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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흑풍

작성자
Lv.1 인위
작성
08.06.22 20:29
조회
3,185

작가명: 박선우

작품명: 흑풍

출판사: 북두

출간일: 08년 6월 12일 // 현재 1,2권 발행

-미리니름(스포일러) 없습니다.

  

<초반 도입부 줄거리>

주인공 화천상은 어머니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결함 때문에 혈맥이 서서히 막혀가며 죽어가는 병에 걸립니다. 자신의 손자를 위하여, 문파 연합체 무극문의 문주이자 당대의 천하제일인인 천무제 화월인이 그를 고치기 위해 혈맥의 내단을 구해오지만 그 와중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고 혈맥의 독에 중독 당하게 됩니다. 또한 주인공 화천상마저 치료의 와중에 강렬한 약성을 이기지 못하고 백치가 되어버립니다.

중독에 의해 곧 죽음을 앞두게 된 천무제는 손자 화천상이 무극문 문주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눈물겨운 안배를 하게 되고 결국 화천상은 문파를 떠나 그의 또래 셋과 함께 한 산중으로 숨어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

그림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번개나 땅을 울리는 지진, 뜨거운 재를 내뿜는 화산에도 감정이 없습니다. 너무나 거대해 저를 왜소하게 만드는 망망대해나 커다란 산맥들 사이에도 감정은 없습니다.

감정은 사람의 밖이 아니라 사람의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광경들은 그 자체로 감정을 품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감정을 캐내는 훌륭한 도구일 뿐입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쓰는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상황 자체엔 감정이 없습니다. 등장인물이 어떠한 감정을 가지든 그건 서술일 뿐이며 그 자체로 생명을 갖진 않습니다.

대신 도구성을 가집니다. 일련의 규칙으로 얽힌 목적성에 따라서 글자, 단어, 문장, 사건, 상황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때론 소설가의 의도에 따라 조합되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 도구는 하나의 전하가 되어 대뇌에 파고들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과 감정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가진 지식과 경험은 독자마다 다르기에 그 도구는 작가의 의도와 달리 움직이기 십상입니다. 때론 특정 독자의 역린을 건들어서 책을 집어던지게 만들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곳만 긁다가 독자가 취향차이를 절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수의 사람에게서 공통성을 발휘하는 부분을 찾아 독자의 감정을 유효적절이 끌어내는데 능숙한 작가들을 사랑하며 차기작에도 큰 신뢰를 가지곤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작가를 가리켜 ‘센스가 있다, 감각이 있는 작가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러한 이들 중 하나가 작가 박선우입니다.

그리고 그는 특별합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독자의 감정을 캐내는 도구를 잘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가 잘 캐내는 것은 바로 정(情)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만들어 지는 진한 애정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조진행 작가의 천사지인, 칠정검 칠살도에서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커다란 인간애이기도 하고, 백연 작가의 이원연공에서와 같이 사제 간의 끈끈함이기도 하고, 장영훈 작가의 보표무적이나 마도쟁패처럼 절절함이 밴 동료애가 되기도 하며, 촌부 작가의 자승자박에서에서처럼 원수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에 뛰어난 힘을 발휘하지만 장르소설이 가진 특유의 장점인 재미와 배합되면 단순히 즐거움과 감동이란 두 차원을 넘어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마치 치즈와 와인의 만남과 같이, 단순히 현재를 느끼기 위한 휘발성 즐거움뿐 아니라 비어있는 심장의 공허를 채워주는 심리적 만족감을 더해주기에 풍성한 행복을 만듭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이치와 같이 1+1이 3이상의 효과를 내는 만족스러운 소설이 되곤 합니다.

박선우 작가는 그러한 글을 씁니다.

전작 흑룡에선 강한 주인공과 사형제들의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과 그들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독자의 기대감을 한껏 자극하여 지속적인 재미를 뽑아내었습니다. 그것만이라면 모자람을 느꼈겠으나 동시에 소설 전체적으로 대화와 에피소드 속에 사형제들 사이의 강한 우정과 신뢰를 훌륭하게 녹아냄으로서 재미와 정서적 만족감을 아우른 행복을 독자에게 선물하였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소설이건 간에 등장인물 사이엔 관계가 설정되고 이 와중에 감정이 오고감은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작가에 따라 그 감정의 종류가 다르고 깊이가 다르며 감정을 느끼는 횟수가 달라집니다.

작가가 A와 B가 사랑을 느꼈는데 누군가의 반대로 헤어졌다고 기술한다고 해서, 독자가 반드시 애절함을 느끼진 않습니다.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내는가,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똑같은 뼈대 아래에서도 잘 헤어졌다고 여길 수 있고 무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고 혹은 정말 아쉬워하고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작가는 몇 마디 대화로 갑작스럽게 커다란 슬픔을 만들 수 있지만, 또 다른 작가는 독자의 감성을 움직일 기회를 눈 뜬 장님처럼 놓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박선우 작가가 부각되는 것입니다. 그는 독자의 감성을 움직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화로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이루는 기본 패턴인 갈등과 해소를 바탕으로 독자의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사건을 이루는 기초 요소(element)를 이용하여 연출하는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상황 표현은 감각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등장인물간의 인간적 관계에서 만들어내는 그러한 감정 하나하나는 생기가 넘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역동적입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대단히 매력적인 주인공을 들고 나왔습니다.

화천상은 기억을 잃고 사고의 수준이 낮아진 대신 세상을 깨끗이 바라보는 순수성을 가집니다. 그의 순수함은 항상 밝게 웃는 습관에서 더욱 환한 빛을 발합니다. 거기에 잘생긴(-아주) 외모와 맞물려 소설 내에서나 독자에게나 대단한 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력이 발휘되어 영향을 미치는 상황 상황의 전개에 독자는 무언가 자랑스러움(?)에서 비롯된 짜릿한 감정을 만끽하게 됩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겪게 되는 슬픔을 감초처럼 곁들여 독자와 주인공 사이의 감정적 거리를 좁혔으며 이로 인해 심화된 소설에 대한 몰입은 결국 주인공의 심정에 가슴깊이 공감하고 때론 눈가를 촉촉이 적시게 만들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매력을 더더욱 부각시켜 주는 것은 그의 잠재력과 그 성장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주인공이 현재 백치라고 영원히 백치인 것은 아닙니다. 이건 어떤 면에서 주인공에게 작가가 부여하는 ‘금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흔한 예로는 다크메이지, 데이몬의 김정률 작가나 묵향의 전동조 작가의 작품에서와 같이 주인공에게 강력한 설정상의 금제를 가해 능력을 하락시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독자는 그러한 금제가 풀렸을 때의 주인공의 강함을 항시 인지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인공의 고난을 바라보며 손에 땀을 쥐면서도 언젠가 금제가 풀려 적들의 뒤통수를 통렬하게 때릴 날을 기다리는 재미를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흑풍에서도 비록 현재 주인공은 상당히 덜떨어진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어릴 때 보였던 큰 잠재적 능력을 기억하는 독자로서는 그가 자신의 제약을 넘어 한계를 극복하였을 때, 얼마나 성장하여 주위를 놀라게 할지 모른다는 강력한 기대감으로 숨죽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 내의 사건마다 적절한 위기을 배치하여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또한 장점이며, 주인공과 등장인물 사이의 애정문제의 강약을 능숙하게 조정하며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또다른 속성의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만약 책을 읽는 이에게 마음의 밭이 있다면 작가 박선우는 그 밭을 가는 훌륭한 농사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련된 문장으로 살며시 흙을 뒤집어 공기를 먹이곤, 소소한 사건들로 감정의 씨앗을 뿌린 그는 서서히 이야기를 진행하며 밭에 물을 뿌려 영양을 줍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하였을 즈음 등장인물들을 매력적으로 움직여 밭에 풍성히 열린 감정의 과실을 따내지요.

그 과실을 먹는 것은 항상 독자인 우리라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무협소설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Comment ' 3

  • 작성자
    Lv.1 인위
    작성일
    08.06.22 21:39
    No. 1

    금강님께서 논단란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지만 근 6개월동안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감상을 쓰지 못했습니다.
    사실 논단란에 글을 올리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이 있고 그 목적성에 맞는가 하는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눈 딱 감고 뻔뻔해 지기로 했습니다.

    근래 나오는 출간작들 중 좋은 작품(정확히는 제가 즐겁게 읽은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것을 쓸 것입니다. 많이...
    저는 항상 비평이 아닌 감상만을 쓰며 그것은 저의 '취향'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해당 소설에 대한 견해가 갈릴 수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물망아
    작성일
    08.06.25 14:40
    No. 2

    저는 사실 인위 님의 감상이 감상란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감상란은 거의 매일 들르기에 글이 올라오는 즉시 읽을 수 있지만,
    논단은 항상 글이 올라오는 곳이 아니라 간간히 찾기에 그렇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좋은 감상을 매번 논단란으로 옮겨야 하는 운영진의 수고를 생각한다면 감상을 며칠 더 읽찍 읽고 그렇지 못하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터이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그림자.
    작성일
    09.08.03 12:35
    No. 3

    무한공감!!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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