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항몽 (박상준)
작품명 : 진가소사
출판사 : 동아발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내겐 정말 흥미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1. 성실한 글쓰기.
‘창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1) 형식으로 주석판이 따로 나온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본문보다 주석이 더 많습니다.
진가소사는 그 작품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달린 주석을 보면서 작가의 창작과정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했는지 읽는 내내 느끼게 했습니다.
첫 번째 주석은 명나라 무과 실시연도에 대한 것이고 마지막 주석은 양광이란 지역이 광동,광서라는 풀이입니다.
이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성스런 집필이, 이 작품을 진씨 집 아버지와 아들의 일대기(傳, 記)가 아닌 작은 사(史)로 사실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이야기에서 스치는 무술역사와 공간, 그리고 숱한 노래들-무협 소설 중에 가장 많은 시와 노래가 등장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에 대한 주석이 작가가 그리는 무림 강호에 대한 설정을 성실하게 뒷받침해줍니다.
물론 이래서 모자란 점도 있는데요, 천천히 읽어야 이야기의 제 맛을 느끼는데 이즈음의 급한 세대에 그런 자세가 쉽게 나오겠습니까?
2. 머리부터 발끝까지 탄탄한 구성, 생동감 있는 이야기
‘해그림자가 동쪽으로 길어질 무렵, 석양으로 가득한 길은 고즈넉하기만 했다.’
‘그해 화창한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1권 첫 문장과 6권 마지막 문장인데요, 이 사이에 작가의 설정은 돌같이 단단합니다. 오류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읽는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런 탄탄한 이야기틀 속에서 작중인물이 생기를 얻어 작가의 뜻과 달리 그들의 생각대로 길을 가는데도--2) 작품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벼 되는 이야기와 사건들은 강물이 되어 흘러갑니다.
그렇기에 진가소사는 돌 같고 물 같습니다.
3. 상처입은 아버지와 아들을 건너, 그 주변인의 따뜻한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에 대한 무협은 임준욱작가의 농풍답정록이나 陳加笑傳, 촌검무인등에서 감동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요, 이 작품은 그 맥을 충분히 살려가고 있습니다. 드라마처럼 빠르게 감동시키는 것보다는 출판사 광고대로 수채화 같습니다.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이란 상처를 입고 입히는 개인이요 또한 이러한 유아독존의 개인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관계 속의 사람입니다. 작가는 그래서
‘네가 사마귀라면 다른 약자를 해치려고 달려오는 수레에 대해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묻습니다. 주인공은 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사부의 이 질문을 궁리합니다. 그러면서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고, 약한 자를 돕기위해 과감히 행동합니다.
나도 작품이 종결되기까지 이 질문을 아주 가끔, 생각할 것 같습니다.
4. 강호 서열과 무공에 대한 작가의 생각.
작품의 강호 무림에는 무공 서열--3) 이 없습니다.
천하제일인이 없습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정도입니다.
주인공 진 소명이 몇 번의 강적을 물리치고 협행을 해도 아직 별호가 없습니다.
다른 책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전음입밀도 딱 한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이기어검이나 강기는 이야기 속의 무공입니다.
검이 닿지 않아도 사람을 상하게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은 치열합니다. 읽으면서 좋은 사람들이 다칠까봐 긴장하게 됩니다.
불타는 도박장 -상황이 떠 오르지않습니까, 불타는 도박장^^- 에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면은 그 끝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5. 문장
동사가 힘이다. 가능하면 부사라는 잡초는 피하라.--4) 는 말은 영어문장에 맞지만, 우리글에는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글은 오히려 풍요로운 꾸밈어를 많이 써야 문장이 좋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선배작가들이 사용한 ‘시나브로, 는실난실하는’ 등의 꾸밈어가 많이 사용하는데요 처음 보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뜻이 잘 안 통해도 문장에 빛과 소리가 좋다는 느낌이 종종 들었습니다.
6. 대중성.
이런 작품이니 시장반응이 어떨지 짐작하실겝니다.
대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지역 대여점을 검색하고나서 몇 군데에 전화해서 빌려 읽었는데요, 내가 좀 불편하지만 앞으로 그 대여점을 자주 찾을 생각입니다.
대여하거나 읽기가 쉽지 않은 분들도 시간나시면 한 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6권까지 나왔습니다.
진가소사 따라하기^^
1) [나,황진이] 주석판-김탁환,푸른역사 작가의 말 중에서
2) [진가소사] -동아발해 4권을 마치며 중에서
3) ‘2차대전 무렵 일본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강요하던 랭킹주의가 왜 2000년대에 한국에서 재현되야 하는지 안타깝다.’파우저교수 사람과 사람 2009.8.18일자 경향신문
3)을넣은 것은 작가가 진가소사에서 무공을 서열화하지 않은 이유하고는 관계없이 감상자의 개인적 생각임.
4)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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