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5 노레이션
작성
03.10.10 18:27
조회
1,477

  

       야차귀문 (1~6 장까지에 대한 감상)

      

       1. 순정무협(純情武俠)

      

       흔히들 무협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뭉뚱그려 부르기는 하지만,

     그 무협소설이라는 상위범주 아래로 여러 가지의 차별화가 시도되곤

     했다.

       전통적으로 정통, 기정으로 양분되는 차별화가  그 시작이요, 지난

     90년대 이후 야설록의 작품들에게서 등장한 무예소설이란 단어가 있

     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90년대 중반기의 '대형'신인들의  주옥같

     은 작품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색이 완연했고, 덕분에 저마다의  특색

     을 표현하는 수식어들이  'ㅇㅇ무협소설'이라는 식의  새로운 종류를

     구축해 나갔다.

       실전무협, 비정무협, 술법무협(과거의  검협류와는 약간 다르다)등

     등에서부터 '노자무어'나 '삼우기인담'과도 같은  구조적 해체를 시도

     한 역작들까지, 그야말로 무협의 르네상스인 동시에 다양하고도 긍정

     적인 새로움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통신무협에 이르러 그 차별화를 목적으로 한 조어는  참으로 다양

     해서 급기야 '무협소설'이라는 단어  자체를 '무협환타지'라고까지 바

     꿔버리게 만들게  되었다. 퓨전이니  타임슬립이니 이계물이니...대체

     이 작품이 무협인지 아닌지를 의심케하는 작품들마저 등장하게 되었

     다.

       사실 상당수의 이러한 명칭들은 그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지향하

     는 가치관때문이라기 보다는,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화를 통해 조금이

     나마 독자의 시선을  끌어보려는 상술적 수단에서  탄생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명칭은 달라도, 읽어보니 마찬가지의 '무협소설'일 뿐이

     었던 것이다.

       요컨데, 새로운 명칭을 붙인다는 건, 그리고 그렇게 붙여진 명칭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대단히 무용한 작업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약간의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무엄하게도 나 스스로가 또 하나의  명칭을 만들고야

     만다.

       순정무협(純情武俠).

       안신 님의 '야차귀문(夜叉鬼門)'을 두고 고민한 마지막 판단이었다.

      

       2.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야차귀문'을 읽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작품은 무협

     소설이 아니다' 였다.

       차라리 한 편의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아니, 그

     보다는 예전 어릴 때 간간이 읽곤 했던 '순정만화'와 궤를 같이 하는

     느낌이었다.

       사춘기 소녀의 아기자기한 감성,  신데렐라 신드롬을 기반으로 한

     '백마탄 왕자와의 만남'의 이야기 구조, 삶의 치열함과 죽음에의 암울

     함따윈 훌훌 벗어던지고 오로지 인애지상주의자의 낭만에 취해 '사랑

     = 행복'이라는 등식을 지향하는 가치관.

       단순히 생각해 보아도 무협소설적인 분위기는 아닐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작품의 배경으로 조합된  장치들도 다분히 무협적이지  않

     다. 비록 중국을 배경으로 고대의 전설과 현재의 황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그 실상을 보면 마치 중세유렵의 로망에서나 등장할 법한 느

     낌이다.

       황실에서 연회가 열리고, 귀족들이 등장하며, 주인공인 열 다섯 살

     소녀는 시녀와 함께 그 연회에  참석하여 '오랫동안 찾아 헤맨 나의

     왕자님'을 만난다. (따옴표 안의 문장은  실제로 작품에 사용된 문장

     이다^^)

       확실히 무협적이지는 않지 않은가?

       일단, 내가 읽은 분량만큼의 스토리를 요약해 보겠다.

      

       - '삼미안'이라는 특이한 신체를 타고난 '아화'는 어린 시절 우연히

     자신이 삼미안을 타고 났다는 것과, 그로 인해 온갖 요괴들이 찾아들

     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삼미안을 봉인하

     는 과정에서 시각을 잃게 된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고,  삼미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대로 요괴로부터 황실을 보호해 온  존재인 '야차귀문'을 찾아야만

     한다.

       그녀는 열 다섯 되던 해의 어느 황실 연회에서  마침내 당대의 야

     차귀문인 '사빈'을 만나고, 그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리고 사빈을 만나면서 첫 번째 사건이 생긴다.

       강력한 능력을 지닌 사빈을 압도하는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고, 사

     빈은 아화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존재와 싸운다. 결국 밝혀진 그  존

     재의 정체는 미래의 사빈 자신이었으며, 조만간 아화를 읽게  되리란

     것, 그 상실감 이후에야  아화를 사랑했음을 깨닫고  절규하리란 것,

     이를 되돌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의 전개이다.

       뒤에 다음의 사건을 위한 복선이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

     단 제외했음을 밝힌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기본 바탕은 위에 언급했던 신데렐라류의 동화

     적 구조이다.

       현재의 고달픔을 단숨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백마 탄 왕자'를 만나

     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전개된 첫 번 째의 사건,  다시 말하자면, 신데렐라

     가 왕자를 만난 이후의 이야기는 S.F 적인 색체가 농후하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는 상상력은 19세기 후반 H.G. 웰

     즈에 의해 '타임머쉰'이란 작품이 씌어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

     속적으로 사용된 과학적 상상력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줄기를  동시에 포장하고 있는 장치는 너무나

     도 동양적인 퇴마류의 상상력이다.

       신의 권능을 빌어 마귀를 제압하는 서양의 엑소시즘에 반해, 술법

     을 이용하여 요괴를  물리친다는 퇴마의 상상력은  대단히 동양적일

     수밖에 없다.

       자, 곰곰이 생각해 보자.

       신데렐라의 동화, 공상과학적 상상력, 술법에 의한 퇴마사.

       거기에는 거친 무인의 숨결이나 귓전을 울리는 칼소리, 붉게 흐르

     는 피의 장렬함이나 의(義)나 협(俠)을 위한 치열함  같은 건 발견되

     지 않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한 편의 무협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작품을 대했던 나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대체 이 작품을

     어느 범주로 보아야 할지를 고민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야차귀문'의 바탕이 되는 동화적 이야기와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지배하는 소녀적 아기자기함을 이유로 삼아, 이  작품

     을 '순정무협'이라는 명칭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무협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현대의 소년이 과거로 넘어가 강호를 떠돌고, 심지어 환타지의 경

     계마저도 오가는 이야기도 당당히 무협의 이름을 걸고 있는데, '야차

     귀문'같은 작품이 무협이 아닐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내가 굳이 '야차귀문'을 무협의 범주에 집어넣고 싶었던 진

     지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제 무협소설은 남성들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여성독자들에게도

     그 범위를 넓혀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바램이 바로 그것이다.

       순정무협.

       일반의 만화에서도 여성취향의 순정만화가 발전된 터에, 무협에서

     도 여성을 위한 순정무협 하나쯤 발전시켜도 좋지 않을까?

      

       3. 소설적 접근

      

       a. 스토리 텔링의 과제

      

       '야차귀문'의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굳이 '나는 무협적인 그 뭔가가 아니라면 싫어'  라는 완고한 독자

     가 아니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그

     흐름도 아기자기하고, 특히 첫 번째 사건,  미래의 사빈과 현재의 사

     빈이 대결하는 부분은 몹시 입체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초반 도입부, 아화가 사빈을 만날 때까지의 부분이

     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건은, 설령 그 어떤 설명을 덧붙인다 해도

     일단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들도록 하기가 쉽다.

       어릴 때의 삼미안을 봉인하여 맹인이 된 아화가 열  다섯 살이 되

     도록 꾸준히 황궁의 연회마다에 참석하면서까지 찾아 헤매던 야차귀

     문을 하필이면 그 때 만나야 할 이유가 뭘까? 야차귀문은 황실의 수

     호자이며 거의 대부분 황실 주변을 맴도는데, 어째서 그동안은  전혀

     만나지 못했을까?

       그리고, 사빈을 만난  직후 갑자기 등장한  '과거의 친구(그녀에게

     초혼술을 펼쳐 사빈을 데려오도록 했던 미래의 사빈)'도 어딘지 작위

     적이란 느낌이다.

       이전까지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꿈을 꾸고, 머릿속의 목

     소리를 듣고 급박하게 그 존재가 숨어있는 곳으로 홀린다.

       종합하자면, 첫 번째 사건 이전까지의 부분, 그러니까 도입부 전체

     가 소홀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어쩌면 도입부를 짧게 줄여서 독자의 지루함을 달려보고자  한 게

     아닐까?

       하지만 이는 옳은 생각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

       간결함이란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들은 고스란히 보존한 채, 상

     대적으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단락의 순서를 속도감 있게

     정리하는 것이지, 단순히 전체의 분량을 짧게  줄이는 게 아니다. 더

     구나, 아화가 사빈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는,  향후 전체의 이야기를

     떠받칠 기초이다. 허술한 기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독자의  마

     음 한 켠에 석연찮은 기분을 남겨 이야기에로의 몰입을 방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b. 인물형

      

       읽어본 분량까지 등장한 인물은 단 두 사람이다.

       물론 정말 두 사람뿐인 건 아니지만, 그 둘 이외의 인물들은 거의

     스쳐 지나가는 평면적, 몰개성한 캐렉터이니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일단 남자 주인공인 야차귀문, 사빈은 흥미롭다.

       다분히 소녀적 취향에 맞춘 인물(긴 머리카락에 고독해 보이는 외

     모, 약간은 퇴폐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성격, 무적에 가까운 능력, 황

     제에 버금가는 고귀한 신분)이긴 하지만 왠지 거부감이 들지가 않는

     다. 어쩌면 어린 시절 남자인 나 또한 심취했던 '테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주인공인 아화는 좀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곳곳에 언급되는 변덕스러움과 귀여움,  보살핌이 필요한 약한 존

     재 특유의 느낌은 과연 열 다섯 살 소녀의 그것이기도 하겠다,  싶지

     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어색하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그 어색함은 아마도 '여주인

     공답지 않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지 삼미안을 타고난 존재이기  때문에 여주인공이다, 라는 설정

     은 '그녀는 서울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울 대학교에 입학했다'라는 말

     처럼 허술하다.

       삼미안 이외에는, 그녀에게 아무런 특별함도 없다.  너무나도 평범

     한 소녀이기만 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 이하인 듯도 할  정

     도로 언행이 가볍고, 일관성이 없다.  약간 귀엽기는 하지만, 대부분

     열 다섯 살 소녀는 귀엽지 않을까? 결국 평범하다는 것이다.

      

       c. 문장

      

       문장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내가 읽은 분량은 연재 이후, 새롭게 수정한 원고인데, 거기에서도

     처음과 나중의 문장이 매우 다르게 변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뒤로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문장이다.

       바꿔 말하면, 초반은  상대적으로 거칠고  허술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서장 부분을 보면, 기전체(紀傳體)와 흡사한 고문(古文)의 분

     위기를 내려한 듯 한데, 익숙하지 않은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고문과

     현대문이 뒤섞인 느낌이다. 고문으로 몇 개의 문장이 이어지다가  갑

     자기 현대문으로 바뀌고, 다시 불쑥 옛스런 문장이 나오다가  흐트러

     지곤 한다.

       그리고 심심찮게 '순정만화'적인 대사, 지문이 등장해 전체의 분위

     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떠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순정만화'적 문장은 딱히 단점이라고만 하기는 힘들다.

       바로 이런 문장들에서 '순정무협'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만들어지지

     때문이다. 남자인 나로서는 어리둥절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섬

     세한 감정의 굴곡들이 엿보이는 소녀의 귀여운  위태로움 같은 분위

     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얼마만큼을 사용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사용하기만 한

     다면 분명히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유용한 문장들이다.  

       특히 '홍옥의 괴(홍장군)'의 캐렉터는 그러한 문장들과 매우 잘 어

     울린다. '홍옥의 괴'가 나오는 장면을 읽으면서 요즘 여학생들이 휴대

     폰이나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앙증맞은 악세서리가  연상되는 건 비

     단 나만이 아닐 것 같다.

       현재의 사빈과 미래의 사빈이 만나는 장면이나, 황궁에서 둘이 처

     음 만났을 때 사빈이 요괴들을 제압하는 장면등을 보면 적어도 무협

     이라고 이름 붙여진 소설에게서는 반드시 필요한 '격투' 묘사에 대한

     감각은 좋은 듯 하다. 깔끔하고 빠르며 신선하기도 하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방식도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

     고, 좋게 말하자면 잘 읽히는 문장형태를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어려운' 말장난을 이용해서 현학적인 분위기를  내려는 욕심도 보

     이지 않고, 이야기를 베베 꼬아서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려는  시도도

     없다. 그저 한달음에 쭉 읽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취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설읽기의 재미가 덜할  정도로 쉽기는 하지

     만, 이 작품이 대상으로 할 10대  청소년(특히 소녀)들의 독서수준을

     감안한다면, 딱 이 정도의 문장과 서술방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대개 그 나이 또래의 독자들은 문장보다는  이야기 자체만을 즐기려

     는 경향이 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굳이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자면, 비록 한 편의 소설이라지만, 거기

     에 사용되는 문장들은 저마다의 장면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각 장면마다의 색과 깊이, 속도에  걸맞는 문장을 따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동시에 그 문장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있

     을 때, 진정한 한 편의 소설이 만들어진다.

       그런 문장들의 변화가 소설의 굴곡을 만들고, 감정의 완급을 조절

     한다. 평이한 문장, 서술만으로 이끌어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부터는

     이야기야 어떻든 지루함을 느끼게 될 우려가 있다. 마치 아무것도 없

     이 반듯하게 펼쳐진 길을 걸어가면서 느끼는 그런 지루함일 것이다.

       물론, 이상론이기는 하다.

       실제로 문장을 완벽하게 활용할 줄  아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장르를 불문한 국내 작가 전부를 통털어 봐도 내

     가 생각한 기준를 넘어서는 작가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차피 힘드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틀

     린 생각이다.

       지금은 불가능하더라도, 그 눈은 언제나 가장 높은 이상을 바라보

     고 있을 때, 조금씩 조금씩 그  이상을 향해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

     다.

      

       4. 결론

      

       사실 결론을 말하기에는 읽은 분량이 너무 짧다.

       책으로 치자면, 반 권  가량에 불과한 분량이었으니,  어쩌면 위에

     길게 늘어놓은 평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분량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야차귀문'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다음에도 계속 생각하는

     건 '여성작가에 의해 씌어진 여성취향의 무협'에 대한 기대이다.

       진산을 필두로 유사하, 녹수영...근래의 이화영에 이르기까지,  여성

     작가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남자를 위한 무협'을

     썼다. 무협이란 원래 남성만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에 강요당한 결과인

     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가 읽어온 무협에의 한계속에 안주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언젠가 작가 진산에 대해서 '그녀의 작품은 '정과 검' 이전과 이후

     로 극명하게 나뉜다' 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진산은 '정과 검'에서 그녀의 성적  정체성과 무협작가로서의 정체

     성 사이의 혼란을 겪은 듯 했고,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명작 '사천

     당문'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그런 까닭에 여자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있고, 남자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따로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인 작가가 다분히 남성들만을 위한 무협소설을 쓰기란 애초부

     터 힘든 작업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재한 여성으로서의 감각이

     작품을 쓰는 내내 작품과  자신의 내면 사이의 괴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작품을 쓰는 내내 '나는 남자다' 라는 자기최면을  걸어

     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독자를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 만약 독자를 여성으로 택하고 쓴다면, 남성작가들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쉽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무협시장은  악화일로를 겪는 중이고, 이 상태

     로 나간다면 조만간 무협소설은 그 존재  자체부터 무너질지도 모른

     다. 그것이 예술이건 아니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장르는 최소한의

     소비시장을 근간으로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 최소한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장르는 소멸하는 것이다.

       현재의 시장이 좁아지고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만 한다.

       나는 그 새로운 시장의 중요한 축이 '여성독자'의  창출에 있지 않

     을까 생각한다.

       남성들만이 통쾌하게 대리만족할 수 있는 그런 무협이 아니라, 여

     성들도 기꺼이 공감하고 심취할 수 있는 무협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나는 이  '야차귀문'을 읽으면서 그 새

     로운 시장의 개척에 대한 부푼 기대를 가진다.


Comment ' 3

  • 작성자
    Lv.1 소우(昭雨)
    작성일
    03.10.10 20:05
    No. 1

    좋은 비평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柳韓
    작성일
    03.10.10 21:10
    No. 2
  • 작성자
    Lv.99 예류향
    작성일
    03.10.11 13:55
    No. 3

    좋은 비평인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군요.

    여성의, 여성을 위한 무협과 관련하여 한마디.

    야차귀문은 저의 생각으로 볼때 보통의 남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성을 위한 무협'을 이야기하면서, 남자들의 수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독자들을 위한 무협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과도기적 과정, 즉 남성과 여성이 함께 즐길 수있는 무협의 과정을 거쳐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독자'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볼때, 중간 과도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차귀문 지나치게 여성취향적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순정만화도 꽤 읽는 편이고, 김혜린과 강경옥은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야차귀문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주인공 두 사람의 관계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만을 위한 작품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예로, 만화인 '비천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비천무'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뿐만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과 역사성을 겸비한 뛰어난 작품이었고, 남성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좋은 작품을 영화 '비천무'가 주인공들의 연애 이야기만으로 축소환원시키면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두 사람만의 연애를 넘어서는, 남성과 여성을 떠나 인간에게 호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상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793 무협 용대운님의 독보건곤. +9 Lv.1 애국청년 03.10.11 1,730 0
1792 무협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 7권을 읽고 나서. +4 Lv.18 정파vs사파 03.10.11 1,583 0
1791 무협 일반연재란의 '반혼강호'를 읽고.... +1 화화[畵華] 03.10.11 1,166 0
1790 기타장르 고무림 감상/비평란을 읽다보니... +1 Lv.1 바람의지크 03.10.11 893 0
1789 무협 용공자님의 <보보노노>를 읽고. +18 Personacon 검우(劒友) 03.10.10 2,019 0
» 무협 [비평모임] 안신 님의 '야차귀문'(자유연재) +3 Lv.15 노레이션 03.10.10 1,477 0
1787 무협 임준욱님의 진가소전 +8 Lv.69 흑색 03.10.10 2,147 0
1786 무협 정구님의 신승 +9 Lv.30 남채화 03.10.10 1,687 0
1785 무협 무협이야기~~ Lv.1 그저녁무렵 03.10.10 1,399 0
1784 무협 황금인형을 읽고! +4 Lv.87 월류 03.10.09 1,423 0
1783 무협 임원영님의 황정허무검을 읽고... +6 Lv.3 天下 03.10.09 3,662 0
1782 무협 담천님의 <탈 2/3> 1권을 읽고. +4 Personacon 검우(劒友) 03.10.09 1,486 0
1781 무협 몽랑 +2 Lv.54 호종인 03.10.09 1,870 0
1780 무협 류진 님의 패왕초이 를 읽고.. Lv.1 달에게묻다 03.10.09 998 0
1779 무협 천붕낙서 - 똑똑한 헬리콥터 +5 『GUIN』 03.10.09 1,629 0
1778 기타장르 [공지] 9월 신간 최다감상 발표 +11 Personacon 금강 03.10.09 1,792 0
1777 무협 한상운의 <무림맹 연쇄살인사건> +13 Lv.1 타반테무르 03.10.09 1,792 0
1776 무협 저는 학사검전을 읽고 있습니다. +5 Lv.18 o마영o 03.10.09 1,606 0
1775 무협 감상/비평란의 글들을 읽고... +4 Lv.1 월인천강 03.10.08 1,014 0
1774 무협 운한소회 6권(完)을 읽고.. +1 後我有 03.10.08 1,326 0
1773 무협 장경의 작품중 벽호와 빙하탄 그리고 잡담.. +4 Lv.1 타반테무르 03.10.08 1,576 0
1772 무협 또 다른 맛의 호위무사, 수호령 +11 Lv.19 R군 03.10.08 2,074 0
1771 무협 + 추천] 신, 구무협의 조화 - 전검행 +4 Lv.99 예류향 03.10.08 1,989 0
1770 무협 내가 제갈량이 되어,조자룡이 된듯 뛰고있... +7 Lv.1 앙왕 03.10.07 1,636 0
1769 무협 무사는 검으로 말한다. - 몽검마도 +8 Lv.99 예류향 03.10.07 1,708 0
1768 무협 이우형님의 유수행! +4 Lv.1 무림비탄 03.10.07 1,714 0
1767 무협 패왕초이 - 도박사라.. 『GUIN』 03.10.07 1,027 0
1766 무협 애달픈 사랑의 비가(悲歌) - 야설록님의 "... +2 Lv.1 無怠(무태) 03.10.07 1,474 0
1765 무협 광혼록을 다시보면서 생각한 풍종호의글 +4 Lv.1 leedal 03.10.06 1,621 0
1764 무협 +추천] 한국무협의 추리적 기법과 검혼지 +1 Lv.99 예류향 03.10.06 1,598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