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점에 갔다가 몇 번이나 집었다가 끝내는 다른 책을 빌려갔었던 책...
작품성은 있지만 흥행성은 없다는 평가를 받은 책...
그러니만큼 운곡이란 신인 작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마니아 층을 형성시켜준 책...
운곡의 <등선협로>를 읽기 전 제가 가진 인상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집었지만 대여를 그만 둔 것은 책의 표지와 색깔이 무협지 치고는 너무 가볍고 밝아서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뒷표지와 1권 앞부분에 등장하는 듬성듬성한 독백체의 문체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스토리가 치고 나가는 재미가 없어 보여서였습니다.
실제로 <등선협로>는 박진감 넘치는 빠른 전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등선협로>의 매력은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드문 드문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사건들이 후반부에 들어서며 얼개가 엮어져 독자의 궁금증을 점차 해소시켜나간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이야기의 내용이 기존의 무협에서 우리가 쉽게 접한 것이라면 글에 대한 호기심이 고조되지도 않고 그와 더불어 그러한 의문이 해소될 때의 감탄도 덜 하겠지만,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만은> 이야기의 소재가 새로웠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라 글읽기의 긴장이 유지되었습니다.
표면적 주인공은 서기영이지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며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육'씨 성의 사내에게 일어나는 일. 그 모티브 하나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영화<MEMENTO>를 연상시켰습니다.(읽어보신 분들은 알거라는...)
화산파의 두 사형제의 질기디 질긴 애증, 모용가 아들의 애절한 삶은 글읽기의 또하나의 선물이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는...간간히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소설의 양념 역할을 충분히 해 낸다고 생각합니다.
운곡의 글쓰기 솜씨에 반했습니다.
보통 치밀한 구성을 통해 스토리 자체에 주목하게 만드는 소설은 그것을 '주'로 내세우며 독자가 이를 강하게 주목하게 만드는 글쓰기를 하게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완전히 계획한 체 서두르지도 않고, 특유의 여유있는 호흡과 문체로 그것을 '주'로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잘 억누른 체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작가의 솜씨는 분명 일품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유머와 눈물까지 낼 수 있었으니 운곡의 글을 기대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운곡의 글을 읽으며 감히 김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애초에 세상에 관심이 없었던 게지
세상을 우습게 본 것은 아니었다네"
*작가에 대한 존칭은 편의상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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