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임홍준
작품명 : 진호전기 5권
출판사 : 뿔미디어
도대체 진호전기가 개연성 없는 양판소로 취급될 만한 수준도 아니고, 강간 사건 하나로 왜 이렇게 불만들을 갖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간이라는게 범죄적으로 아주 악질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설의 소재로 강간이 등장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 하더군요. 솔직히 이해 안 됩니다. 강간을 한 금모인에게 분노한다면 모를까 왜 연지하와 진호에게 분노를?; 심히 당혹스럽습니다.
비난의 초점은 대략 5개로 압축해 볼 수 있더군요.
1. 히로인인 연지하가 진호를 칼로 찔렀는데 여기에 전혀 개연성이 없다.
2. 개연성이 없다는 것은 강간당해서 임신했다고 좋아하는 남자를 칼로 찌르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3. 어떻게 주인공이 좋아하는 히로인이 강간을 당할 수 있느냐.
4. 청소년이 주된 독자층인 장르소설에 강간신이 등장하고, 특히 그 대상이 히로인이라면, 그것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5.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고 책을 보고 있었는데 심히 불쾌해진다.
먼저 1번과 2번을 하나로 묶어 살펴보죠. 좋아하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게 개연성이 없다라. 생각해 봅시다. 중국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가부장제였고 남성본위였습니다. 여기서 '여성'의 인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연지하에게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는 금모인입니다. 진호가 아니죠. 여기서 진호가 금모인을 죽였으면? 연지하는 새되는 거죠. 애아빠는 죽었지, 자신이 좋아하는 건 애아빠를 죽인 놈이지, 진호가 순결에 집착을 해서 넌 강간당하고 애 가졌으니 안 되 하고 연지하를 버리면 연지하는 갈데 없이 나가죽어야죠. 강간당하고 애가졌는데 애아빠는 없다면 그 여자의 운명은 끝이나 다름 없습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 응시 기준에는 이런 것도 있었죠. "과부가 재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으면 그 아들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서 -_-;; 과부, 미혼모 등등은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지름길이라는 겁니다. 중국이 조선보다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자들 발을 묶어서 전족까지 하던 덴데요 -_-;; 연지하가 진호 버리고 금모인에게로 돌아선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죠.
다음으로 3번. 어떻게 히로인이 강간 당하느냐? ... 아니 히로인은 킹왕짱 무적입니까. 약먹고 뻗었는데 언놈이 "왠 차려진 밥상"하고 덤비면 당하는 거지. 그렇게 장르문학과 비교되면서 추켜세워지는 순수문학 중에서도 여주인공 강간당하는 거 많습니다. 하다못해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소위 "명작" 중에서도 찾아보면 많아요. 그런 장면이 교과서에 안 나오는 것 뿐이지.
자 4번. 청소년이 주된 독자층이고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거 참 -_-;; 요즘 음란물은 초등학생도 보고 하다못해 섹스까지 하는 세상입니다. 물론 이런 세태가 건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19금 딱지 붙어서 영화 나와도 애들은 볼 거 다 보는 마당에 새삼스레 청소년... 하면서 강간 문제에 대해 따지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청소년 문제를 들고 나오실 거면 살인문제부터 좀 따져주시죠. 강간보다 살인이 훨씬 더 심한 범죄인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뭐 복수가 살인에 대한 행동 동기다... 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현대 법치국가 사회에서 국가가 형벌권을 갖고 있는데 사인이 임의로 그것을 행사해서는 안 되죠. 물론 이것이 진리는 아니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논쟁은 법철학적 관점이 요구되니 넘어가기로 하죠.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마지막 5번. 불쾌해 진다. 답이 없군요 -_-;; 사실 이건 매우 개인 취향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뱀발. 연지하가 강간 당한 것에 대해 심히 불만이 많으신 원인은 아마도 "내 여자"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여성 성범죄 문제가 이슈가 되면 가장 쉬운 감정적 공격 방법이 "내 여자, 내 어머니, 내 누이" 뭐 이런 식이죠. 어떤 찌질이가 댓글로 "평소 행실이 어쩌고, 입고 다닌 옷이 어쩌고, 당해도 싸고 어쩌고"하면 누군가 밑에 "그게 니 엄마나 여동생, 여자친구였어봐라"하며 댓글을 답니다. 뭐 이런 거죠 =_= 다른 사람이 당하는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내 주위 사람이 당하는 일에는 신경을 씁니다. 아니라고요? 인터넷에 여자가 당하는 걸 도와줬다가 오히려 내가 범죄자가 됐네- 식의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세요. 과연 어떤가. 댓글들은? 물론 여자분들이 잘못한 것은 압니다. 그러나 과연 그 여자분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청바지를 입고있으면 바지를 벗길 수 없으므로 강간이 성립되지 않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으면 강간에 대해 여성이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나라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판례문을 읽어보면 아직까지도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라고 써주십니다. 우리나라 성문화는 아직까지 조선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보는 거야 즐거우니 남자들은 여자들이 짧은치마 입고 거리를 다니면 헬렐레 하면서 보죠.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여자친구가 그러고 다니면 심히 못 마땅해 합니다. 대단히 이중적인 잣대죠. 또한 대략 20-30년 전까지만해도 성인여성에 대한 인신매매는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의 인신매매는 성범죄 목적의 인신매매를 말합니다. 속칭 '업소'에 팔아넘기는 것이죠.) 80년애 들어서야 범죄로서 성립되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올해 판결로 기억합니다만, 지하철에서 여성의 다리를 핸드폰 카메라로 '도촬'한 것이 범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당할뻔 했다"는 것은 손쉽고도 당연하게 "당했다"라거나 "평소 행실이 어쨌기에"로 연결이 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성범죄는 비밀로 하고, 감춰야할 대상이죠. 강간죄와 추행죄 등은 그래서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검찰이 알아서 조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조사할지라도 피해자가 재판을 원치 않는다면 재판에 제소하지도 않습니다. 가해자 부모가 앙심먹고 피해자 동네에 가서 "저 집 딸래미가 어쩌구"하고 떠들면 그 여자는 인생 쫑난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유야무야 묻혀서 넘어가는 강간, 성범죄 사건을이 꽤 많죠. 그런 나라에서 여자가 강간, 추행을 당할 뻔 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뭐겠습니까? "도망"이죠. 잘못하면 자기도, 가족들도 X되는 거니까요. 남겨진 남성분, 즉 도움을 주려던 분이 불쌍하지만 -_ㅠ 그걸로 여자분이 일방적 비난을 받기도 좀 그렇죠.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걸 =_=; 진호전기에 대한 비난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내 여자가 나를 배신 때리고 딴 놈에게 갔다. 것도 내 배에 칼 빵 놓고!" 이런 감정적 분노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차분히 다음 권을 기다려 봅시다.
진호전기에 대해 못 마땅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제발 좀 논리에도 맞지 않는 글로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는 건 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하아. 좀 흥분해서 쓰다보니 주절주절 두서가 없습니다. 양해를. 그래서 수정했습니다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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