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방에 자주 오는 손님들 중에 꽤 미인형인 여자가 있다.
TV에서 봤다면 '뭐 저리 못생긴 여자가 다 탤런트가 됐나' 싶었겠지만 그 정도 얼굴도 막상 현실에서 만나면 고와 보이는 법이다.
나이는 서른 여섯, 아니면 서른 일곱....?
여자들 나이를 가늠하는 일에 서툴러 어지간한 아줌마들은 모두 미스로 봤다가 나중에 기혼임을 알고서 흠칫흠칫 놀라곤 하는 내 눈에도 일단 그 정도는 넘어 보인다.
몇십 년이 지나도 다이어트 따위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듯한 호리호리한 체격, 파마기 있는 머리를 늘상 뒤로 묶어 동그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간결한 헤어스타일, 항상 그 옷이 그 옷 같은 심플한 세미 정장....
무슨 장사를 하는지 매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나타나 새벽 두세 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돌아가는 여자다.
가정주부라면 저럴 수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저 나이에 미혼이라 보기도 이상하고, 이혼하고 친정 오빠네 집에 얹혀 사는 여자일까?
아니지. 그렇다면 저렇게 허구한 날 새벽까지 바깥을 싸돌아 다닐 수는 없겠지.
처음에 내가 그녀를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깍쟁이 같은 여자로 여겼던 것은 무슨 얘기를 하든 새가 모이를 쪼듯이 콕 찌르는 느낌으로 말하는 그녀의 말투 때문이었다.
목소리 자체는 듣기에 따라서는 푸근하게 들릴 수도 있으련만 그렇게 항상 짧게 딱딱 잘라 말하는 그녀를 상대하다 보면 어쩐지 그녀가 이쪽을 흘겨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 여자로 보이느냐, 행여라도 내가 손해를 볼까 보냐 하고 잔뜩 도사린 채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를 경계하는 듯한 그런 느낌....
하기사 피시방 알바에게 커피를 뽑아 달라거나 휴지를 갖다 달라는 말을 하면서 뭐 그리 애틋한 말투를 구사할 필요까지 있을까마는, 아무튼 나는 꽤 오랫동안 그녀를 흔히 볼 수 있는 냉정하고 영리한, 하지만 책으로 치면 굳이 내용을 읽고픈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전화번호부 같은 삭막한 영혼을 가진 여자쯤으로 간주해 왔었다.
뭐, 지금도 그녀의 영혼에 내가 관심이 없는 점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몇 달간 쭈욱 지켜보고 나니 그녀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 자연스럽게 교정이 되었다.
바깥에 비치는 것과는 달리 실제의 그녀는 오히려 꽤나 퍼석퍼석한 인간이었다.
전에는 카운터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카운터 부근으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알게 된 사실인데, 그녀는 항상 음악창을 함께 띄워 놓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게임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남들이 듣는 앞에서는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옆 사람들에게 일체 신경쓰지 않고 태연히 노래를 불러 대곤 하였다. 그것도 커다랗게 틀어 놓은 음악 볼륨을 뚫고 카운터에 앉은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의 소리로.
신경이 굵은 것인지, 공중도덕 감각이 좀 남다른 것인지, 아무튼 그때까지 그녀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영 일치가 되지 않는 면모였다.
게다가 노래만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반주 부분도 따라 부르고, 랩까지 따라하는 것을 보고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차라리 푼수에 가까운 여자였다.
그리고 또다른 의미에서 그때까지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번은 그녀의 자리에 내가 커피를 가지고 갔을 때 별 생각 없이 취하는 동작을 가장하며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을 조금 옆으로 슬쩍 옮기는 것이었다. 커피와 재떨이를 내려놓기 위해 책상에 바짝 다가가던 나의 신체 특정 부위에 손이 닿도록.
우연을 가장하기는 하였지만 그게 의도적인 행동임은 명확하였다.
어지간히 세심하게 타이밍을 잘 맞추지 않으면 무심결에 움직인 척한 손이 잠깐 책상에 다가선 알바의 국부에 자연스럽게 닿게 하기는 어렵다.
그녀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그런 시도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은 돌발적인 충동에서 나왔다는 얘기이겠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황당한 여자가 다 있나.'
요즘 그녀는 우리 피시방에 허구한 날 죽치고 앉아 게임을 하는 다른 젊은 단골 손님들과 좀 친해져 나란히 앉아 노닥거리며 게임을 하곤 한다.
그때부터 패션이 갑자기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따위로 바뀌었는데 그 점도 좀 우스웠다.
아무튼 그녀에게 커피를 가져다 줄 때마다 나는 항상 책상 쪽에 너무 몸을 붙이지 않도록 주의하곤 한다.
Commen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