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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8 김휘현
작성
03.11.18 15:04
조회
1,520

(편의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신무협 시대에 접어들면서 무협의 소재가 풍부해졌다지만 설마 게으른 주인공까지 등장할 줄은 몰랐다.

  석송의 두번째 작품 '태황기'는 바로 '지독히 게으른 주인공'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시종 키득거리는 재미를 선사하는 잘 읽혀지는 명랑무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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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한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잠꾸러기 막내 아들이 점점 폐인이 되가는 것을 더이상 볼 수 없다며 벽력장의 장주가 큰 아들의 사부인 화산파의 검정진인에게 보낸 편지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투덜대며 무술수련을 통한 인격개조를 위해 화산파 속가제자로 입문한 우리의 게으름뱅이 주인공 악봉.

그러나 천생 게으름뱅이인 그가 무술수련을 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

  심법수련하다 졸고 수련시간에 지각해서 벌로 지붕에 거꾸로 매달려서도 졸고... 화산의 어른들 고개를 절래 절래...  결국 '어떤'사건으로 인해 쫓겨나고야 만다.

  그가 쫓겨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괴노인 '진무백'은 하산하는 악봉을 꼬드겨 화산의 어느 골짜기 오두막집으로 유인,  진법으로 그를 가두고 '원수를 갚아달라'며 그와 강제로 사제의 연을 맺는다.

  10년간의 무술수련... 이라기 보다는 사부의 집중적인 구타를 통해 어느새 창궁문의 모든 절기들을 습득한 악봉은 드디어 10년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도 몇날몇일씩 자빠져 나느라 부모 속을 뒤집어 놓던 악봉은 집을 습격한 악당들을 놀라운 무위로써 물리치고...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무림 정세에 휘말려 좌충우돌 협객행을 벌이게 된다는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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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황기'는 분명 독자들을 웃게 만드는 무협소설이지만 단순한 말장난으로 헛웃음을 유발하는데 그치진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석송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됐지만 그의 문장력과 글을 풀어내는 재주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 같다.

  무공의 최고 경지에 이르는 순간 홀연히 우화등선한 사부 진무백의 죽음과 주인공 악봉이 그의 죽음 앞에서도 장난스럽게 '늙은이... 한대 때려보지도 못했는데 죽었냐'며 핀잔을 주는 장면에서의 심리묘사는 특히 압권이며,

전대의 마두가 악봉에게 패해 혈안이 깨어진 뒤 하늘을 보고 감탄하며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구나'(그는 혈안으로 인해 온통 붉은 세상밖에 볼 수 없었다)'하는 장면은 영화 '이퀄리브리엄'의 베토벤 교향곡 씬 버금가는 전율을 안겨준다.

  약관의 나이에 무림 최강의 무술실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꿀밤을 먹이려는 형을 피해 달아나며 엄살을 부리는 악봉의 천진함은, 피 튀기는 무림 세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 속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점이 되고 있다.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버릇없고 여전히 무게감 없이 가벼운 악봉이지만 작품속에서 녹아나는 그의 캐릭터는 작품 전반에 걸쳐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귀염둥이 막내 동생의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태황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사 구분없이 모두 구김살 없이 밝다는 데서 임준욱식 소설과 유사점이 있다. 굳이 차이점을 찾으라면 임준욱의 소설이 진지한 가운데 밝다면 석송의 태황기는 해학적인 가운데 밝다는 정도?

  개연성이라든지(전 3권중 주인공의 첫 살인이 3권 중반부에 이뤄진다) 작품의 끝부분에서 약간의 플롯상의 미비점(구지신개가 무림혈투의 원흉으로 나오는데 그 배경이나 그의 성품에 대한 묘사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딱히 눈에 거스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비장미 넘치는 무협이나 너무 진지하기만 한 무협에 지쳐 있다면,

  유쾌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재미있으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태황기'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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