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배명훈
작품명 : 신의 궤도
출판사 : 문학동네
인공위성 재벌을 아버지로 둔 사생아 김은경, 누명을 쓰게되어 사형을 당할 그녀지만, 그녀가 애증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나니예라는 초특급 위락행성 프로젝트를 실행합니다. 20만명의 사람들을 냉동수면시킨 거대한 방주를 띄워 인생의 나머지를 낙원처럼 꾸며져 있는 행성에서 보내게 하는 계획이죠. 가는 데만도 15만년이 걸리는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지만 만년 단위의 이 프로젝트는 방주를 띄우고서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발전으로 이를 가능케 합니다.
심지어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행성이 시간의 경과로 인해 쓸모없어지자 초광속 우주선을 보내 이미 가고 있는 방주를 추월해서 다른 곳에 항성계 전체를 만들어버립니다 ㅡㅡ; 참 스케일이 큽니다..
여하튼 주인공 김은경은 본인이 원치 않게도 15만년 후의 나니예라는 행성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나니예 프로젝트가 성공했는지 이 행성에는 기상천외한 이상한 문명이 새워져 있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인공위성을 신으로 모시고, 자율항법장치가 달린 비행기들을 가축처럼 유목하는 사회죠..
애정을 집착처럼 여겨 증오했던 아버지가 딸의 취향을 반영한 듯 만들어놓은 원더랜드에서 갑자기 눈을 뜨게된 딸의 심정이 어떨까요. 은경은 어떻게든 이 행성을 떠날 생각뿐입니다..하지만 나니예는 오락을 위해서는 발달된 '문명'이 필요치 않다는 판단을 한 15만년전의 사업가들 탓에 비행기와 태양열발전이 있지만 중세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곳입니다..'세계'를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관념자체를 이해 못하죠..
하지만 '신'을 연구하기 위해 천문대를 세우고 연구하는 천문교에 간다면 우주 밖으로 나갈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부여잡고 은경은 천문교의 문제아이며 '예언자'인 나물을 찾아갑니다. 그는 신의 실존을 믿는 관측신학회의 사람으로 신의 위치를 찾기위해서 신의 궤도(실제로는 인공위성의 궤도)를 찾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게 왠일, 나물은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15만년전 그녀가 누명을 쓰게된 사건과 관련된, 그녀의 첫사랑이며 애인이었던 바클라바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물은 그녀를 몰라보며, 자신은 바클라바가 아닌 나니예에서 태어난 성직자라고 주장합니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마 이것도 아버지가 딸을 위해 남겨놓은 역겨운 테마파크의 일부분인지 은경은 고민하게 됩니다..
한편 나니예의 세계도 요동치고 있습니다..세계을 지배하는 관리사무소는 남반구의 비행기 유목민들의 우두머리인 칸, 지난의 위협에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나니예의 유일한 종교(인것처럼보이는) 천문교또한 두 파로 갈라져 다투고 있습니다..또한 그 와중에 세계의 지배자들은, 15만년전 20만명의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정되었던, 상호확증파괴계약으로 인해 다가올 예정된 종말을 막기 위해 모든 수를 다쓰려고 하면서, 창조주의 딸이라 할 은경을 예의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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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엄청 했지만, 사실 기대보다 못한 소설이었습니다..설정이나, 숨겨진 비밀 등은 굉장히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가 별로였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주제 중 하나가 '사랑'이라 할만한데(아버지의 사랑, 연인의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다시 나타난 불가사의한 첫사랑 등등..) 그 사랑 자체가 감정이입 안됩니다..
예를 들어 남반구의 대칸인 지난 같은 경우, 젊었을 적 만나 첫눈에 반한 여자를 잊지 못하다가 그녀의 불가사의한 행태(늙지 않고, 다시 볼때마다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등등)에서 이 세계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정부라 할만한 관리사무소의 통제를 뛰쳐나와 거대한 유목민족의 대칸이 되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평생을 투쟁하는 사람이라는 매혹적인 설정의 사람인데..뭔가 글을 읽다보면 그런게 잘 안느껴집니다..
또 은경의 아버지도, 딸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아버지는 나름 딸을 위해 '세계'하나를 만들어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대단히 멋진 설정인데, 정작 이야기에서는 그냥 이야기 도입부를 위한 설정정도로 여겨지구요..
전체적으로 전부 다 이럽니다. 설정은 정말 멋진데, 정작 이야기는 그리 와닿지를 않아요...뭔가 많이 빠진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안줄였단 느낌이 듭니다..좀 더 등장인물들에 중점을 둔 모험(작가가 좋아하는 듯한 전쟁, 전술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캐릭터간의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이야기 마지막까지, 나물,지난, 은경, 미은 등등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일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그냥 상황이 이래서 함께했을뿐, 연인이나 친구(아니..사실 친구도 아니지만..)라는 느낌이 전혀 안들어요..
정말 독창적인 설정이나 잘짜여진 세계관의 전쟁이야기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장편소설은 뭔가 좀 더 근본적이고 대중적인게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듭니다..쉽게 말하면 아침드라마 같은거요..단물다 빨았지만 여전히 재밌게 느껴지는 그런거...
예를 들면, 대지의 기둥이란 소설이 있는데, 중세시대 성당건축이란 희귀한 소재를 썼고 그 학문적이고 공학적인 소재가 이야기의 시작이자 주제지만, 정작 독자가 그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건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얽히고 설킴, 사랑, 복수, 우정, 원한, 모험 같은 감정들이거든요...진부하지만 성당건축이란 소재가 얽히니 색다르게 느껴지는거죠..
제 생각엔 신의 궤도도 이런 소설이 되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한국SF를 읽고싶으시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SF를 읽고싶으신 분께는 그냥저냥 읽으면 좋을 소설 정도로 밖에 추천을 못드리겠네요....그래도 독창성 하나만큼은 정말 좋았던거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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