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협행마
작품명 : 전장의 금기
출판사 : 문피아 연재중
작가님이 쓴 글을 보고 뒤늦게 답변을 올립니다. 여기에 이런 글을 올려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저는 작가님이 쓴 글을 비난코자 함이 아니라 일부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을 뿐임을 밝힙니다. 작가님이 글을 참 열심히 쓰고 또 글이 재미가 있다는 거야 첫 회만 보고도 알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열심히 쓰신 글인데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라는 것이 제 의도였습니다. 아닌 말로 정말 못 읽을 글이었다면 제가 30회까지 읽었겠습니까? 다만 제가 예민해서 뭔가 이 부분은 이상해 하고 한번 생각하면 그 부분이 자꾸 눈에 밟히는 지라 그 부분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곡해하고 거짓말로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을 마구 낚는 저열한 인간이 되니 심히 당황스럽니다. 이에 반론을 해보겠습니다.
소대, 중대, 대대, 군단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저는 지적한 적도 없습니다. 왜 제가 하지도 않은 지적을 의식하고 수정을 고려하신다는건지?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하는 것은 군대의 기본이죠. 집단 병진을 짜고 싸우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또 어느 시대에나 훈련지침은 분명 있었고 훈련은 시켰죠. 저는 이 부분 역시 문제 삼은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훈련소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전문적인 훈련소라... 이게 도대체 언제 생겼을까요? 중세 유럽에, 삼국지에, 조선 시대에 그런게 있었습니까? 그때에 훈련소와 군대가 따로 구분되어 유지, 운영되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군대에 끌고와 기본적인 훈련만 시키고 전장에 밀어넣어 죽으면 땡, 살면 베테랑이 되는 야만적이고 무식한 방법이었을까요? 이 방법이면 돈을 더 쓸 이유도 없는데 말이죠.
전문적인 훈련소는 화약의 발달로 기사같은 강력한 무력계층이 사라진 뒤에 등장한 것입니다. 병사 한명, 한명이 모두 높은 전술 이해 능력과 각종 장비를 다루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게 되면서 과거의 무식한 훈련체계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거죠.
오러의 존재 때문에 기사 한명만 뜨면 수십, 수백명이 학살당하는 세계에서 병사는 하찮은 소모품일 뿐입니다. 그런 세계에서 왜 굳이 그들을 위해 훈련소를 만들어 돈을 씁니까? 설마 그 병사 하나하나가 주인공처럼 기사를 잡을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돈이 있으면 기사 양성에 돌리는 쪽이 훨씬 상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쓰다 버릴 소모품 밖에 안될 병사를 훈련시키기 위해 훈련소를 만들고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짠다니... 이것은 마치 중세시대에 아이폰을 이용한다는 것만큼이나 안어울리는 부분입니다.
제가 왜곡했다고 하시는데 저는 작가님이야말로 전장의 상식을 외면하고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가 해놓은 설정을 붕괴시킨다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랜 전투에 지쳐 형식적인 전투를 벌인다는 부분은 얼핏 말이 되는 듯하지만 결국 말이 안됩니다. 왜 형식적인 전투에서 죽고 다칠 정도로 처절하게 싸웁니까? 어차피 양쪽 모두 형식적인 것을 알면 그냥 싸우는 시늉만 하는게 훨씬 상식적입니다.
작가님도 말했듯이 아무리 적대적이라도 병사 개개인에게는 자기 안위가 가장 중요하죠. 그러니 재격돌의 우려 때문에 부상병 구조를 포기하는 상황에서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까요? 아니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싸우는 시늉만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글에서의 처절한 분위기가 어울립니까?
동료를 구하려다 감정이 격앙되어 재격돌한다.... 이것도 이상합니다. 양쪽이 딱 일천정도씩만 내보내 싸운다는 합의를 할 정도인데 부상자 구조 때만 안싸운다는 정도의 합의를 못합니까? 그러면 굳이 재격돌을 걱정할 필요도 없죠.
백번 양보해서 그런 합의를 못했다 해도 도대체 왜 남겨진 부상병들끼리 싸워야 합니까? 싸움을 할 정도의 부상자면 그냥 복귀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싸움은 이겨도 아무 가치없는 요식 행위일 뿐이고 그마저도 끝났습니다. 부상당했다고 버리고 가는 조국인데 뭐가 예뻐서 그런 처절한 싸움을 담당합니까? 정말 대단한 희생정신입니다. 무의미해서 그렇지...
거기다 전투 장면을 보면 한참 치열하게 싸우다가 뿔나팔 소리 한방에 전투가 끝나고 퇴각을 합니다. 그런 상황이면 퇴각시 주변에 보이는 다친 동료 하나씩 부축해서 가면 됩니다. 그게 어렵습니까? 엄청 시간이 걸리나요? 그자리에서 수술을 할 것도 아닌데 뭐가 어려워서 구조를 포기합니까?
싸이코로 주인공을 삼는 일을 작가님이 할리가 없지요. 이 부분은 제가 과격한 표현을 하였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을 할 정도로 주인공의 행동은 이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차전을 치루고 생환한 부상병들을 보고 주인공은 그들의 생에 대한 집념에 감탄합니다. 왜 부상자들이 그런 무가치한 싸움을 해야 했는지 의문을 갖거나 내가 이제부터 이런 끔찍한 싸움을 해야한다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넘어가더라도 그 상황에서
"으아아아아!! 오룬디아에 영광을!!!"
이라 외치는 것이 어울립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 잘난 "오룬디아" 에 무한한 충성심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 같은 외침입니다. 주인공은 등록되지 않은 평민으로 국가의 보호없이 주위의 위협을 걱정하며 살았고, 원치않는 전장에 끌려 왔습니다. 거기다 형식적인 싸움이라면서 부상자끼리 결판을 내게하는 말도 안되는 조국이 뭐가 예뻐서 영광 운운할까요?
그 때문에 "우리 나라 만세! 짱이야!" 라고 의역한 것입니다. 정말 이해가 안되서요. 부상자들의 생에 대한 집념에 감탄했다면 그보다는 더 상황에 어울리는 외침이 있지 않았을까요? "선배님들! 잘 돌아왔습니다!" 같은 식으로 말이지요.
일주일간 전투 금지 규칙이 깨진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며 문제삼는 것도 이상합니다.
주인공 기수가 고작 52명이고 하나같이 기초 훈련만 받은 사실상 실제 전투에서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인 집단입니다. 아니 발목을 잡을 게 확실한, 잡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집단이죠.
그런 집단을 어차피 형식적인 싸움에 꼭 내보내야만 합니까? 전장 상황이 그렇게 절박한가요? 1~2백도 아니고 천명이 격돌하는 데 고작해야 따끈한 새내기 52 명을 투입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훈련소까지 만들어 체계적인 교육을 해줄 정도의 "선진적인" 군대에서 배치 첫날 절실하지도 않은 전투에 신병들을 몰아넣는다는 것이 앞뒤가 맞아 보이십니까? 이런 상황이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저에게는 훨씬 상식적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 최소한의 훈련도 못받고 갑자기 전쟁터에 집어넣어진다면 그 쪽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또 더 처절하기도 하겠고요.
거기다 신병을 앞에 세우는 것이 정예군을 보호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황당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걸 정말 말이 된다고 믿고 쓰신 건가요?
특별한 계략이라도 쓰는 게 아니라면 창칼을 들고 대열을 이루며 싸우는 전투에서는 선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선두가 무너진다는 것은 곧 적이 우리편의 대열을 붕괴시킬 기회를 잡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대열이 붕괴되면 이쪽은 그냥 마구잡이 난전을 하지만 상대는 조직적인 싸움을 할 수 있지요.
역사적인 전투나 혹은 전투가 잘 묘사된 소설들을 보면 소수가 다수인 적을 쪼개며 오히려 포위, 승리하는 경우가 나옵니다. 대열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작가님의 말씀은 정예병을 살린다면서 전군을 몰살시킬지도 모를 위험한 전술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난전 상황에서 "강한" 고참 하번이 선두에 선 삼각 대형으로 적을 돌파하는 모습을 쓰셨습니다. 선두에 하번이 있어 대열이 유지됐음을 몇번이나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작가님이 어리버리한 신병을 앞에 세우는 그야말로 조직적인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거기다 첫전투에서 신병을 맨 앞에 세운 탓에 정원의 80%가 사망했는데 이런식이면 도대체 얼마나 보급을 해줘야 할까요? 아무리 병사를 지원해줘도 이래서야 감당이 될지 의문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고참은 덜 죽겠지만 병사의 수는 끊임없이 줄어들겠군요.
경험많은 고참이라면 가장 위험한 첫격돌에서도 신병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로 살겁니다. 당연히 신병들의 생존 확률은 확 올라가겠죠. 그런 전투를 몇번 치루면 신병은 고참이 되고 새로 신병이 들어오면서 병력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어느 쪽이 합리적으로 보이십니까?
저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신병을 앞에 세우는 것이 전력 보존에 이득이라는 논리를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작가님에게 처음 들은 논리에요. 이건 정말.....
창 얘기에서 저는 당연히 창날은 금속일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작가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군요.
"시대를 앞선" 훈련소를 만들고 신고확인을 할 정도의 체계적인 보급체계와 "소모품에 불과한" 병사들의 치료를 위해 신관이 포함된 전문적인 의무대를 갖춘 군대가 설마 창날이 나무로 된, 아니 그냥 나무를 깎은 창을 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습니다.
정말 나무로 된 창을 준 것이라면 확실히 검이 나을 수도 있겠군요. 이해되지는 않지만 정말 나무창을 쥐어준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나무창에 찔린 병사가 창을 붙잡아서 안빠진 어쩌고는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요? 저는 고참 하번이 주인공에게 전투 후 충고한 내용을 문제삼은 것인데 제가 언급하지도 않은 부분에 대답을 하시니 뭐라 해야 할지....
하번이 분명
"이번 전투에서 경험했을 것이다. 힘 조절을 못해서 창이 빠지지 않아서 위험했지?"
라고 말했고 주인공이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작가님의 말씀과는 앞뒤가 안맞는 군요. 소설 내용과 작가님 말씀 중 어느쪽이 맞는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저 역시 이게 소설임을 압니다. 때문에 지극히 소설적인 소드마스터나 마법사가 등장해 깽판놓는 식이었다면 거기에 작가만의 논리가 들어가도 뭐라 안했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뭐라 할 수 없는 거겠지요. 작가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이 소설은, 적어도 초반은 드래곤의 등장을 제외하면 보통사람들의 처절한 전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만의 작위적인 설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비현실적 오류들을 소설이니까 하고 납득한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저로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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