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형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죠. 그래서 줄거리는 생략... 그래도 궁금한 분이 있으시다면 검색창에 "대사형"을 쳐보세요. 여러 개의 감상평이 올라올 겁니다.
그럼 사족은 빼고, 본격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대사형을 처음 볼 때의 충격이 생각납니다. 당시 저는 군복무 중이었고 잠시 휴가 나왔을 때였죠. 후배의 권유로 봤는데 너무 재밌는 겁니다. 당장 책을 사버렸죠. 그리고 복귀할 때 가지고 갔습니다. 남은 기간에 두고두고 보려고요. 세 번, 네 번 읽어 본 뒤 결론 내렸지요. 이건 한국무협의 새로운 희망이다.
좀 오버했나요? 하지만 당시의 심정은 정말 그랬습니다. 한국무협의 풍토에서 이런 소설이 가능하구나! 감탄했죠,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한국무협에 대한 그동안의 선입견과 편견도 많이 불식시킬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 소설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더군요. 그래요. 고룡이었습니다. 재기넘치는 구성과 추리적 방식, 그리고 뒤통수를 치는 극적인 반전까지... 대사형의 그것은 고룡의 그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대사형의 진산님과 고룡은 조금 차이가 납니다.
강호의 음모와 배신, 그속에서 부대끼며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이런 것들이 진산님의 대사형과 고룡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이지요.
그런데 고룡이 주로 인간의 추악하고 기괴한 면에 집착한다면 대사형은 좀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고룡의 소설을 읽고 나면 찝찝하고 떨떠름한 뒷만이 남는데, 대사형은 훈훈하고 유쾌한 여운이 남지요.
고룡은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너무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라고 할까요. 물론 최근의 한국무협에서는 그보다 더한 내용도 많지만서도... 그런 소설들이 재밌을 지는 몰라도 감동을 주기는 힘들지요. 좋은 작품들은 독자들의 감정선을 쥐었나 놓았다하면서 몰입하게 만듭니다. 진산님은 이 것이 가능한 몇 안되는 작가중에 한 명이죠. 대사형이 바로 그런 작품이고요.
고룡식의 추리적 재미와 극적인 묘미를 유지하면서, 우리네 삶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소설이라.... 바로 그런 작품의 가능성을 대사형에서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이라고 했던 거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보신 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대사형과 고룡을 비교했습니다. 진산님과 고룡이 아니고요. 그게 무슨 차이냐고요?
대사형을 읽은 후 저는 미친 듯이 진산님의 소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다른 소설들은 대사형과 분위기나 구성이 다르더군요. 앞서 언급한 재기발랄함, 추리적 요소, 극적 반전등이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정과 검, 색마열전, 사천당문 등이 내용이나 주제면에서 대사형과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과 다른 형식으로 쓴 것은 아닌지... 혹은 근본적으로 진산님이 추구하시는 무협이 대사형의 그것과는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사형은 진산님의 필모그라피에서 이례적인 작품이 되겠군요.
독자의 권리가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감히 진산님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글을 써 주세요.
추리도 있고, 반전도 있고, 풍부한 감성도 담겨 있는 대사형같은 글을... 아니 대사형을 능가하는 글을 써 주세요. 그래서 고룡을 뛰어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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