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경록
작품명 : 대한제국 연대기
출판사 : 뿔
작년 조아라연재 당시부터 읽기 시작해 지금은 매권 사서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 나이 마흔 가까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서도 읽기에 유치하지 않은 대체역사가 오랜만이라 매화 연재되기를 기다렸었네요.
다른 대체역사들이 보통 못나가면 5권, 잘나가도 8권에서 마무리 짓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미 7권까지 나온 데다가 아직까지 진행된 것을 보아 내용을 끝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10권 15권도 기대하며 보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연대기 관련 감상글이 많이 올라 오는데다가, 저도 재미있게 본 소설이고, 집에 책도 있기에 한번 그간의 내용과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미리니름 우려되시는 분은 스크롤 내리지 마시길 ^^ (생각해 보니 김경록 작가님 글도 상당히 매니악 한 글이라 보실 분은 이미 다 보셨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처음에는 감상란의 다른 글에서도 지적 되었지만 너무 주인공이 먼치킨이 아닌가 싶어 괜히 꺼려졌습니다. (장르문학을 하이텔 serial과 함께 시작한 애호가입니다. 나이도 먹다보니 먼치킨은 안보게 되더군요) 주인공이 물리학,수학,생물학,화학,국제관계학 학사에 역사학과 심리학 석사입니다. 솔직히 21세기 초반이라는 설정과, 작중 언급된 것처럼 인지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도구의 도움을 받는다는 설명이 없었다면 거기서 접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다른 님이 감상란에 의문점을 제시한 것처럼, 도대체 이런 재능들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더군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석사학위는 역사학과 심리학 뿐이고, 나머지는 학사학위 뿐입니다. 대학 다녀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학사학위가 별로 신통찮은 건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기에는 한번씩은 다 작중에서 써먹은 것 같습니다.
물리학-> 1권에서 고로에서 철을 뽑아내고 총을 만드는 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화학-> 비누를 만들고 가열분해로 아닐린, 모브 같은 염료를 뽑아내죠.
생물학-> 어떤 분은 물을 그냥 끓여 먹으라고 했다고 말씀하시던데 3권을 보니 경구수액, 즉 염분이 적절히 함유된 물을 투여해 콜레라를 치료한다고 하더군요. 은근히 써먹는거 같습니다.
수학-> 딱히 이걸 통해 뭘 하는 건 아닌 것 같더군요.
나머지 국제관계학이나, 역사학, 심리학은 작중에서 충분히 사용했다고 생각 됩니다. 거기에 석사는 역사학과 심리학 뿐이니 뭐 다른 분야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처음에 화학전습원을 설립하고 나중에 이것을 학습원으로 개편하면서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나중에는 최해산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인공이 지도편달 합니다. 과학적 지식의 기본적인 수준을 다룬 물학본원이라는 책도 남기고, 죽기전에는 무슨 유고집도 써내죠. 다만 작중에서 언급하다 시피, 당시의 인식적 한계가 있고, 주인공이 반정 이후에는 권력 유지를 위해 정치판에서 굴러야 했으므로 사실상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대기 힘든 상황으로 보이네요. 저는 과거로 개인이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만 해도 충분히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능력만큼 해냈다고 보고, 논리적으로 읽으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세훈)은 제주도의 토착 지배자인 고씨 가문에 장가를 들어 기반을 닦고, 조사의의 난에 편승해서 한성진격을 시도하는데요. 그간 훈련했던 탐라군+조사의 반란군을 바탕으로 이방원을 완전히 몰아냅니다. 이때 명나라 원군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데요, 때마침 티무르의 중국 공략이 시작되면서 명나라는 조선에서 철군하게 됩니다. 사실상 운이 따랐던 거죠.
그 다음으로 학교를 세우고 내치를 다진 다음에, 일본 공략을 시도 하는데요. 여기서 다른 분들처럼 조선군이 픽픽 쓰러지는 데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본 정벌에 동원된 군대가 천칠개라는 인물에서 보여지듯이 수립된지 채 이년 남짓의 경상도 주둔 진위대들이었고, 보급선도 길어졌을뿐더러, 우선 주인공이 직접 나서지 않은 데다가 기존 조선장수들이 전략을 짜고 지휘하는 상황을 보았을 때 개연성이 없는 것 까지는 아니더군요. 충분히 앞뒤 상황을 보면 납득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습니다. 작중에서도 조선측 전 병력이 완전히 새 무기로 군장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구식 제도도 병행해서 운용하는 상황이었더군요.
어쨌든, 조선에서 곧 이어진 명과의 2차전 끝에, 요동을 사실상 수중에 놓은 주인공은 고려왕들이 원나라때 겸작했던 작위인 심왕의 타이틀을 가져와 자신이 먹습니다. 그러는 사이사이, 중앙조정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 놓고, 기존의 신료들을 움직이면서 통치술을 발휘하죠. 충청도에서 양반들이 반란을 한번 일으키기도 하고, 완전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완전 제도를 입맛에 맞게 고치려고 명분삼아 건원칭제해서 왕을 허수아비 황제로 만들어 놓고 기존의 정부부서와 제도를 모두 뜯어 고치죠.
이 뒤로 장남 현도가 재상의 자리를 물려 받고, 주인공은 세상을 뜹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한 4권까지 여러 인물들을 통해 뿌려 놨던 역사의 흐름을 하나씩 풀어 나가더군요. 대충 정리해보면,
심왕가: 세훈(처음 주인공)->현도->서윤->(죽은 심왕 세자)->진영
심왕가 방계: 세훈->현진->(이름 기억 안 나는 두 형제)->주현
천칠개와 소만식 콤비: 천칠개 막내아들과 소만식의 맏손녀가 결혼하죠. 그 뒤로는 안 나오는 것 같네요.
이 외에도 잡다한 인물상들이 거들죠. 이방원->이도(세종대왕)->수양(한명회 등장의 단초가 됩니다), 안평(미술 발전에 공헌하죠)->이도 가 받은 개성공가의 방계로 황진이 애인 벽안도정이 등장하더군요. 최해산->최공손으로 이어지는 라인도 있고, 조사의 후손들도 간간히 언급될뿐더러, 초창기 세훈의 반정의 주축이었던 탐라계 구신들의 후손들이 훈구당이 되어 정치를 뒤흔들고 있더군요.
이미 4권에서 주인공이 없는 상태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 뒤라, 이런 후손들이 나와서 역사에 한 몫씩 하는 모습이 사실 보는 재미를 더하더군요. 솔직히 이 소설의 재미는 통쾌함이나 짜릿함 보다는, 처음에 흔들어 논 역사가 어떻게 논리적 인과관계로 맞물려서 흘러가는지 그 모습을 작가님의 지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번 전쟁을 시작하면 3권, 4권씩 진행했던 한제국건국사 보다 이쪽이 입맛에 맞네요. 군사적인 고증의 디테일에 있어서는 분명히 연대기가 한건사 보다 떨어지겠지만, 어차피 소설의 초점 자체가 다르니 딱히 우열을 논할 거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역사가 진행되가며 인물들이 휙휙 스러져가는지라;;;; 특정 인물에 이입해서 보려고 하면 연대기가 확실히 잘 읽히지는 않더군요. 주인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전체적인 판국을 그려가면서 보기 시작하니 그때야 글이 잘 읽혔습니다.
또 하나 장점으로 꼽자면, 매권 실려있는 지도와 삽화를 들고 싶네요. 사실 작중에서 낯선 지명들을 설명할 때 감이 오지 않을 때 권두의 지도를 보고 대충 위치를 파악해가며 읽었습니다. 4권의 광화문 전경 삽화는 솔직히 좀 별로였는데 5권의 심양부 전경을 그려 놓으신거 보고는 감탄했네요. 대충 건축같은 면에서도 석축건물을 올리고 그런게 사실 잘 와닿지 않았는데 어떤 식으로 발전해나갔는지 작가분이 시각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태 까지 칭찬을 늘어놓긴 했지만, 단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처음 1,2권 분량에 비해서 갈수록 권당 글의 양이 조금씩 주시더군요;; 그리고 읽다보면 오탈자가 좀 있습니다 (물론 다른 장르소설에 비하면 양호한 편입니다) 그리고 작가분 글 쓰시는 문체가 상당히 정연하고 품위가 있으신데, 대화가 적고 술술 읽히지는 않습니다. 이 점은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시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만에 나온 대체역사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확실히 권이 더할수록 또 다른 역사의 흐름을 관전하는 느낌에 책을 집어들 게 됩니다. 이제 곧 시기상으로 실제 역사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날 시기이고, 작가님이 작중에서 이것을 어떻게 또 다른 방향으로 풀어가실지 좀 궁금해 지네요. 그리고 요동, 영진, 진서, 영주로 흩어진 외부 지역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본토와는 다르게 발전해나가는 것도 앞으로 역사속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게 될지 궁금하구요.
역사도 좋아하시고 장르문학도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Commen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