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체를 생략합니다.
삼류무사를 나는 왜 보는가?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조금씩 사건을 풀어나가는 주인공의 보보에 얽힌 재미 때문에,
새로이 등장하는 주인공의 생경한 무공의 기경함에 놀라려고,
그에 더불어 자신의 무술에 대한 묘사를 합리화시키려는 작가의
물리학적 사고로 치장된 해설부분이 좋아서.
결론은 아니다, 이다.
물론 위의 재미가 주는 맛도 간과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내가 삼류무사를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다.
무릇 소설가는 자신만의 문체를 가짐이 좋다.
새로이 시작하는 소설가에겐 간결한 문장이 글의 난잡함을 피하게 해 줄 것이고
역량이 충분한 작가들은 만연체의 긴 문장도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진기행'의 김승우의 문체가 좋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소녀취향적인 신경숙의 문체를 더 좋아하지만
그러나 문체가 그 작가의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신경숙은 그 인기 있는 문체가 또한
그녀의 한계로 인식되어지기도 하였었고, 지금은 약간 탈피한 듯도 하지만,
삼류무사의 문장이 조금 더 간결하였었다면 지금처럼 글 늘리기란 말은 안 들었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격투씬에 대한 묘사에 물리학적인 접근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으면 또한
글 늘리기란 말을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추삼의 언행으로 간간이 나오는 주류사회에 대한 비판이 즉 작가의 세계관이 조금 덜 묘사되었다면
글 늘리기란 말을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내가 삼류무사를 보는 이유는 그 신선한 문체와 표현 기교에 있다.
'그의 두 발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고 느껴질 무렵 부드럽게 대지를 밀어냈다'
위와 같은 표현을 무협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삼의 두발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기발한 표현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추삼이 무공을 전개하고 나면 작가는 자신에게 반문한다.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최대한 설명을 한다.
이런 특유의 문답.
본 필자는 무협을 많이 읽었으며 또한 수작으로 꼽고 있는 작품도 상당하나 어쩐지 그들의 작품에선
재미말고 더 이상의 문학적 특징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드디어 삼류무사란 글로 조금이나마 특색있는
문체와 표현기교를 가진 작가를 만나게 되었음이 즐겁다.
앞으로 김석진의 글은 작가를 확인 안 하더라고 구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작가의 이런 능력 때문에 삼류무사를 보고 있으며 또한 김석진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
p.s 삼류무사에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삼류무사의 자랑이던 개성있는 인물의 창조가 극 후반부로 가면서 빛을 잃고 있다. 어찌 나오는 노인네들은 모두 똑같은가?
보라. 만승검존 파랑검객 무한초자 빙심혈세? 박옹 그리고 무당오송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슷한 인물상이라 생각이 된다. 멋지게 등장하여 추삼에게 굽실대는 듯하게 행동하는 패턴이 흡사 길거리에서 250원에 파는 붕어빵이 아니고 무엇인가?
결론은 그래도 삼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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