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용
작품명 : 무
출판사 :
1-김용의 무공들은 증상적이다
현대 한국 무협물에서 무공이 다뤄지는 프레임은 1차적이며 단순한거 같다. 단지 주인공의 성격등을 반영하는데 그치거나, 정과 사의 대립에서 각 세력의 아이덴티티를 단지 반영하고 있거나등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반성적 전회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몇 있는데, 바로 설봉의 산타와 용대운의 독보건곤이다.
산타와 독보건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 세계의 상태 자체를 실존적 형식을 나타내기 위해 무공을 다루고 있는데, 산타는 비주류 무공 담론을 벗어나기 위한(관념론 비판으로써의 리얼리즘적 낭인-일본식 표현이지만- 세계를 대립시키므로써의 무공) 방편으로써, 독고건곤은 새로움 무공의 지평으로써 담론의 붕괴 또는 확장을 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김용이 지배하는? 몇몇 무공 담론에 대한 대안즈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현대 한국 무협들이 다루는 무공의 1차적 반영은, 김용이 만든 무공 이름에 대한 단순 이름 빌리기 수준을 못넘기 때문이고(쉽게말해 그런 현상은 김용의 유산이 아니라 명백한 왜곡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김용이 무공을 다루는 증상적 프레임이 매우 독특하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다. 즉 현재의 우리를 비추어 보아 김용은 새로울 수 있다!!
현대 무협물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품은 따로 있다. 바로 월인이 쓴 사마쌍협이란 작품이다. 왜 주목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후에 거론하도록 하자.
2-무엇이 증상적인가
여러 텍스트를 혼용하여 어지럽게 할 필요는 없다. 김용의 작품중에 가장 많은 클리셰들이 사용된 영웅문 신조협려를 검토하면서 논의를 좁혀가는게 좋을 것이다. 바로 양과와 소용녀의 쌍검합격이 다뤄지는등의 방식들에서 말이다. 두 사람은 고묘에서의 수련을 통해 고묘파와 전진파의 무공들을 깨우쳤다. 고묘파의 사조 임조영의 옥녀심경과 전진파의 검법들을 수련하면서, 그 둘은 두 무공이 서로 쌍극인걸 발견하고 전진파의 무공을 물리칠 수 있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외려 후에 발견되는 것이 있는데, 고묘에서 수련했을 당시 깨우쳐지지 않았던 후반부에 비밀이 드러나는것에서 사태는 반전되고, 그것(고묘파의 옥녀심경)은 전진파(왕중양) 무공을 상대하는 비급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어울렸을때야 완성된다는것을 작품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전진파의 사조 왕중양과 고묘파의 사조 임조영의 로맨스, 그들은 겉으로는 반목하였지만 실제론 서로 사랑하고 있었으며, 외세에 친입등 어떤 외부적 사안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임조영은 겉으론 전진파의 무공을 깨기 위해 옥녀심경을 창안했지만, 실제론 왕중양과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랐던 마음을 옥녀심경에 담고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옥녀심경은 양과와 소용녀가 각기 전진과 고묘의 무공을 적을 향해 휘두르면서(금융법왕에게 최초로) 쌍검합벽으로 재탄생된다. 하지만 더 숨겨진 진실이 있다. 단지 왕중양과 임조영의 로맨스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양과와 소용녀의 관계(사부와 제자)에서의 엇갈림들이 또는 사회 인식하에 타부가 물질화되고 있는게 바로 쌍검합격의 비밀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즈음에서 뭔가 뚜렷해지고 있지 않나? 작가 김용이 무공을 다룸에 있어서의 태도, 그것은 인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이나 정과 사의 대립같은 표피적인 반영이 아니라, 인물과 인물 사이에 어떤 관계의 위기상태나 사회적 터부를 나타내는 무의식으로써의 성격으로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
즉 김용이 여성을 그리는 방식과 똑같이 무공 또한 증상적이라는 사실(여성에 관련해서 김용을 쉽게 보수주의의 판본으로 해석한다면 그거야말로 오판일거다. 김용은 항상 남성의 증상으로 여성을 다룬다. 즉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남성성의 중핵을 갉아먹어 탈존하게 만드는 역할(남자 주인공은 욕망의 대상이 된다)을 하고 있다.)...
이는 소오강호에서 규화보전을 익힌 동방불패를 통해 역시 나타나고 있으며, 녹정기의 위소보에선 사부와 위소보의 위치적 관계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관계와 또는 사회-역사적 측면(의천도룡기)과... 등등등의 함의를 무공으로 내화시켜 다루는게 바로 김용의 방식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하는 할 점은 무공이 매우 다채롭고, 성격을 반영하는 수단으로써의 무공들이 기이하고 독특하다는것. 신조협려만 봐도 뱀을 사용하는 구양극이나, 풍류를 좋아하는 황약사의 옥퉁소나, 여하간 이런 이치에 맞는 설정들도 무협 거장의 풍미를 느끼게하는 요소다. 1차 반영이라 할지로 그는 현대 한국 무협물처럼 소홀히하는 구석이 절대 없다.
전체 작품을 위한 어떤 장치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것이다.
3-월인의 사마쌍협을 주목하라
월인의 사마쌍협은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전체적인 퀄리티는 아무래도 떨어질 수 있지만), 무공을 어떤 상징적 측면에서 주인공의 심리가 내파하는 과정으로써 그렸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사마쌍협의 주인공 자운엽은 전형적인 정과 사의 대립 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다.
자운엽의 욕망은 그의 무공으로 대변되는데 혈접검법이라 부르며, 나비의 움직임을 보며 창안한 검법이다. 물론 사마쌍협은 전형적인 현대 한국 무협의 레토릭을 깔고 지루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공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긍정적인 반영은 따로 평가해야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p.s :
설봉의 산타, 용대운의 독보건곤은 박투술과 낭인들의 비주류적 실존 무공등을 조명한 그 나름대로 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작품들을 비평하는 과정에서 쉽게 발견되는 오류는, 그것이 실재의 리얼리티로 담론화해 해석하는 유혹에 쉽게 굴복한다는것. 신체에 대한 타격이나 비주류의 피튀기는 싸움을 리얼리즘으로 단순 번역하는건 손쉬운 생각이다.
오히려 이런 견해에 반대해 난 김용이야 말로 심리적 실재를 그린 진정한 리얼리즘적 무협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 리얼리즘이 뭔가? 그것이 무협에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왜 대체 산타나 독보건곤 같은 명쾌한 답들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느냔 말이다. 바로 이 작품들이 무협에서의 리얼리즘에 대한 몇개의 대답들이라고한다면 리얼리즘이 없다/있다라는 주장 따위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무협이란 범주하에 리얼리티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이 적실한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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