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rucidiky
작품명 : 페이크 사역마
출판사 :
제가 평론을 나누어서 올린 이유는 스압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3개의 글로 나눔으로 써 최대한 평론을 보는 이들의 지루함을 덜고 각각 목적에 따라 나누어 이해가 쉽도록(첫째 편은 서론과 '글'에 대해서 둘째 편은 '작가'가 가진 문제에 대해서 셋쩨 편은 결론을.) 각 편마다 무엇에 대해 평가하고 일침하는가 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허나 3편으로 나누는 것이 오히려 잘못되었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 하나로 고쳐 다시 올립니다. 또한 글의 순서가 잘못되어 평론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듯 하여 순서 또한 바꾸었습니다.
한새로 2009-12-05 09:14:38
주제넘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순수 문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장르시장에서만큼은 진리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수준의 그만한 작품을 찾는 독자들이 있기에 그것을 공급하는 작가도 생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만 원짜리 명품도 있는 반면, 천 원짜리 싸구려도 있는 것이 시장입니다.
천 원짜리를 사는 사람은 나름대로 천 원짜리에 만족하기 때문에 천 원짜리를 삽니다.
천 원짜리를 천만 원짜리 상품과 비교하면서 천 원짜리 만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건 이래서 천만 원짜리보다 나쁘고 저질이다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천 원짜리 시장에는 나름대로 그들만의 규칙이 있고 논리가 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천 원짜리를 만들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숭고한 이상과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후에 천만 원짜리를 만드는 장인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요선흑랑님께서도 그들의 단단한 아집을 깨려고 하시기 보다는 그냥 그대로 놔두고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이로울 것이란 것입니다.
그들에게 발전을 위한 지적을 주었을 때 겸허히 받아들이고 개선이 보인다면 더 큰 관심과 사랑을, 아니라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것이 해당 작가나 요선흑랑님 모두 승리하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2 한새로 2009-12-05 09:24:54
혹시나 오해할까 두려워 덧붙입니다.
저 역시 아주 즐겁게 천 원짜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3류라고, 싸구려라고 혹평을 하더라도 스스로 즐거워 물건을 만들고 기꺼이 구입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밤을 낮삼아 물건을 만듭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 물건을 구입해 잠시라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요선화랑님 같이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천 원짜리 물건을 바라봐 주시는 분이 있는 한 천 원짜리도 언젠가는 천만 원짜리 물건의 가치를 할 날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3 금원 2009-12-05 09:49:10
반대는 이유가 뭐죠? 뭐 페이크사역마를 안 읽어서 제반사정은 모르지만, 저도 조아라를 자주들르는 입장에서 보면 안봐도 느낌이 딱 오네요
4 BlackWidow 2009-12-05 09:53:58
덧글달기에 앞서,
요선흑랑님. 세 편을 글 하나에 다 붙여 주세요. 다른 비평글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눈에 띄네요.
세 편으로 나눠야 할 만큼 본문이 길지도 않습니다.
한새로님 말씀에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수긍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작가의 노력과 독자의 선호가 합쳐지면 언제나 신성불가침의
까방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정가 천원짜리 완제품은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바닥에서,
삼백 원짜리 불량품만 줄창 찍어내고 있다면 어떨까요?
모든 작품이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로 상대적
평등을 이루고 있다는 말씀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요선흑랑님의 말씀대로, 작가는 끝없이 배움을 추구해야 하는
타이틀입니다.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얼마 안되는 팬층에 안주하여 기고만장하고,
독자들의 서평마저 가지치기 한다면 감히 말하건대
떡잎이 누렇다고 하겠지요.
5 경천 2009-12-05 09:58:45
일단 글을 왜 세개로 나누신거지? ㅡ,ㅡ;
6 무의식 2009-12-05 10:57:13
지금이라도 하나로 합치는게 좋을 것 같군요.
7 뇌를분실함 2009-12-05 11:12:46
페이트팬픽 찍어내는사람은 문피아에도 많죠
8 사악무구 2009-12-05 11:49:58
반대 하는 이유중 하나가...
한개짜리 글을 3개로 나눠서 올려서입니다 -_-;;;;
다시 정리해서 올려야지 제대로된 비평글을 보고
댓글참여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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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지울 수 있는 서평?=
1주일 전 쯤 올린 페이크 사역마 서평이 지워졌다. 우스운 일이다. 작가는 스스로 속 좁은 인간 군상임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서평에 쌍욕을 쓴것도 아니요 지적한 것 하나 하나 연재편수마다 드러나 있는 사실들 뿐이었다. 허나 작가는 1주일 만에 접속해서 한다는 것이 연재가 아니라 달려있는 서평의 삭제를 할 뿐이다. 그것이 만약 전 서평의 충고를 받아 들여 작가 스스로의 블로그로 옮겨가는 것의 일부인 행위었다면 다행이지만 평론 하나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이 오만한 작가가 필자의 충고를 따른 다는 것에는 회의적일 수 밖엔 없다. 다만 추측하길 그의 자존심을 건드는 날카로운 지적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찬동의 반응(댓글)이 이 오만한 작가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하지 않았나 한다.
서평은 작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지울 수 있어서는 안되지만, 전 서평에도 말했다 시피 조아라에선 평론이 이미 독자 레벨에서 말살되어 있으므로 어떤 다른 기대를 하는 것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필자 스스로가 희망하길 조아라에서 페이크 사역마 작가 이외의 오만하고 어리석은 작가를 만나거나 그 글을 보는 것을 피했으면 할 뿐이다.
지워진 서평은 복구할 것이다. 평론의식이란 것은 겨우 삭제라는 미약하고 어리석은 행위로 막아질 것이 아니다. 다만 희망하길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평론을 보고 페이크 사역마란 작품에 대해 두번쯤 생각을 했으면 할 뿐이다.
=제 1. 작가=
조아라엔 평론이 죽어있다. 평론을 쓰는 사람이 없다거나 그 수준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조아라에 평론이 죽어있다 말하는 이유는 그 평론을 읽는 작가나 그 독자나 취하는 태도가 하나같이 수준 미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 의미로 '모두 그렇다' 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비율적 의미로 수준 미달의 대응이 그렇지 않은 반응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수준 미달의 반응이란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쉽게 말해서 오만함이고 속된말로 '빠심'이다. 조아라의 독자들은 유독 이 '빠심'이 강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에 있어 좁쌀 한톨만큼의 부정적 반응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광신도의 신앙 처럼 '믿지 않으면 부정하는 것' 식의 강한 흑백 이분법과도 같다. 이것엔 작가도 포함된다. '내 글 싫으면 니가 꺼져라' 식의 대응은 우습지도 않다. 누구보다도 앞서 평가를 받아들이고 고찰해야 할 작가가 단순한 코멘트 조차도 찍어 버려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마음에 들지 않는 평론을 작가가 지워버릴 수 있는 권한'이다. 작가가 글에 달린 서평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듣기 좋은 서평 아니면 달 생각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무슨 오뉴월에 개 짖는 소리인가.
물론 타 창작 사이트라고 나을 바 없다. 예를 들어 문피아에선 사이트 관리자가 '출판에 지장을 줄만한 평론은 자제합시다' 라는 우습지도 않은 모토로 모든 평론과 서평을 사이트의 한 구석진 카테고리로 밀어내 버렸다.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평론은 작가가 지울 수는 없지만 사이트 관리자가 알아서 지워버린다. 문피아라고 이런점에선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문피아에선 평론이 죽어있ㅈㅣㄶ 않다. 평론란엔 어쨌든 찾아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거기에 많은 피드백 또한 주어지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점으로 '빠심'으로 무장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적으며 있다 하여도 자체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배제할 분별성이 있다는 것에서 조아라와 틀린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평론의 제목이 '왜 페이크 사역마는 조아라를 대표하는가.' 가 된 것이다. 누구라도 페이크 사역마를 읽고, 그 안에 있는 작가의 말과 독자의 코멘트를 본다면 위에서 말한 것들을 한눈에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페이크 사역마의 작가는 오만함의 극치이다. 이것은 다음화에서부터 하나 하나 짚어가며 밝힐 것이다. 물론, 그 작가가 미리 글들을 지워버리지 않는 다는 전제 하에서.
자, 페이크 사역마의 목차엔 '오랜만의 설명' 이란 소제목으로 글이 올라와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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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의 설명 -->
Q1: 이놈도 좆케니아에 오는 건가염?
A1: 안 와.
Q2: 강휘류가 주인공 이름인가염?
A2: 너 프롤로그 안보는 타입이냐? 아니면 알쯔하이머 병이나?
Q3: 저기서 주인공이 누구에요?
A3: 너님은 눈깔을 뭐하러 달고 다니셈?
Q4: 갑자기 왠 시리어스?
A4: 너는 사람 죽이는 건 개그냐?
Q5: 이건 누구의 외전인가요?
A5: 야.
이상 주인공의 답변이었습니다
절대로 작가의 사심이 담겨 울컥 한 말투가 나온것이 아니라, 휘류의 말투가 그래서 그런 겁니다.
[좋은게 좋은거지]
>> 잠시 후, 코멘트를 확인 중
비로드 : 아 좋은 게 좋은 거지~~~~ 큭ㅋㅡㅋ... 근데 그 과거는 데체 누구 것이냔 말이다 궁금해~!!!!!!!!
너님아 나랑 싸우자는 거임?
자비롭게 알려드리죠.
강휘류가 주인공입니다.
제발 못 알아 볼 만한 요소를 제기 해 주십시오. [중략]
[중략]
不完全인간 : 제발 처음 내용이나 기억하고 써주세요;;
오호, 리립 다는 8초만에 이런 덧글을....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임? 나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처음 내용 잊고 지 맘대로 폭주하는 다른 작가와 동급 취급하면 너무 슬퍼서 잠수 타는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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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랜만의' 는 '오랫만의' 를 잘못 쓴 것이란 건 넘어가고서라도 이 한 화에 드러나는 작가의 오만함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다. 반말은 기본이고 비꼬는 말투, 깔아 뭉개는 어조는 옵션이다. Q&A 라고 써 놓은 저 글들을 누구를 목표로 하고 쓰여졌는지는 몰라도 작가란 입장에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을 쓸 때 저 말투는 적합하지 않다 뿐만이 아니라 결코 써서는 안되는 말투인 것이다.
또한, 만약 작가가 글을 써서 대중에 공개 했을 때, 그 작품이 이해받지 못하거나 그 작품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때, 작가가 대중을 비난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아니, 올바르다 아니다 따지기 이전에 작가가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이해 못한다고 비난하는게 상식적인가? 타인을 알쯔하이머 병자로 부르기 전에 제대로 상식이 박힌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품에 뭔가 문제가 있는지, 자신의 작품이 충분히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먼저 고찰해야 하지 않는가? 어떤 오만하고 비 상식적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비난하기 전에 독자를 비난한단 말인가?
이 비 상식적이고 비 이성적인 행위는 Q4 A4 에서 절정을 이룬다.
페이크 사역마의 29화와 31화는 정말 우습고 어이없는, 그러나 창작 사이트에서 인기있고 만연해있는 '어둡고 상처 많은 과거'에 대한 외전글이다. 이 외전글 이전의 화를 살펴보면 한없이 가볍다. 이는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의 무드에서 그렇다. 애초에 글이 진지하다 재밌다 기타 등등은 글의 무드이다. 글이 사람을 죽이든 살리든 무드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예로 '몬티파이손과 성배(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라는 영화가 있다. 80년대의 영화인데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이면서 사람 팔이 잘리고 시체가 창에 꿰여 나무에 매달려 있는 등 여러 잔혹한 장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웃기 바쁘다. 그것은 관객들이 전부 사이코패스라 그런것인가? 아니, 그것은 단순히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위트 넘치고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 갑작스럽고 인과관계가 전무한 외전을 들고 나오며 무드를 한순간에 바꿔버린 것을 Q4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음에도 작가는 '너는 사람 죽이는건 개그냐?' 라고 반문한다. 필자는 이것을 읽었을때 정말 웃기 바쁘기 그지 없었고 이것을 읽을 타인들도 다를 바 없다고 믿는다.
페이크 사역마의 작가는 오만함의 극치와 함께 모순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 화에서 언급한 '완벽을 추구합니다' 라는 저 한마디 또한 모순되기 그지 없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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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소환이란다, 소환 -->
하지만 약속드리는건 연중은 없다! 라는 것 정도?
30편 <-- 오랜만에 설명 -->
[중략]
[중략]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임? 나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31편 <-- 외전, 과거 -->
[중략]
[중략]
나.는. 분.명.히. 말하건데, 아.무.렇.게.나 설정을 지어내는 병신 작가가 아니라구요.
그런 코멘트로 적는 것은 제게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37편 <-- Lozix -->
[중략]
[중략]
사실 전 제로의 사역마, 4권까지 밖에 안읽었습니다
40편 <-- 설문 -->
그런고로, 더욱 큰 재미를 위해 독자님들꼐 선택의 기회를 드릴까 합니다.
[중략]
선택지의 제시문은 시에스타와 함께 간 창고속에 '무엇'이 들어있냐는 것입니다.
1. F-22 랩터
2. 마크로스의 발키리. (기체 제시)
3. 원작대로 제로센
4. 건담(?!)
5. 인간형 병기 (미소녀)
6. 탈착형 갑주
7. 연중
51편 <-- 알게 뭐임 -->
[중략]
나 설정 부순적 없거든요?
단순히 막장일 뿐이지?
아니, 솔직히 이 글은 막장도 아님.
여기서 뭐 밸런스 파괴하는게 억지력으로 나왔음?
병기에서 그럴라다가 정말 막장 될까봐 애 숨긴거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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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조금만 빠르다면 1편과 40 편, 30 편과 31 편과 37 편과 40편이 서로와 모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 챘을 것이다.
1편과 40편의 모순점은 1편에서 작가 스스로가 '연중은 없다!' 라고 했음에도 40편에서 정말 당당하게도 선택사항중에 '연중'을 넣었다는 것이다.
30편, 31편, 37편, 그리고 40편의 모순점은 30편에서 '나는 완벽을 추구한다' 라며 타인을 찍어내리던 작가가 37편에서 배경이 되는 원작을 완벽하게 알지도 못하고 쓴다고 너무나도 당당히 밝히고 있으며 40편에서 작가 스스로가 설정을 내 팽겨치고 독자에게 선택의 의무를 지우는 행위를 하고 있다. 완벽을 추구하는 작가가 독자에게 스토리가 나아갈 방향을 선택하게 한다라. 그것 어디에서 완벽을 찾아야 하는가? 아무렇게나 설정을 지어내지 않는다면서 타인을 병신이라 매도하던 작가가 스스로 병신이 되다니. 극적 반전이 이럴까 극적 풍자가 이런걸까.
51편의 저 말은 필자 스스로가 단 덧글과 관련이 있다. 필자가 페이크 사역마의 작가를 주시하기 시작한건 작가가 스스로의 학력을 과시하면서 부터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작가의 자기자랑과 오만한 태도를 점점 망해가는 글을 보며 지적했는데 그것에 대한 반응이 저것이었다. 참으로 극적인게 '단순한 막장일 뿐이지? 아니, 솔직히 이 글은 막장도 아님.' 의 부분인데, 이 부분이 모순 중의 가장 극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이유가 심지어는 페이크 사역마의 '빠' 들도 알고있는 막장을 작가가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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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경화 [2009.11.21 09:54]
acolyte 뭔 개솔인지... 이런식의 막장 타시는 글은 수없이 많습니다. 괜히 뻐대는척하지 마세요 아무리 좆같은거 아는척 해봤자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이니깐 그런식으로 말하다가는 이렇게 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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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들 이외에도 글의 막장성을 지적하는 덧글들은 상당히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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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cuation [2009.11.21 08:32]
ㅋㅋ 잠수 안되지요...ㅋㅋㅋㅋ 최상급의 막장입니다 ㅋㅋ ㄱㄱ싱
メ제로스メ [2009.11.20 22:48]
벼........ 병신이 돼었어 7만ㅇㅣㅋ ㅋㅋㅋㅋㅋㅋㅋ
GENESIS. [2009.11.21 05:46]
헐 막장하다!! 'ㅅ'
살려도 [2009.11.20 16:01]
작가님이 드디어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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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더 이상의 설명이 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은 것은 이 작가의 희극적인 모순에 한바탕 웃어주는 것 뿐.
=제 2. 글=
1화. <--소환이란다, 소환.-->
죄송하지만 이 글은 중간고사 압박에 미쳐버린 작가가 마구 휘갈기는 글이므로 본래 연재하던 작품들을 당연 우선시 할 것이며, 연재 기간또한 매우 불규칙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드리는건 연중은 없다! 라는 것 정도?
이번엔 정상 필체 모드로 가볼까요?
오랫만이군요, 정상 필체. 항상 핏빛이 어우러진 글을 쓰다보니 이런건 익숙치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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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엔 룰이란 것이 있다. 문법과 맞춤법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룰은 목적 의식의 유무라 하겠다. 목적 의식 없이는 글은 아무리 써도 3류를 벗어나기 힘들다. 글에 있어 목적 의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제로도 설명 될 수 있겠고 플롯으로도 나타낼 수 있겠다.
페이크 사역마엔 목적 의식이 있었을까?
첫회에 당당히 붙어있는 저 작가의 말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페이크 사역마는 3류인가?
대답은 애석하게도 아니오다.글의 질을 평가하는데에 있어 목적 의식만이 그 기준이 될 수는 없기에. 페이크 사역마는 그런 점에 있어 운이 좋다. 글쓴이는 문법과 맞춤법에서 합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시사하는 것은 소위 말해 '본다고 손발이 오글오글해 지지는 않는' 정도 뿐이다. 아무리 잘 평가해봤자 2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글이란 것은 언제나 질문을 해야 한다. 왜 등장인물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는가? 왜 작가는 배경/장소를 정했는가? 왜 작가는 어느어느 것을 묘사하는데 책장을 할애하는가? 좋은 글이란 것에는 '왜' 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왜'라는 것은 독자가 질문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질문 하는 것이다. 독자는 읽을 뿐, 그것을 드러내고 이끌어내는 것은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독자가 저 질문들을 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글의 질과 급의 구분이 왜 있겠는가?
페이크 사역마를 백날 읽어 봤자 저 질문들이 도출되진 않는다. 재미를 목적으로 한 글에서 저런 질문들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는 것은 페이크 사역마 라는 것의 수준이란 것은 결국 그정도 밖엔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왜'가 결여되고 목적 의식이 결핍된 글은 이 조아라 라는 사이트에서 한 둘이 아니다. 수많은 2류작들 중 하나인 페이크 사역마. 이 글의 수준은 결국 그저 그렇고 그럴 뿐일 수 밖엔 없다.
이번엔 필체 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 '정상' 필체란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정상 필체라는 것도 있었나? 그렇다면 비정상 필체란 것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필체와 필법을 구분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 글쓴이의 작가적 소양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페이크 사역마 글쓴이의 필체에 관한 말투나 말 그 자체에 있어서는 정말 '손발이 오글오글' 해진다. 핏빛 필체에 익숙해 졌다라... 쓰는 글에 기운이 서렸다는 한석봉 위인이라도 된것이라 생각하는걸까. 필자는 이것 만큼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글의 레벨에 있어서 페이크 사역마는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수많은 다른 조아라의 글들과 단 1그램의 차이조차 보이지 못하는 페이크 사역마는 글 자체에 있어서 실패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엔 플롯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플롯은 쉽게 설명하자면 '스토리' 이자 '줄거리' 이다. 플롯은 주제 다음으로 작가가 가장 신경써야 하는 글의 기본 요소이며 기승전결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는, 말하자면 글의 척추와도 같은 글의 장치이다. 플롯이 부실하면 아무리 주제가 거창해 보았자 글은 부실할 수 밖엔 없다.
페이크 사역마의 플롯은 한마디로 용두사미의 극치이다.
패러디란 글이 '용의 머리'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는 둘째 치더라도 페이크 사역마는 그 시작에 비해 끝을 향해가는 지금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정도로 망가져 있다. 이것은 말로 설명하기 보단 한번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만 평론을 하는 이상 평가에 대한 설명을 타인에게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5~11화 와 42~50 화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수도 가릴수도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겠다. 5~11화 까지 글쓴이의 글은 제목에 맞는 글이었다. 주제라고 할 것도 아니지만 '페이크' 라는 단어를 어쨌든 제목에 집어놓을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에 맞게 글이 쓰여졌달까. 만약 글쓴이가 생각한 '페이크' 가 능력과 신분을 속이는 행위였다면 말이다. 42~50화에선 이 페이크가 흔적도 없다. 작가가 말하는 '미소녀 결전병기'를 얻으면서, 아니 애초에 소위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내면서 페이크 사역마는 그저 다른 수많은 주인공들과 똑같이 무쌍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목은 플롯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밖엔 없다. 제목이 더이상 플롯과 일치 하지 않은 순간 제목이 아니면 플롯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엔 작가가 스스로의 플롯에 먹혀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다크하고 간지한 주인공이 목적이긴 한데 그렇게 하자니 처음 10편에 그려왔던 주인공의 이미지, 그러니까 평범함을 감추기 위한 허세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버릴 수 밖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플롯은 심각한 차이를 보이며 어긋나 버렸고 글쓴이 스스로가 되지도 않는 수준의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플롯은 속된말로 '좆망' 해버린 것이다.
=결론=
지워진 평론에서도 말했지만 필자의 의도는 사람들을 페이크 사역마 로 부터 떨어뜨리려는데 있지 않다. 필자에겐 그럴 능력이 없으며 그러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어떤 작품이든 그에 따른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필자의 호불호는 불호에 기울었고 수많은 단점들과 더불어 조아라가 가진 폐단이 페이크 사역마란 글에서 더 없이 들어난것을 집어낼 뿐이다. 타인이 글을 즐긴다면 그것이 나와 다르다고 깎아내리는건 잘못된 평론의 자세이기 이전에 잘못된 상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평론을 쓰면서 희망하는 것은 사람들이 페이크 사역마나 그와 비슷한 작품들을 읽는데, 그리고 특히 사람들이 평론이나 코멘트에 반응할 때 두번 이상 생각했으면 할 뿐이다.
페이크 사역마는 조아라를 대표한다. 조아라의 다른 많은 글들이 페이크 사역마와 비슷한 설정과 비슷한 플롯 그리고 비슷한 등장인물을 가지고 있다. 독자층 또한 비슷하기 그지없다. 거의 대부분이 극도의 흑백주의로 다른 독자의 코멘트를 검열하고 비방하며 찍어 누른다. 그런 상황에 평론이라고 다를까. 작가의 '내 글이 최고다' 라는 생각 또한 많은 아마추어 글쓴이 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내 글 싫으면 꺼져' 또한 조아라에선 상식처럼 여겨진다. 이것들은 잘못되어 있음에도 블구하고 사람들은 '간지다' 혹은 '시크다' 하면서 좋아한다. 페이크 사역마는 글이나 작가나 시크하거나 간지나는것이 아니다. 페이크 사역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비슷한 글이나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패러디 뿐만이 아니라 판타지도 그렇고 무협도 그렇다.
작가는 겸손해야 한다. 특히나 장르 문학 사이트 라는 아마추어들의 모임에 있어서 겸손이란 더욱 더 중히 여겨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한국에서 장르 문학이란 카테고리가 가지는 한계는 현재에 어린이 동화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장르 문학이란 카테고리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목적에서 벗어나기 이전까진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도토리 키재기라고 이 낮디 낮은 수준의 세계에서 오만함은 그저 웃음거리 이외는 안된다.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장르 문학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조아라. 그런 조아라에서 선작수 천을 넘어가는 작품의 대부분이 페이크 사역마 같다는 것은 통탄하기 그지 없는 문제이며, 그 해결의 시작점은 오로지 인기있는 작품의 작가가 그 인기 만큼 겸손해 지는 순간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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