니다.
이전 천사지인을 읽을 때도 그랬었습니다.
처음 천사지인을 읽고서 정말 많이 기뻐했었는데,
역시나 7권부터 아주 조금, 8권에서 조금 더, 9권을 읽고 나서는 한숨 쉬며, '내용을 압축하여 여덟 권으로 완결지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었지요.
작가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와는 별개로 제가 그것을 다 전해 받지 못한 때문이겠지만 초중반에 비해 뒤가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기문둔갑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뒤가 조금 힘이 빠졌다 싶은 정도, 천사지인보다는 마음에 드는 마무리입니다.
다만, 후반 9, 10 권은,
9권도 그러하지만 10권 역시 모용화의 술법에 걸린 방요해나 백마장 식구들, 쟁자수 이사와 장공 등의 언행을 통해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요.
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만,(-특히 방대한 인구의 중국에서도 가장 많다는 성 이 씨의 네째아들, 범인의 대표인 이사의 모습이 긍정적인 것이, 누가 주인이 된들 아무런 상관이 없질 않은가? 하는 소단의 마음을 빌려 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듯하여서 좋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기분둔갑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글이나 세상을,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기문둔갑에서 후반부에 보여진 여러 인물들, 꼭 기문둔갑을 통해서만 보여질 수 있었던 인물, 모습은 아닌 듯해서입니다.
지금이 지나면 조진행 님의 생각 또한 바뀌어 달라질져 지금 같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을 꼭 한 작품에 다 담으려 하시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음 작품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살짝 무협이 아닌 소설(장르팬들이 흔히 일반소설이라 칭하는...)을 쓰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길게도 푸념을 늘어 놓았지만,
기문둔갑 좋아합니다.
저 불평들, 6권까지가 정말 좋았기에 그에 비해서이지,
다른 여러 글들에 비해서라면 불평 별로 없습니다.
조진행 님이 좋아하는 작가인 것도 변함 없고요.
조진행 님의 다른 글이 나온다면, 주저없이 손에 쥐겠지요.
기문둔갑, 잘 읽었습니다!
빈들이 꿈으로 가득 차기를, 그럼에도 여전히 비어 있기를 기원합니다.
붙임.
제가 집중을 잃은 것은 어쩌면 권신 이정갑이 사망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지일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사실 그 즈음까지는 소단과도 완벽히 공감하고 있었다 후에 달리 느낀 것이니,
혹 이정갑이 계속 생존해 있었다면 또 어떠했을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소단이야 계속 살며, 배우며, 느끼고 생각하고 변화하는 젊은이였고, 이정갑은 자신의 사고를 확립한 인물이니 다르지 않았을까요?
다시 한번 권신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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