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다로.
작품명 : 칠등만세.
출판사 : 정연.
仁兄에게 드리는 세 번째 글.
仁兄. 가르치기를 글을 쓴 후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덮어두고 잊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야 자신의 글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 오류를 발견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제목은 항상 글이 끝난 후 또 한참을 덮어 놓았다가 심사숙고하라고요. 미리 제목을 정해버리면 제목에 글이 끌려가는 현상이 생겨서 의도를 벗어나게 된다고 하더군요.
물론 황석영 선생의 장길산은 신문 연재소설이다 보니 모든 연재소설이 그렇듯이 미리 제목을 정하고 쓴 글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장길산은 역사소설이라는 점도 알고 있고요.
仁兄. 저는 이 앞의 편지에서 작가의 의도意圖와 지향성指向性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색. 괴. 사’ 라는 작품에 대해서 양쪽의 손을 다 들어주고 왔습니다. 왜냐고요?
양쪽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더군요. 그 이유는 그 글을 읽어 봐주시기 바랍니다.
仁兄.
저라는 놈은 여전히 생각이 많은 놈인가 봅니다. 지금 저에게 엄청나게 좋은 일이 생겼는데도 일을 하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다니.......
仁兄. 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 사내는 해안에서 집채 만 한 바위를 산위로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원형의 바위를 밀고 올라간 사내가 그 형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바위를 산 정상에 세워야 하는데 뾰쪽한 정상에 미처 세우기도 전에 다시 굴러 내리고 있군요. 지친 사내는 쉬지도 못하고 다시 해안을 향해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군요.
아! ‘시지프’의 운명일까요?
참. 저 멀리 천길 단애가 보이는군요. 이렇게 끔찍할 수가! 한 사내가 거대한 사슬에 묶여 있군요. 독수리들이 날아와서 사내의 간을 뜯어 먹고 있군요. 그 사내의 죄는 단 한 가지. 인간들에게 불을 훔쳐다준 죄, 해가 떠있는 동안 간을 물어뜯긴 사내가 어둠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군요. 슬픔과 분노의 눈으로.......
“이 길로 육천리를 가면 아비의 나라가 나온단다.”
-아비는 아비의 나라가 잃어버린 비서(秘書)를 찾으러 왔단다.
하남현 허현(許縣)에 사는 육가명(陸佳名)은 노산(盧山) 육씨 28대 손으로 올해 나이 육십이다. 로 시작 된 문장이 34줄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군요. 그리고 35번째 줄에서야
“이고는 아직도 오지 않았느냐?” 고 묻고 있네요.
그리고 또 얼마를 읽다보니
.......싸리나무의 가지를 엮어서 담을 만들면 안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도둑을 막지 못할 만큼 담의 높이가 낮다는 것이 그것이고, 그 다음은 그 밑으로 구멍을 내기가 쉬워 동네 개새끼들이 연애질을 하기위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다는 것이 그것이다. 라고 눙치고 있군요.
仁兄. 어떤 교수가 말하기를 소설이란 그럴듯한, 믿을 수밖에 없게 꾸며진 거짓말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어떤 평론가이자 교수는 소설의 주인공은 이상(?)이 있어서 세상으로 나가야한다. 그러나 그 세상은 이미 부셔져버려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아니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가르치고 있더군요.
仁兄. 저는 지금 두 가지 이유에서 행복합니다. 하나는 신문에 제가 원하는 지면을 얻게 되었음이요 또 하나는 형의 소개로 좋은 책 ‘신기루’와 만났고 또 어떤 분의 소개로 기다려지는 글 두 편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형. 소설에는 단 한자의 글도 의미 없이, 불필요하게 쓰여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만약 형께서 ‘풍진기’와 ‘칠등만세’에서 그런 글을 단 한 자라도 발견해 내신다면 제가 취하도록 술을 사드리겠습니다.
아!
捌背. 등등등의 한자를 보면, 할 수만 있다면 그를 꼬여내서 술을 먹인 후 그 머리를 열어보고 싶을 정도로 감탄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풍진기’와 이 글 ‘칠등만세’ 가 어서 나왔으면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둘 다 중단 되었거나 가뭄에 콩 나듯이 글 올라오는 주기가 너무 늦군요.
仁兄. 도와주세요.
지금 중3의 아해가 아주 좋은 글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물론 이론은 약간 가르쳤으나 단 한 자도 수정하거나 더해준 일이 맹세코 없지요.
아직은 내지 못하게 눌러 놓고 있는데 그놈에게(물론 제가 반드시 먼저 보겠지만.)교제 및 선물로 사줄,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것이 바로 소설이다. 라고 가르칠 수 있는 글인데 조회 수 때문인지 중단내지 너무 더디군요.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를 동시에 갖춘 참으로 보기 드문 글인데 형이시여! 그 따뜻한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仁兄. 다수가 좋아하는 상품은 대개 좋지요. 그러나 예술, 작품은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겠지요? 다중의 지지에 보편의 탈을 훔쳐 쓰고 보편의 것들을 특수한 것들로 내몰아버린,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
왕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법 그럴듯한 소리를 하는, 제법 존경받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난 늙은이가 입을 봉한 채 무거운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걱정이 된 효자와 효부가 무릎을 꿇고 물었으나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식음을 전폐한 아버지를 위해서 아들과 며느리는 온갖 정성을 다 했으나 허사가 되고 말았지요. 아들과 며느리 또한 근심 속에서 물 한모금도 넘기지 않고 있자 노인이 그들 부부를 불렀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 무거운 입을 열었지요.
“얘들아. 내, 저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구나.”
“아! 아버님.”
부부 역시 근심에 잠기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이웃도, 또 그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의 이웃들도.......
병사들도 대신들도 이윽고는 왕도 정무를 팽개치고 말았다지요.
기우杞憂라는 고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해 본 것입니다.
仁兄.
다시는 부탁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두 편의 글에 대해서는 사랑과 격려를, 그리고 때로는 꾸짖음도 꺼리지 마소서. 그리하여 이 아우가 원하는 책을 하루속히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저는 형의 평을 보고 망설임 없이 ‘신기루’를 샀고 감사를 드렸으니 이제는 仁兄이 저의 평과 건의를 받아주십시오. 그리하면 앞으로도 형께서 권하는 책들은 저도 사서 읽겠습니다. 저는 오늘 밤도 쉬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이 밤도 좋은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