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재한
작품명 : 폭염의 용제
출판사 : 청어람
각종 마공서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듯한 유치한 현대물의 난무속에서 그나마 제게 한줄기 빛과 소금이 되는 책이 몇몇 있는데 판타지에서는 단연 이 작품과 샤피로입니다. 오래간만에 딱 취향에 맞는 길이었기에 소장할 생각으로 지금까지 16권 전질을 질러왔는데 안타깝게도 슬슬 후회가 되는 중이네요. 물론 작품의 질은 여타 마공서와 비교할 수준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해서 모두 다 만족스러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기 때문이죠. 이 불만족이 작품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그 무언가에 대한거였다면 애초에 사고나서 후회하지는 않았겠습니다만 문제는 사면 살수록 후반부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단점때문에 저를 슬프게 하네요.
1. 애초에 왜샀냐?
이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현재 판타지, 무협 대부분의 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대여점입니다. 물론 사서 읽으시는 독자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사실상 대여점에서의 수요와 비교하기에는 초라하죠. 대여점의 주고객층은 누가 뭐래도 중,고등학생이고 이러한 현실속에서는, 판무시장의 경향은 절대적으로 10대(좀 많이 잡아서 20대 초중반) 취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럭저럭 적자라도 내지 않기위해서는 몇가지 사항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합니다. 익숙하고 친숙한(판에 박힌) 세계관, 먼치킨에 가까운(그러나 동시에 황당하고 어이없는 과정을 거쳐서 얻은) 능력, 주인공에게 반해(도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명 중에 한명이라도 좋다며 따르는 여인들 등등.
사실 폭염의 용제는 처음 볼 때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흔히 보이는 신분제 판타지 월드에 마법이 있고 무공(강체술)이 있고 심지어 드래곤, 엘프, 오크까지 마치 한국식 양산형 판타지의 본을 뜬듯한 세계관입니다. 게다가 전개는 어떻구요? 요즘 흔해빠진 회귀물에다가, 엘프를 구해서 정령을 얻고, 맙소사 드래곤의 도움까지.
이쯤 되면 책을 사기는 커녕 땔감으로 써야할 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폭염의 용제는 흔히 나오는 마공서랑 비교하기에는 좀 많이 섭섭합니다.
폭염의 용제에서는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새롭습니다.
마법은 단순무식하게 마나의 고리를 엮어서 많아지면 대마법사! 이딴 수준 낮은 기술을 학문이라고 말한다면 세상 모든 수학자들은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야 겠죠. 폭염의 용제의 세계관에서는 마법이 있다면 어떤 방식을 가지고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 세세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마치 정말 마법이 있다면 이 마법이 어떻게 운용되고 어째서 주인공의 마법실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는지 지면을 통해 설득력 있게 재시됩니다. 강체술은 소위 오러 블레이드(엄청나게 날카로운 쫌 큰 칼)만 들면 소드 마스터라 부르며 오오! 거리는 거랑 수준이 다른, 깊이 있는 기술입니다.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 무슨 경지를 목표로 하는지 그 배경까지 명확하게 제시되는 무예죠.
드래곤, 엘프, 오크, 용족까지 흔히 있는 양판소에서 벗어나 인간과 다른 종족이라는 것이 그럴듯하게 제시됩니다.
필력에 있어서도 작가이신 로오나님은 이제껏 많은 책을 출판해오신 만큼 전투신에서 '콰광'이라던가 '슥삭'하며 그냥 적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유치한 묘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힘의 소유자들간의 초인적인 전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공들여서 묘사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폭염의 용제는 10대 취향에 직격으로 먹힐만한 취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관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정이 치밀하여 그 윗세대 독자들에게도 전혀 색다름을 줍니다.
게다가 가볍습니다. 소위 필력이 있으신 작가님들이 작품 판매량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경우는 대부분 작품 내 분위기가 너무 무겁기 때문인데 대리만족의 성격을 띄고 있는 판무시장에서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는 솔직히 드물죠.
하지만 대부분의 양판소는 너무 가볍기 때문에 마공서가 됩니다. 가벼운게 아니라 유치해지는거죠. 그런 점에서 볼때 폭염의 용제는 가볍기는 하되 유치하지 않고 경쾌합니다. 주인공의 운명은 절망적인 전투의 연속이지만 글 전반적으로 유머가 깔려있어서 결코 무겁게 진행되는 일은 없습니다. 히로인들도 타 소설의 머리가 비고(하지만 똑똑하고 뛰어난 재원으로 묘사되는 함) 얼굴만 예쁜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결론적으로 익숙하고 재미있고 가볍되 결코 유치하지 않은, 요즘 보기 드문 제대로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그럼 왜 후회하냐?
문제는 작품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드러납니다. 전중반부는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소장한게 후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10권이 넘어가면서의 과도함입니다.
폭염의 용제의 타양판소와의 차별점이 이제 단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설정과 묘사입니다. 중반부까지 마법도구는 신기하고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갈수록 주인공의 파티는 마법도구를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찍어내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이 도구의 사용법이나 위력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솔직히 요르드의 사이클론따위 관심도 없었단 말이죠..ㅡ.ㅡ
전투씬도 너무 길어졌습니다. 아니 발카르 나탈과 그레이슨 다카르의 전투가 책의 3분지 1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할만큼의 필연적인 이유가 있나요? 심지어 14권에서는 전투 한번이 책의 180p가량을 차지합니다.(개인적으로 이부분만 보자면 굉장히 재미있게 본 전투지만 책 전체적인 부분으로 봤을때는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반부로 가면갈수록 설정이 많아집니다. 지아볼의 배경과 강체술의 기원은 틀림없이 사족입니다. 훨씬 더 짧고 간략하게 묘사한다해도 딱히 문제가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죠. 그외에도 많은 부분을 지나치게 묘사하거나 쓸데없이 상세한 부분이 많습니다. 마치 작가가 생각하고 만들어 두었던 설정으로 책의 반절 이상을 채우는 기분이에요.
물론 이런 늘어짐으로 작품 전체의 발목을 잡는다해도 여타 마공서와는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처음 읽었을때 '또 여타 다른 소설과 다름없는 양판소 배경의 회귀물 판타지네'라며 기대하지 않고 읽었을 때 좋은 의미로 배신당해 구입했지만 후반부로 점점 나쁜 의미로 배신당하는 기분입니다. 초중반부가 너무 좋았던 만큼 되려 소장을 망설이게 될 만큼요.
3.결론
왜 이렇게 후반부로 갈수록 삐긋거리나 생각해 봤는데 결국 이유는 둘중 하나더군요.
첫째 작가의 경험이 부족하다.
로오나님은 11권을 넘어가는 장편을 처음 써 보신거고 어떻게 크게 잡고 쓰긴 썻는데 쓰다보니 분량조절에 실패했다.
근데 사실 저는 이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작가 스타일이 크게 두가지로 봐서 향후 전개보다는 인물과 사건을 위주로 그때그때 써가는 스타일이 있고 큰 뼈대 및 세세한 설정을 잡고 그에 따라 글을 써가는 스타일이 있다고 하면 전 이분은 틀림없이 후자라고 봤거든요. 이렇게 글을 쓰기는 분은 분량측면에서 삐긋거릴 가능성은 낮죠.
둘째 높은 판매량때문에 작품을 좀 늘였다.
저는 사실 이 이유라고 보고 거기다 이해도 갑니다. 특히 전작인 마검전생은 홀딱 망한걸로 알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 망한게 아쉽기는 했지만 글 자체를 놓고 보면 현 판무시장에서 성공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폭염의 용제 1,2권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아, 이건 무조건 성공하겠네,라고 생각했거든요. 안그래도 책이 안팔려서 먹고 살기 힘든게 작가인데, 장래도 불투명한데 팔 수 있을 때 팔아야죠. 솔직히 좀 늘려서 나오더라도 응원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게다가 누가봐도 이건 말도 안되는 글인데 나보다 더 잘나가더라 하면 작가로서의 자존심도 많이 상하셨겠구요. 아마 흔하디흔한 마공서 중에서도 마검전생보다 잘팔린 글은 많았을걸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판무시장의 가혹한 현실이란..ㅜ.ㅜ
쫌 나쁜 소리도 한것 같지만 폭염의 용제는 그래도 나오는 판타지 중에서는 군계일학이고 후회하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살 것 같기는 합니다. 판매량을 늘려서 작가님이 마음에 들 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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