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명 : 백야행
출판사 : 태동 출판사
“나츠미, 하루 중에는 태양이 뜨는 때와 지는 때가 있어.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지. 물론 실제 태양처럼 정기적으로 일출과 일몰이 찾아오는 건 아냐. 사람에 따라서는 태양이 가득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또 계속 어두운 밤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면 그때까지 떠 있던 태양이 져버리는 것이야. 자신에게 쏟아지던 빛이 사라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지. 지금 나츠미가 바로 그래.”
유키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은 알 수 있었다. 나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이지.”
유키호가 말을 이었다.
“태양 아래서 산 적이 없어.”
“설마.”
나츠미가 웃었다.
“사장님이야말로 태양이 가득하지 않아요?”
하지만 유키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눈빛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나츠미도 웃음을 지웠다.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그 태양을 대신했다는 게 뭐예요?”
“글쎄, 뭘까— 나츠미도 언젠가는 알 떄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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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이 너무 길었나요?ㅎㅎ 더 이상 쓰면 저작권혐의로 기소될지 모르니 이만하고 사족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제목과 인용문에서도 짐작하실 수 있듯이 소설의 주제는 밝지 않습니다. 라기보다 굉장히 어둡고 칙칙합니다. 하지만 글은 대놓고 그 어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작가도, 주인공인 남자와 여자도 어디 한군데서 그들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낙담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들을 따라 하얀 어둠 속을 걷고 있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는 한 살인사건과 함께 시작됩니다. 경찰은 몇몇 범인으로 여겨지는 확실한 용의자들을 확보합니다. 하지만 취조를 하고 뒤를 캘수록 경찰은 머리를 쥐어 싸매게 됩니다.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진 채로 수사가 종결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일견 미결된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두 아이의 성장기 입니다. 하지만 여느 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아닙니다. 곧 여러분들은 이들이 관련해 있거나 그럴지도 모르는 찜찜한 사건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중간중간 뜬금 없이 생판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 둘 끝날 때쯤 여러분은 어느새 미결된 사건의 진범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책의 중반이 채 되지 않아 진범의 윤곽이 확실히 잡히게 됩니다. 반전 이라고 하기에는 식상합니다. 결정적 증거가 확 하고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박진감 넘치지도 않습니다. 작가는 범인의 꼬리를 여기저기서 길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왜? 어째서? 범행의 동기는 여전히 오리무중 입니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이라면 어쩌면 이미 그 동기마저 파악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수십 년 째 범인을 쫓고 있는 형사. 미결된 사건의 담당이자 한 발 늦게 진범의 냄새를 맡은 비운의 사나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늙은이가 진범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이상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ㅎㅎ
분류는 추리물로 되 있지만 저에게는 견우와 직녀의 삐뚤어진 사랑? 같은 로맨스의 느낌으로 와 닿았습니다. 추리물은 별론데 로맨스는 좋아! 하시는 분들에게도 적당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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