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작품명 : 낚시마스터
출판사 : 마루
낚시마스터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다른걸 다 떠나서 1권에 나오는 세르파스라는 유니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주민의 말을 빌려 그 유니콘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벌써 여섯 번째야. 자네들이 안 도와줬다면 저 여자가 일곱 번째 희생자가 됐을 걸세.”
“멀쩡한 여자를 납치해서 뭐하겠나? 마주 앉아서 쎄쎄쎄 할 것도 아니고.”
단지 이 세르파스라는 유니콘이 그런 존재일 뿐이라면 나는 그저 취향이 아님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피해여성들이 속한 마을의 주민들이 하는 말은 너무나 뻔뻔하기 그지없다.
“자네들이 잡은 거니까 우리가 어찌 참견할 수 있겠나?
자네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저 녀석이 언제 덮쳐 올까 걱정하고 있었겠지.
저 유니콘이 도움이 된다면 우리도 기꺼운 마음으로 자네들에게 유니콘을 맡기겠네. 마음대로 하게.“
피해를 준 유니콘을 그냥 넘겨준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엔 테드가 소환했던 도마뱀에 대한 공포가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했다.
이 다음 장면에서 붙잡힌 유니콘은 오히려 마을주민들을 놀리다가 에밀이라는 주인공의 동료여자에게 ‘호되게’ 혼이 나 반나절동안 산채로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이 다음 부분에서 또다시 마을 주민중 하나의 대사가 이렇다.
“자네들은 저 녀석을 타고 가야 되지 않는가? 우리들이야 저렇게 벌 받는 걸 보면 속이야 시원하지만 저렇게 함부로 굴렸다가는 며칠은 앓아야 할 텐데.”
미칠 노릇이다. 내가 여자였다면 저 말을 한 여관주인의 얼굴을 후려쳤을지도 모른다.
아니 남자라도 후려칠 것이다.
그러나 더욱 가관인 것은 주인공의 말이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데? 고작 하루 얼차려 시킨 걸로 용서해주기엔 죄질이 좀 무겁지 않
아?”
당연히 부족하다. 이 글에서의 세계관이 말한테 당하고도 여자가 히히덕거리며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동료인 여자도 이 말에게 지극히 혐오감을 느끼고 거세까지 하려고 한다(이것조차 마을 주민이 만류한다. 정말로 미칠 노릇이다.)
이 유니콘은 여섯이나 되는 여자의 인생을 망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한낱 타고갈 것을 위해서 이렇게 장난식으로 얼렁뚱땅 넘기다니.
더군다나 2권에서도 이 세르파스라는 유니콘은 속죄하는 것이 아닌 개그캐릭터가 되어버린다.
에밀이라는 주인공의 둉료여자의 대사다.
“마을 사람이 아닌 제3자인 제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걸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관주인은 달관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네. 이걸로 충분하네. 사실 우리같은 촌놈들이야 이리저리 치이면서 사는게 운명인걸. 그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빨리 잊는 방법을 익히는 거지..
저 녀석을 거세시킨다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아니잖나? 당한 게 분하긴 하지만 근심거리를 없앤 데다 이렇게 보는 앞에서 보복했으니 마을사람들도 오늘 밤만큼은 편히 잘 수 있을 걸세.
그러니 더 이상은 저열한 복수심을 충족시킬 필요는 없어.“
저열한 복수심? 무엇이 저열한 복수심이란 말인가?
왜 3자의 입장인 너희들이 피해여성들을 대변한단 말인가?
장르문학시장의 도덕성,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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