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황규영
작품명 : 네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아느냐
출판사 : 대원씨아이(주)
주관적인 시각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감안하며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미리니름이 많으니 이 책을 보실 분은 이 글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황규영 작가의 신작,『네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아느냐』가 나왔습니다. 장르는 무협도 판타지도 아닌 첩보 액션으로, 2008년 출간된 더 타이거 후로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황규영 작가 나름의 장점이라면 잠룡전설 때부터의 기조였던 '청바지와 박스티' 같은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표사 때와 잠룡전설 때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소환전기 이후에는 쉽고 편하게 작품을 쓰고 계십니다.
황규영 작가가 쓴 첩보 액션 소설이라니 과연 어떤 만듦새로 나왔을 것인가 궁금함에 책을 펼쳐보게 되었는데… 결론만 간단히 말하면 역시 황규영 작가 작품이라는 사실만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일련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황규영 작가의 정형화된 몇 가지 패턴들이 여전히 작품의 주된 구성의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워낙 알려진 패턴이라 따로 적지는 않겠지만, 황규영 작가 특제의 청바지와 박스티 소설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이라 기존의 황규영 작가 작품을 보시던 분이라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이고, 안 보시던 분이라면 그대로 안 보시는 게 좋은 작품입니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만능입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 태권도 금메달, 헌병대에서 복무하며 3군 사령관 호위하며 총기류와 전투기술도 익히셨고, 대학 입시를 운으로 찍어서 혜택 보셨을만큼 뛰어난 육감에, 어릴 때 취미로 하던 해킹 실력으로 무장했다는 배경은 깔아두었지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전국체전 태권도 금메달, 2년 간의 요인 호위 훈련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설정에 비해 너무 높게 매겨진 주인공 신준성의 전투능력….
"그것도 에이전트 중에서 상위 십 퍼센트……."
일반인 중에서가 아니라, 스파이 중에서 상위 십 퍼센트다.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그런 대단한 놈들을 셋이나 상대해서 이겼단 말이야?"
문득,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그것들, 별로 안 세던데……."
주인공 말 그대로 독자가 보기에도 별로 안 쎕니다. 아이들이 BB탄 총 쏘고 노는 것 마냥 허무한 전투씬입니다. 발로 손목을 걷어차면 손목이 똑 부러지고 이단옆차기 한 방이면 갈비뼈가 다 바스라지는 상황이니… 은신해서 저격하는 총알을 느낌으로 피해주시고 고등학교 때 태권도 금메달 따고 군대 갔다오면 근접 전투가 전문인 일급 에이전트에 버금가는 맨손 격투 실력을 구비할 수 있으니 주인공의 전투능력은 너무 과한 인플레이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킬러나 에이전트들이 방탄복도 안 입고 돌아다니니 당연히 한발에 저 세상이고, 그러니 싱겁죠.
후에 주인공에게 천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각국의 날고 기는 킬러들이 찾아오는데…, 날고 긴다는 킬러들이 전투 중에 나불나불 말도 참 많습니다.
"이따위 의뢰, 받는 게 아녔어!"
산을 힘겹게 오르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숨을 헐떡였다.
"헉헉. 내 다시는 이 나라에 발도 안 디딜 거야."
그의 머리에 차가운 총구가 닿았다.
"진즉에 그랬어야지."
킬러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헉!"
등장인물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주인공의 사고 능력, 한 번만 생각해도 바로 알아채는 것을 못 알아채는 적들과 아군들. 취미로 한 해킹 실력이 대한민국 국가안보국의 전설이 되고 세계적인 기업형 해커팀과 맞먹는 상황이 동료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혼자서도 소설 중에 나오는 사람 모두를 합친 것보다 똑똑합니다.
"나는 킬 게이트다! 내가 바로 세계 최고의 해커다!"
"게이트, 게이트!"
공포 끝에 찾아온 승리의 기쁨은 마약보다도 더 짜릿했다.
하지만, 뻗은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누구였지? 누가 이렇게 강하지? 역추적은?"
해커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막는 것만도 겨우 해냈다. 도망치느라 바빠 다시 역추적을
할 틈이 없었다.
해커 중 하나가 의견을 제시했다.
"미 중앙정보국의 해커 부대 메두사가 틀림없습니다."
"CIA의 메두사? 근거는?"
"적은 우리 못지 않은 대규모 인원과 장비로 무장한 팀입니
다. 이런 강력한 해킹 능력은 우리보다 빠른 슈퍼컴퓨터를 보
유한 메두사 외에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후략)"
미안합니다, 당신들의 적은 혼자이고 구형 노트북으로 근처의 아무 무선 인터넷 공유기를 잡아 접속해서 싸운 겁니다. 다음은 주인공의 한 마디.
"인터넷이 느려서 못해 먹겠네."
(중략)
"꽤 유명한 놈이네. 어쩐지 세더라니. 그럼 내 실력도 대충
킬 게이트 정도 되는 건가?"
킬 게이트에게는 이십여 명의 해커와 슈퍼컴퓨터까지 있다
는 건 모르고 한 판단이다.(후략)
주인공이 빛나려면 대립각을 세우는 쪽도 빛이 나야하건만 황규영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습니다. 국가안보국을 포함, 그 많은 한국의 정보국은 허수아비들이고 적들은 허약하기 짝이 없으니 긴장감도 없고 편안하기만 합니다. 그런 것이 황규영 작가 작품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요.
그는 감염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장소에서 서난정도 보았다.
속으로 한숨이 다 나왔다.
'우리나라 첩보원들 수준 하고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 말씀대로 우리나라 첩보원들 수준은 천왕의 무반련과 무정회 수준의 개그나 떨고 앉아 있습니다.
"병명은 뭐야?"
-의사들도 모르겠대요. 아직 병원체 분리가 안 되고 있어요.
"젠장! 역시 생물학 무기였어!"
라고 해놓고,
"이런 규모의 일에 여고생이 목표가 될 리가 없어."
"아들과 남편이 있는데……."
서난정이 말꼬리를 흐렸다.
장석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들이군. 아들에게 뭔가 있어. 느낌이 와."
서난정은 그 말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말꼬리를 흐렸었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아들은 평범해요."
'생물학 무기 테러다!'란 판단이 섰으면 무차별 테러인지 아니면 목적이 따로 있는지 생각부터 해야할텐데… 저런 수준이니 주인공에게 쓴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생물학 무기 테러가 의심되는 가운데 도시 한복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데도 수사기관, 정보국들은 '너 갈 길 가세요, 우린 우리 길 가련다' 하고 서로 전혀 협조를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독점 해결해서 승진해야지~' 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하나 같이 '잘못하면 짤리겠다 몸 사리자' 이러고 있으니 주인공을 못 따라잡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황규영 작가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에게 모든 정보가 모이고 주인공이 정보를 잘 뽑아먹는다는 겁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현대이므로 강호에서처럼 '일단 맞고 시작하자' 같은 식의 해결법은 사용하지 않지만 대신 현대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뽑아먹습니다. 어디나 다 뚫리는 만능키 해킹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정보전은 '네가 안 불고 버티겠냐'고 마구잡이로 쥐어패는 것과 결과는 다른 게 없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으로서는 하면 안 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단서만 잡고 해결은 무림맹, 아니 국가안보국으로 퀵서비스 보냅니다. 퀵서비스만 왔다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니 세 번째 퀵서비스는 모두가 반기는 것이 당연! 이쯤 되면 전작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가 서난정이 질문했다.
"무슨 전화인데요?"
"분석실에 퀵서비스가 들어왔다."
퀵서비스라는 말에 서난정은 무슨 소리인지 단번에 알아들었
다.
"가요!"
핵심이라 이야기 하지는 않겠지만 예상 가능한 반전 - 복선이라기엔 너무 튀는 장치 때문에 - 과 허무하게 무너지는 보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싱거움을 마지막으로 한 에필로그로 마무리 되는, 천하제일협객의 엔딩처럼 '벌써 끝이야?' 하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결말부가, 매번 이런 식이긴 하지만 무척 아쉽습니다. 무적자처럼 여러 권으로 나오더라도 호흡을 길게 가져갔으면 더 괜찮았을 것 같은데….
첩보 액션 소설이라기엔 많이 미흡한 작품입니다. 첩보? 휴대전화랑 구형 노트북 하나로 원하는 정보는 모두 내 것인데 뭐하러 힘들게 첩보를 할까요. 액션? 잭 나이프 2개 한 번에 던져서 양 어깨를 꿰뚫고 저격도 피하는 마당에 힘들게 액션할 필요가 뭐 있을까요. 첩보 액션 소설이라면 응당 가질 만한 긴장감도 없고 해킹이나 총기, 생화학 무기, 국내외정황 등 작품의 질을 높여줄 만한 배경지식도 부족하니 절름발이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스토리텔링, 이야기는 재밌게 꾸며낼 줄 아는 황규영 작가이기에 읽으면서 책장이 무리없이 넘어가고 나름의 재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무협 소설 쓰듯 쓸 것이었다면 굳이 장르를 바꾸어 첩보 액션 소설을 쓸 까닭이 없겠지요. 이제 황규영 작가도 이름이 꽤 알려지고 했으니 청바지와 박스티만 입으실 게 아니라 다른 옷도 좀 입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황규영 작가의 분발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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