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용환
작품명 : 배틀워커
출판사 : 로크미디어
문피아에서 연재되던 머나먼 하늘이 배틀워커로 제목을 바꾸어 출판되었습니다. 연재는 읽지 않기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하다 간만에 만화방을 들렀더니 배틀워커라는 다소 지리한 제목의 책이 있더군요. 출판사 로크미디어를 평소에 탐탁치 않게 생각했습니다만 센스무지로소이다의 제목을 짓는 것은 보니 미움이 배가 되는군요. 배틀마스터, 배틀엠퍼러, 배틀클로저... 그 사이에 배틀워커를 집어넣을 생각을 하다니. 만화방에서 두시간 동안 찬찬히 읽고 다시 빌려가서 읽을까 하다 그만 사버렸습니다.
확실히 제목은 머나먼 하늘이 어울립니다. 그 것도 전장에 피어오르는 초연 사이로 보이는 뿌연 하늘이 떠오르는 제목이죠. 작품의 장르를 혹자는 퓨전판타지(총과 마법이 나오니), 이계환생물(어쨋거나 이세계로 뛰어드니)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군담소설-전쟁이야기로 보는 것이 가장 알맞습니다. 이야기의 두 축은 전쟁과 사랑입니다. 이세계인 세아란과 황녀 아렌이 겪는 전쟁과 전장에서 피어나는 둘 사이의 애정, 바로 애정이라고 보다는 영원한 동반자쯤으로 합시다.
이야기의 시작은 쇠락하는 제국 레벤시아의 황녀 아렌이 바다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이세계인 세아란을 만나면서부터 입니다. 실은 세아란은 대마법사에 의해 세상을 바꿀 운명을 가지고 소환되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 것보다는 황녀의 신분과 노예의 재능이 세상을 뒤바꾸게 될 기폭제가 되죠. 검술에 재능있던 황녀 아렌은 레벤시아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세상을 떠도는 용병됩니다. 세아란은 군인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 이세계에서 노예가 되고 황녀를 만나 용병이 되지만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전쟁의 재능을 전장에서 발휘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를 전략가라 표현하지만 아직까지는 전술의 재능에 더 가깝죠.
여기까지면 여느 이계물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배틀워커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는 한가지 중요한 변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총이죠. 그리고 이 총의 등장을 빈틈없이 받쳐주는 세계관 또한 굳건합니다. 이 곳의 총은 화약의 부족과 생산의 제한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마법과 검에 적당히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총의 위력을 잘 표현해 총병부대는 전황을 한순간에 뒤바꾸게 되는 현실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에 걸맞게 각국은 근대국가에 한걸음 다가가는 군주정을 취하고 있죠. 사병을 가질 수 없는 귀족이라거나 식민지와 노예의 설정은 잘 들어맞아 보입니다.
사실 이러한 설정에는 한가지 열쇠가 숨어 있습니다. 그건 총에서부터 각국의 대치상황, 노예, 식민지 등 세계의 기반이 되는 설정을 19C 중반 유럽에서 가져왔다는 것이죠. 레벤시아 제국의 쇠락과 반민중적 왕권은 바로 프랑스를, 여러 나라로 쪼개어져 혼란을 겪고 통일을 꾀하는 루일란트 동맹은 바로 북독일 연맹을, 국민의 절반이 피지배민이며 육군 최강이라는 카논제국은 바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해상세력이 최강인 레스틴 왕국은 영국을 각각 말하고 있습니다. 노예의 유입과 제1차 인클로저 운동도 나와있고. 총의 설정에 관해서라면 문피아 연재물을 뒤져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치죠. 경기관총을 라이언투스, 중기관총을 와이번 투스라고 표현하는 것에서는 나름대로 작가의 노력-센스를 발휘하려고 하는-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사자의 이빨, 와이번의 이빨이라니..
역사적 사실을 소설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무성의함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 마법만 가져다 놓아도 그건 판타지가 됩니다. 중요한건 그 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죠. 지금까지의 소설들은 구현의 중요함은 뒤로 한채 설정을 짜맞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들여오는 것에 독자들이 부정적이었습니다. 배틀워커에서는 절제와 생략의 묘미가 잘 살아 있습니다. 최초의 전투장면을 읽은 독자들은 다소 딱딱 들어맞지 않는 전황에 불만을 표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전쟁이 탁자 위의 전황도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잠시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세아란이 발휘하는 전술과 기략을 발견하는 것이 이 소설의 백미가 되겠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는 군데군데 오마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음 비판의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취향이라는 점에서는 플러스 요소가 되기도 하겠죠. 사실 은하영웅전설 오마쥬는 너무 확연히 드러나서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도 아직까지 불안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 역시 총과 관련된 것이죠. 간단하게 검과 마법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총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총이 바꾸는 것이 아닌 바로 사람-민중이 바꾸는 것이겠죠. 그러니 세아란이 이세계에서 영웅이 되어선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아렌과 세아란은 격변하는 대륙의 전화에서 주도적 위치에 설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은 한손에 움켜쥘 수도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일 불안했던 것이 총과 함께 했던 제약, 화약과 생산이라는 제한이 너무 쉽게 풀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만, 3권 연재분을 잠깐 들여다 보니 벌써 초석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더군요. 이 부분은 앞으로의 소설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니 굉장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가 소설 상의 등장인물이 주인공에 한정되는 부분인데, 지금까지는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로 독자에게 말하면 되었지만 앞으로는 이야기의 규모가 그들의 행적을 독자들에게 대신 전달해줄 관찰자들이 필요합니다. 이건 2권 마지막 부분에서 잘 해결되었죠.
아무튼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중세전보다는 근대전에 로망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번쯤읽어보고 앞으로의 전개가 잘 이루어진다면 괜찮을 작품 같습니다. 아직까지는는 이야기의 군더더기가 없었으니 기대해볼만 하겠군요. 다소 빠른 전개라 개인적으로 아쉽긴 합니다만..
전쟁이라면 독보적인 작품 여왕의 창기병이 존재하기에 다른 작품에 눈이 차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지금까지 봐온 냉철하고 잔혹한 전쟁기계들에 질리셨다면 가슴여린 전략가인 세아란을 지켜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작가분이 꽤 오랫동안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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