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레그다르?
작품명 : 아발리스트
출판사 : 안됐죠 아마?
추천글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글이죠.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기존 판타지에 비해 석궁이라는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는 매우 마이너한 무기를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입니다. 그러고 보면 석궁이란게 중세에 그렇게 보기 힘든 무기가 아닐진데 이상하게 석궁이 등장하는 소설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최근 작 중에선 브라반트의 흑기사 정도? 두 책 다 공통점이 있다면 무기나 배경에 있어 실제 중세의 현실을 어느정도 반영하려 시도 했다는 점이겠네요. 어쨌든 제가 이 소설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된 이유도 소재의 독특함 때문입니다.
확실히 석궁이라는 마이너한 무기를 사용하여 기존 판타지와는 다른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는 나름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초반 주인공이 석궁 하나 만으로 노르만 전사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는 다수의 추적자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댓글에 단 것처럼 최근 인기를 끈 최종병기 활을 연상케 합니다. 한국인이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원체 원거리 투사무기를 좋아하다보니 그런 점에선 소재 선정이 뛰어났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그 뿐이라고 봅니다. 저는 읽으면서도 뭔가 껄끄러운 느낌을 계속 받았고 이 때문에 글에 집중하기 힘들더군요. 그 때문에 초반 프롤로그 격인 추격전이 끝난 후 얼마간 보다가 더 이상 보기를 포기해버렸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여러가지가 나오더군요. 이 소설의 특징을 제 나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어색함'이 이 소설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어설픈 현실성입니다. 아발리스트는 초반부터 기존 소설과는 약간 차이를 보입니다. 과거 실존했던 유럽 국가들을 모티브로 한 세계 설정과 그 세계 속 주민들의 생활 모습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령 주인공의 출신 국가는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한 노쓰웨이 왕국이며 주민들은 순록 수렵과 아마 직물 생산을 경제활동으로 합니다. 주인공의 초반 적으로 등장하는 세력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바이킹 전사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죠.
무기나 장구류도 롱소드 바스타드 소드 등으로 판에 박힌 기존 소설들에 비해 코투구에 미늘 갑옷, 십자궁 등으로 좀 더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정식 명칭을 쓰려하고 작가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한 노력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이 소설에선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했던 어설픈 현실성 때문입니다.
이러한 초반 묘사들을 보면서 독자는, 아니 저는 이 소설이 당시 중세 현실을 반영한 현실성 있는 글이구나하는 첫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공성 십자궁을 쉬지 않고 연습했고, 십자궁의 장비 개량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무려 '공성' 십자궁을 보조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장전하며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쐈다 하면 백발 백중인 명사수입니다.
이 실력은 그 이후의 첫 추격전에서 여실히 드러나죠. 너무 과하게 드러나서 문제였을 뿐이지만요. 10kg이 넘는 대형의 공성 십자궁을 사용하는 주인공의 사격 명중률은 100%이며 무려 900미터의 '유효' 사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기와 실력으로 추적자들을 '저격'하죠. 그냥 봐도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군대가서 누구나 훈련하는 5kg짜리 k2 소총의 사격 훈련시 최대 거리가 제 기억으론 250미터였습니다. 그것도 엎드려 쏴 자세에서 다 맞추는 사람이 거의 없죠. 그리고 최대 사거리가 1200미터인가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현대 화약을 사용한 소총이 말입니다. 이런 설정의 비현실적인 부분들은 아발리스트의 댓글에서도 수차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부분입니다. 작가의 코멘트를 보면 작가가 아는 십자궁의 최대 사거리는 850미터인데 주인공 보정으로 900로 좀 뻥튀기한거라고 작가 스스로도 이야기하더군요.
원래라면 사실 이런 의도된 사소한 설정상의 오류? 부분은 판타지 소설에서는 그닥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말그대로 판타지이고 먼치킨이 난무하는 현 장르문학의 풍토상 충분히 용납될만한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앞서말한 어설픈 현실성 때문에 이게 너무나도 글에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작가가 공부했고, 작품에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려한 노력을 했다는 어필을 꾸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짐에 따라 원래는 그냥 넘어갈 부분들이 계속 걸리고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자꾸 줍니다.
비슷한 이유로 까인 것이 역시 앞서 말했던 브라반트의 흑기사입니다. 작가가 당시 역사를 여러모로 공부하고 이를 작품에 녹아내려 하였으나 오히려 이 때문에 고증적 오류의 존재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원래라면 그닥 문제될 것이 없으나 작가가 현실성을 주려고 공부하고 이를 반영했다는 어필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거죠.아발리스트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어설픈 현실성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나중에 작가의 코멘트를 보니 애초에 현실 기반이 아니라 D&D 게임을 기반으로 세계관을 짜셨다고 하셨더군요. 어찌 보면 의도되지 않은 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설픈 현실성에 따른 어색함에 이어 다음으로 어색한 것은 상황과 인물에 맞지 않은 말투, 대사 및 어색한 문장 구성입니다. 다들 뭔가 연극을 하는 듯한 어색한 표현의 말을 하고, 특히나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적 인물들은 뭔가 어설픈 사극풍의 말투를 씁니다. 그 말투의 화자가 약탈하러 다니는 호전적인 노르만 풍의 전사와 산적인데 말입니다. 어미로 '~다네'나 '~입니다요' 를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전후의 대화들까지 이어서 보면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중 엑스트라들의 대화가 상황과 인물이 어긋난 체 그대로 나타납니다. 덕분에 어색함은 극에 이르죠.
그 외에도 중간 중간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말들도 어딘가 어색합니다. 예로 사람을 처음으로 죽인 주인공이 시체에 박힌 볼트를 뽑으려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는 장면에서 하는 대사가 '아아.. 할 수가 없어!' 입니다. 할 수가 없어? 그냥 따로 놓고 봐도 이상하지 않나요? 뭔가 상황을 설명해야 겠는데 이를 억지로 주인공의 대사로 처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집니다; 소설이니까 그냥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 묘사면 충분할 상황에서 저런 그냥 써도 이상한 표현을 굳이 써야 했을 이유가 뭘까요?
프롤로그에서 주인공의 대적자 역할을 한 '사냥개' 치미르?는 이런 어색함이 극을 달립니다. 뭔가 억지로 사극의 장군풍 대사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영주의 심복이자 약탈군의 장교쯤 되어보이는 이 인물이 추격을 계속하다가 주인공의 반격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황에서 한 대사를 하나 들어 볼까요?
'조준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오로지 망을 구성하며 사격하라!'
솔까말 누가 저런 표현을 쓰겠습니까... 그냥 문장으로 봐도 어색하기 그지 없으며, 급박한 상황에서 구어로 사용한다면 더 이상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능력 딸리는 저도 '조준하려고 하지 말고, 화망을 구성해!' 정도로 다듬을 수 있겠네요. 이런 어색함은 전체 글에서 꾸준히 나타납니다.
뭔가... 아발리스트에 나오는 대사들을 보면 두가지 생각이 듭니다. 첫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어설픙 사극풍이라는 느낌과 영어 문장을 언어 능력이 딸리는 사람이 직역어투로 번역했을 때 보이는 어색함 같다는 느낌입니다. 앞서 말했던 설정상의 어설픈 현실성은 그냥 넘어 갈 수 있다고 쳐도 이건 뭔가 억지로 분위기 잡으려고 저러는 건지 몰라도 순전히 작가의 문장 구사력?이 모자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상황 서술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어색한 문장 배치 나 문장 구성이 너무 많아요. 더이상은 저도 쓰다가 지쳐서 따로 예시를 들지는 않겠습니다만 이건 아무리 봐도 작가의 필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 점도 함께 생각해보았을 때, 이 소설이 어떠한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초반에 최종병기 활을 연상시킨 것은 당연합니다. 소설에선 불필요한 대사 처리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개연성 부족한 어색한 분위기 잡는 장면의 연출, 어설픈 사극풍의 대사 등을 생각해 봤을 때, 작가가 한국의 판타지스런 사극 드라마, 영화 등을 머릿 속에 그리며 소설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한국 사극 영화 드라마에서 보이는 문제점, 한계점들이 그대로 글에서도 나타나죠. -_-;;
여러모로 봤을 때 이 소설은 소재의 독특함 참신함에서 오는 재미를 작가의 필력부족으로 모조리 깎아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글에서 어색함을 느끼며 결국 그 어색함에 더이상 보기를 포기한거죠. 이미 출판된 장기 연재 작품도 있는 작가가 이렇다는 점에서는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소재의 참신함은 어느 순간 식상해지지만 필력 부족에 따른 문제는 글 전체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중도에 보기를 포기해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반에 이미 독자를 붙잡는데 실패했으므로 그건 중요한게 아니죠. 그래도 작가의 이후의 연재분에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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