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풍종호
작품명 : 화정냉월
출판사 : 시공사
# 1
덩달이는 오늘도 낚시에 실패했습니다. 만화방에서 거금 800원이나 들여 빌려온 책이 별로 재미 없었기 때문이죠. 학교앞 문방구에서 달콤한 냄새 폴폴 풍기는 뽑기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백원짜리 꼭 쥐고 단숨에 달음박질 했더랬는데 에이~ 별로 재미 없는 걸 빌려왔지 뭐에요. 도통 미끼가 션찮어서 그런지 요즘은 낚시가 잘 안됩니다.
거기다가 요즘은 책이 다 기~~일어요. 한권, 한권씩 나와서 읽고나면 쭈쭈봉을 잠깐 맛만보고 다시 내려놓는 기분, 맛있는 떡꼬치 고추장만 빨고 내려놓는 그런 기분입니다.
옛날에는 3권이나 4권 혹은 6권 완결로 단번에 나왔는데 그래서 쭈쭈봉을 빨아먹던 깨물어 먹던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에휴~
# 2
덩달이는 조울증이 있나봐요. 아까는 기분이 별로였는데 지금은 갑자기 기분이 좋거든요. 음~ 왜냐면요 얼마전에 산 책을 다시 읽었거든요. 음~ 무슨 책이냐면요, 풍종호 아자씨가 쓰신 '화정냉월'이라는 책이에요.
책을 읽을때마다 그렇지만 이책은 조금 특별해요. 읽고나면 늘 책을 덮고 기분좋게 눈감고 막 상상할 수 있고, 읽을때는 미친듯이 웃다가 가끔은 '아하!' 이렇게 소리 칠 수도 있어요. 씨이~ 생각하니 이마가 아파요. 쥐를잡자~ 쥐를잡자~ 하는 놀이 아시죠? 거기서 '놓쳤다!'하면서 이마를 탁! 치잖아요. 오늘 읽다가 '아하!'하면서 그 놀이처럼 이마를 탁 쳤는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주먹을 꼭 쥐고 치고 만거에요. 불이 번쩍하더니 옆에서 별이 마구마구 떠다녔어요.
# 3
책은 인언(引言)부터 재미있어요. 꽃그림자로 임천생을 한가로운 달로 봉무진을 대비해서 함축적인 한 문장으로 줄거리를 표현해 놨거든요.
풍범릉이라는 사람이 봉무진을 찾아와서 살인청부를해요.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은 그밖에 없었던거죠. 근데 죽여달라는 사람이 바로 남자임에도 남자라고 믿어지지 않는 미모, 저기 가서 무조건 잘생긴 놈 찍으면 바로 걸리는 얼굴의 소유자 임천생 이에요. 임천생이 바로 화영(花影) 그러니까 꽃그림자죠. 그래서 봉무진이 청부의 연유를 듣는 것으로 풍종호 아자씨는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리고 1권의 끝 '花影의 終'은 이런 말을 시작으로 끝을 맺음과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임을 알리죠.
'출렁이는 물결 사이를 바라보며 풍범릉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다.'
근데요, 1권의 인언(引言)이 어떤지 아세요?
'꽃의 그림자 속에 흐르는 情이 차가운 빛을 만나노니 한가로운 달이 이를 지켜본다.'
멋지지 않아요? 책의 두 주인공중 하나인 임천생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고 그 이야기를 듣고있는 봉무진을 새삼 상기시키는 방식이나 맨 앞부분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능청스럽게 툭 던져놓는거나.
# 4
사건을 만들어놓고 이를 역추적하는 그 맛도 꽤나 쏠쏠해요. 거기다가 틈틈이 쏟아지는 상황의 아이러니와 희극적 대사는 재미있게 읽다가, 심각하게 읽다가, 폭소를 자아내게 하거든요.
음... 그러니까 한가지 예를 들면요, 봉무진이 '심형도'라는 일종의 '섭혼도' 유형의 도법을 사용하는데요, 그것을 본 사람이 궁금해서 묻자 사부가 '짐승을 길들이는데 쓰려고' 만들었다고 하거든요. 그러면서 사부의 말을 떠올리지요.
'애새끼 하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잖아. 그런데 이놈의 애새끼가 밤새 울어대니 도대체 잘 수도 없고 재울 수도 없잖아! 거의 짐승들도 혈안(血眼)이 되어 으르렁대며 어떻게 좀 해보라고 찾아오는 판이니, 어떻게 하겠냐? 일석이조, 짐승도 길들이고 애새끼도 재우는 도법 하나 궁리했지.'
이런 대화나 장치가 이것뿐만 아니라 곳곳에 숨어있어요.
풍종호 아자씨는 참 의뭉스럽기도 해서, 아무런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이렇게 툭툭 던져주지요.
# 5
화영, 다정, 냉광, 한월로 이어지는 풍종호 아자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상하게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여름밤, 옛날 옛날에...로 두런두런 시작해서 잠을 재워주던 가족의 따뜻함과 귓가에 아릿하게 들려왔다 멀어지는 줄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조곤조곤함이 참 재미있던 그 어릴적 생각이 떠올라요.
덩달이로 불리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강산도 변할만큼의 시간이 훌쩍 흘러버려 덩달씨 혹은 아자씨로 불리는게 어색하지 않은 지금... 쏟아지는 책의 홍수 속에서도 가끔은 조곤조곤 속삭이는 옛날이야기같은 책들이 있어 덩달이는 요즘도 만화방과 책방을 기웃거려요. 인터넷 연재가 활성화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아날로그적 삶이 즐거운 덩달이에게 만화방은 일종의 거름종이와 같거든요. 재미있는 책 낚으면 책방서 한참을 살지말지 기웃거리니까요.
끝으로 덩달이 씨리즈나 하나 할까요?
덩달네 샘이 숙제를 내줬어요. '덩달아'로 짧은 글짓기를 해오라는 거였지요. 언제나 착한 어린이 덩달이는 숙제를 해갔어요.
'오늘 내 친구 철수가 집에와서 나를 불렀다. 덩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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