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노무라 미즈키
작품명 : 「문학소녀」와 통곡의 순례자 - 문학소녀 시리즈 5권
출판사 : 학산문화사 EX노벨
발행일 : 2009년 1월 7일
눈앞으로 다가온 토오코의 졸업. 그 사실에 쓸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나세와 새해 첫날에 신사에 참배를 가는 등 그녀와 조금 거리를 좁힌 코노하. 하지만 갑자기 나나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간 코노하. 그는 그곳에서 한 시도 잊어본 적 없던 한 소녀와 재회한다! 과거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미소 짓는 소녀.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코노하와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크게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그녀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문학소녀'가 '상상'하는 소녀의 진정한 소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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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권. 이때까지 끌어온 '코노하의 이야기'. '구원'을 다루는 이 이야기에서, 모든 인물들은 각기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은 그 상처를 하나하나 보듬어갑니다.
보통이라면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구원'은 가장 마지막에 있을 것입니다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존재는 주인공인 이노우에 코노하가 아닌 '문학소녀' 아마노 토오코이기 때문에, 그보다 한발 앞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코노하의 상처', 그리고 그 상처의 원인인 '아사쿠라 미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일단 책을 펼쳐들어 가장 마지막 컬러 일러스트를 보고, 프롤로그 직후 첫 장면을 보면서 정말 반갑기도 하고 무척이나 웃었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사서 지금 읽고 있던 중이라, 토오코 선배가(비록 거짓이라 해도) 그에 대한 열변을 토하며 어인(魚人)화 하는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여러 글을 읽을 때마다 '이 글은 무슨 맛일까?'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허나, 첫 개그를 넘어 시작되는 본편은, 가뜩이나 아슬아슬하게 짐작해오던 그 '무언가'를 가볍게 밟아 터트릴 정도의 격렬한 애증의 이야기.
이번 권의 '원작'은 일본의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입니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이 작품은 죠반니와 캄파렐라라는 두 소년이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 곳곳을 여행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평범하며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소심한 소년 죠반니와, 죠반니가 동경하는 완벽한 소년 캄파렐라. 어릴 적 미우와 함께 읽었던 이 책의 이야기가 코노하와 미우의 관계에 겹쳐지며, 그 심층의 이야기, 그리고 현실에서 감춰졌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며 쉴 틈 없는 격렬하고 위태로운 장면이 이어집니다.
4권까지의 코노하의 회상에서 나타나는 모습과는 완전히 판이한, 2권의 아쿠타가와의 편지의 내용으로 어느 정도 힌트가 주어지긴 했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병든 모습을 보여주는 아사쿠라 미우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권 초반에 보여주었던 고토부키와 이노우에의 훈훈한 장면 같은 것이 파도에 휩쓸리듯 쓸려져나갑니다.
폭풍처럼 모든 것이 깎여져나가고, 차근차근 쌓아온 성장의 증거들이 미우의 손에 부서져나가고,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추억마저 미우의 입에서 쏟아진 모멸에 의해 부정되는 순간...
그야말로 모든 것이 파멸로 흐르는 듯 한 그 상황에서, 갑작스레 나타나 코노하를 차분히 안아주는 토오코 선배의 손길이 너무나 따스해서,
그리고 고토부키, 아쿠타가와, 치아, 류우토─ 그리고 코노하가 그녀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소원을 선언할 때, 그리고 미우 또한 꽁꽁 싸매어놨던,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단 하나의 '진심'을 토해낼 때, 플라네타리움의 별빛이 그들의 마음은 물론 저에게도 쏟아진 듯 아름다운 불빛이 가슴을 관통하는 그 느낌.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고, 눈을 깜빡거리는 것조차 잊으며, 오로지 그 이야기의 세계로 충만하여, 오로지 책의 글이 살아 움직여 머릿속에 밤하늘과 그 속에서 눈물 흘리는 그들과 함께 '죠반니'의 애틋한 감정과, '칸타렐라'가 남긴 소원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토오코 선배의 인도로 이야기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미소 짓는 토오코 선배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뇌가 물렁해지며 가슴속이 충만해지는 따스함이 전해져 옵니다.
현실은 아름답지 못하고, 온갖 거짓과 광기와 추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아플 뿐인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고 이 세상에 나온 '문학'이 있기에, 그 문학은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줍니다. 바로 그것을 전해주는 것이 '문학소녀'인 아마노 토오코 선배의 역할이겠지요.
미야자와 겐지가 무엇보다 큰 이해자였던 여동생을 잃고 '은하철도의 밤'을 썼듯,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반영이고, 그것은 그저 '이야기'일 뿐일지라도 그렇기에 현실에 맞닿아 있습니다.
어둠과 증오와 의심이 휘몰아치는 이 현실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그 애틋한 '아름다움'. 철저히 숨겨져 있고, 오해와 바보 같은 아집으로 놓치고 있는 그것을 조용히 상기하고 전해주는 것. 결코 하지 못할 말을 대신 해주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 그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 줄 수 있는 '구원'의 하나겠지요.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단순한 애증의 이야기도, 성장의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만, 거기에 더 나아가 작가 노무라 미즈키의 '문학론'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음 권은 특별편. 그리고 7,8권은 연달아 아마노 토오코 선배가 주인공인 완결편입니다. 일본에서는 번외편이 또 나왔다고 합니다만 아직 한국에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치'인 아마노 선배가 가졌을 '상처'의 진실을 마주보고, 반드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줄 거라 믿으며, 다음권을 읽으러 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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