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칸자키 시덴
작품명 : 마지널
출판사 : 서울문화사
공급이 있다면 수요도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싸이코 서스팬스라는 장르는 정확히 어느 층을 겨냥하고 내놓은 타이틀인지 조금 이해하기 어렵네요. 마지널을 읽기 위해선 경계 인간, 오버 라인, 언더그라운드 피플즈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을 필요로 합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 경우 중2병이란 단어로 치환 가능한)을 가진 주인공 마야 쿄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극을 무대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이상자들의 고찰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1. 언더그라운드
현실과 다르다, 라고 하는 것은 라이트노벨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전제가 될 수 있습니다. 주 독자층의 연령대를 고려할 때 외면받기 쉬운 소재인데다 글을 전개함으로서 보완해 얻는 것보다 소재를 바꿈으로서 간단히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이상자를 모델로 캐러를 표현한다면 언더그라운드에 호응하는 마니아층을 겨냥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입니다.
그 말대로 마지널은 상당부분 취향이 갈리는 소설입니다. 충동을 자기혐오로 억누르며 아슬아슬한 상상으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정감은 없습니다. 독자가 이와 함께하다보면 자극적인 요소에 눈길을 끌기는 쉬우나 정신적으론 읽을수록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사이코 서스팬스에서 가장 쉽게 자극을 어필할 수 있는 직접적인 심리묘사와 광기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비주얼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마지널은 이를 교묘하게 보완했습니다. 주인공의 심리와 독백보다는 대화와 묘사로 상황을 서술합니다. 적절히 첨가된 개그 코드는 의외로 적정수준.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표현된 라이트한 고어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마지널
하지만 제 경우엔 썩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의 타이틀인 마지널. 실재로 경계 인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단어는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동료, 대립하는 인물까지도 모두 수용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갖고 있고, 주인공이 직접 언급하며 세계관의 심장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 조금 살을 보태어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 선'으로 끝내지 않고 전후자에 비추어 어느 한 쪽에 발을 담글 용기가 없어 양자를 모두 포용하는 비겁자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조의 표현이지만 그것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흔한 설정이긴 하지만 어릴 적 주변인으로부터 얻은 트라우마에 의해 흉악한 본성을 가지게 된 주인공이 지극히 인간적인 자기혐오로 충동과 싸우며 자신을 마지널이라 조롱하는 부분.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자조하는 것밖에 모르는 주인공의 중2병적인 성격에 클레임을 걸고 싶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작가가 설정과 세계관을 독자에게 주입하는 형식의 전달 방식은 득점하기 어렵다고 보는데 정확히 그 부분이 해당되는 문체라서 레이블이 극찬하는 압도적인 필력에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렵겠지만 심리묘사 쪽을 거의 배제한 부분도 역시 감점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3. 싸이코 서스팬스.
서스팬스라고 해도, 주인공의 대립각이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점이 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서스팬스라는 부분을 충족하고 중후반부부터 뿌려진 복선을 한꺼번에 수습하는 반전이 존재하긴 하나, 뜬금출연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구요.
주인공이 싸이코패스이기 때문에 가지는 가장 골치아픈 단점 중에 하나가 바로 주인공과 사상을 공유할 수 없는 독자들은 작가의 메세지를 전달받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언행과 그들이 가지는 신념 같은 사상들을 보면서 저는 작가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글을 썼는가 하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보통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답을 찾아 나오지만, 이런 류의 소설엔 그런 배려가 없습니다. 아울러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주인공의 일그러진 행각 하나하나에 공감할 수 없는 만큼 그 주변 인물들에게 더 시선이 가는, 그렇게 몰입감이 떨어지는 부분도 군데군데 있습니다.
그냥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은 무얼 토대로 만들어진 건지 그 저의를 찾아낼 수 없으니 마무리가 썩 상쾌하진 않습니다.
4. 고어
엽기살인을 다루는 것치곤 상당히 평화로운 부분들이 강조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실재로 자극적인 신은 일부러 배제한 건지 냄새만 내내 흘리고 짧은 장면 전환으로 끝내 버립니다. 특히 매력적인 성격의 히로인이 중심이 되어 주인공을 움직이다 보니 히로인의 일상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썩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게 됩니다.
비슷한 류라고도 할 수 있는 플라토닉 체인의 경우는 양념 조절이 실패해서 알 수 없는 소설이 되었던 반면, 마지널은 소재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연출로 언밸런스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독특한 색채를 냅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보여지고 일정부분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기에 앞서 우선 하고싶은 말은, 마지널의 경우 자의식 과잉의 중2병 스타일 좋은 남자 주인공의 등장을 시작으로 좀 작위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 텔링을 따라가는 게 약간 피곤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여타 싸이코패스 소설에 비해 상당히 라이트하게 읽을 수 있었고 언밸런스한 학원물 분위기로 접근하기 쉬운 글임에는 분명하나 역시 [미군마짱] 수준의 경계에 있는 난해한 인물심리나 자극적인 연출은 내 취향엔 좀 아니올시다 라는 것입니다.
1권은 평범하게 봤지만 2권을 사겠는가 하면 상당히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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