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전무림기사. 이 소설의 전반부는 도굴꾼으로 나름 살던 주인공이 의문의 동굴을 파헤치는 일에 휘말렸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요상한 운명에 빠져들어 헤매고 그것을 헤쳐 나가려고 고생과 삽질을 연속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전반부는 아쉬운 구석이 있긴 해도 세이브 로드 해가며 올바른 진행방향을 찾는 듯한 주인공의 기이한 상황과 배신과 욕심이 교차하는 전개와 그런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면면 묘사까지 흥미를 동하는 요소들이 많고, 여기까지만 보면 난전무림기사는 입맛 까다로운 사람 아니면 누가 봐도 충분히 볼만하다며 추천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아니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죠, 첫 끗발이 X끗발이란 사실을.
전반부만 해도 험한 세상에서 나이도 어느 정도 먹어서 지혜도 있고 잔머리도 잘 굴러가던 주인공이 어째 갈수록 자신의 나이만큼 쌓인 경험까지 싸그리 말아먹은 듯한 행동을 반복하는 건 소설 속 설명대로 급박한 상황 전개에 주인공이 정신을 못 차려서라고 칩시다. 하지만 소설 상에서 앞서 나온 내용이 실은 ‘페이크다 이 XX들아!’ 였다고 외치는 전개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앞부분에서 안 적어놔서 그렇지 실은 이렇다. 메롱!’ 하는 식이 소설 상에서 몇 번이 반복되다 보니 가면 갈수록 읽는 입장에선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의 심정이 되어갑니다. 반전이 계속되니 반전에 무뎌져서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말하고 싶어지는 거죠.
난전무림기사는 뒤로 가면 갈수록 흡혈귀가 나오고 평행차원이 나오고 요소 하나 하나만 보면 흥미롭다 할 만한 것들이 연속됩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의 추가가 앞선 내용에 복선 없이 등장하니 잘 봐줘야 순간의 깜짝쇼이고, 괜찮은 수묵화가 될 수 있는 그림에 유성물감을 떡칠해 그림도 아닌 이상한 걸 만들어 놓은 수준에 그칩니다. 복잡하면서도 치밀한 소설 속 세계관이 만들어지려면 나중에라도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납득할 수 있는 떡밥을 깔아놓고 갔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이 뒤로 가면서 덕지 덕지 덧붙이니 소설이 진행될수록 화장품만 좋지 화장술은 폭탄 수준인 얼굴과 난전무림기사가 매한가지인 꼴이 되어갈 뿐이죠.
결국 난전무림기사를 다 읽고 나면 허탈. 재치 있는 부분 부분, 나비효과 같은 영화에서 따오긴 했어도 플러스 알파가 된 소재, 도박 만화를 보는 듯한 인물들간의 심리전, 깔끔한 문체, 좀 뻔하긴 해도 납득 가고 읽을 만 했던 주인공의 행보 전환. 등등 난전무림기사를 애초에 집어들 때 보였던 장점 따위보단 별 카타르시스도 안 느껴지는 마지막을 본 허무함이 남습니다.
난전무림기사를 쓴 소설가가 이런 식으로 읽는 사람 허탈하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난전무림기사의 소설가는 이전에 쓴 무림해결사 고봉팔에서 이미 이런 식으로 초반에 볼만한 인물들과 재치와 소재 보여줘 놓고선 별 복선도 안 보이고 재미도 없는 ‘페이크다 이 XX들아!’ 를 반복해 읽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 전력이 있습니다. 바로 전작인 일구이언이부지자도 ‘페이크다 이 XX들아!’ 가 계속된 소설이긴 했지만, 이때는 ‘이 모든 게 소설 속 인물들이 속셈 가지고 윤색한 이야기들의 반복이었다’ 라는 방식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떡밥들이 풀려 있었기에 읽는 입장에서 납득이 갔습니다. 고봉팔에 학을 뗐지만 일구이언이부지자는 어느 정도 만족했기에 난전무림기사도 읽게 되었습니다만, 결과는 고봉팔 2, 이 소설가의 소설은 내용 전개가 페이크가 아니라 전반부가 재미있다는 게 페이크란 사실만 확인합니다.
난전무림기사는 재치 있는 부분 부분이나 팽팽한 심리전이나 생동감 있던 인물들 등 화려하진 않아도 적합하고 아주 모자란 데 없는 입을 만한 옷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거 덧붙다 보니 깔끔한 디자인의 옷 만들어 놓고선 멋 부린다고 이거 저거 화려하게 덧붙이다 요란한 장식이 정신 사납게 하며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폭탄스런 옷을 만든 꼴이 되었습니다. 괜히 덧붙이지 말고 전반부에 보여준 대로만 갔다면 어땠을까요. 최소한 읽는 사람이 지치진 않았을 겁니다.
난전무림기사를 쓴 소설가 자신은 속셈과 속셈이 교차하는 복잡다단한 전개에 욕심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개를 하고 싶으면 뒤에 가서 납득가게 복선도 뿌려놓고 토대를 단단하게 다져놓아야 할 텐데, 자기가 좋아하는 소재를 역삼각형 가분수 꼴로 쌓아 사상누각을 만들어 놓기만 했습니다. 정작 소설가 자신의 장점이라 할 만한 장점들은 싸그리 뭉개놓고 말이죠. 소설가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게 제대로 꽉 맞는 전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맞추어 놓으면 뭘 합니까. 독자가 머릿속에서 맞출 수 있게 풀어놔야죠.
소설가든 보통 사람이든, 능력 면에서 자신이 가진 욕심과 자신이 가진 강점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욕심을 취미의 영역으로 돌리든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을 자신의 강점과 맞출 수 있도록 엄청 노력하든가 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뻔할 수 있는 소재나 전개도 재치와 생동감 있게 담아낼 능력이 있는 소설가가 자신의 장점으로 전반부를 보여줘 놓고 자신의 욕심으로 읽는 사람 허탈하게 만드는 걸 반복하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욕심이 소설가 머릿속에서만 만족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들에게도 만족될 정도로 탄탄한 전개를 가진 소설을 쓰든가, 아니면 소설가의 장점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경쾌한 전개를 가진 소설을 쓰든가, 둘 중 하나가 난전무림기사를 쓴 소설가의 다음이었으면 합니다.
저 자신은 ‘초반에 볼만해 봤자 이번에도 페이크겠지’ 싶어 다시 이 작가의 소설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이런 게 장점이니 이런 걸 살려라 할 게 보이지 않는, 존재 자체가 단점인 소설들보다야 난전무림기사가 백배 낫기야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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