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민영
작품명 : 팔란티어(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의 개정판)
출판사 : 황금가지
* 시작에 앞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임을 밝히고, 편의상 평어를 사용함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볼까 말까 고민되는 책과 반드시 써야만 되는 감상간의 상관관계.
가끔은 영화니 소설이니 하는 장르를 떠나, 너무나 유명하기에 오히려 보기가 꺼려지는 작품들이 있다.
굳이 이러한 반항적 심리에 대한 변명을 해보자면, 하나는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간접적 접촉으로 인해 작품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고도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말하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셀리의 원작에서 보여 지는 프랑켄슈타인은 분명 큰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원작을 보지 않고도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알고자 하는 욕구가 소비되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작품 본연의 가치가 유명세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의 가중치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에서 오는 실망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 하겠다.
팔란티어(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는 두 번째 이유로 인해 그동안 읽어 보는 일을 미루고 미뤄왔던 글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나의 어제의 우려와, 그제의 우려와, 8일 전의 우려와, 2주에서 6일을 더한 우려와, 거기에 1608시간하고 37분 13초를 더한 우려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어져 버린 우려와, 우려와, 우려와, 우려들을 합한 우려는 한마디로 괜한 우려에 지나지 않았음을 밝힌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밀려오는 감정-그것은 감동과 만족스러움과 소름과 경외감과 질투를 포함한 뭐라 정의할 수 없는-에 휩싸여 한참 동안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를 놓지 못 하고 있었다.
짧은 감상을 통해서나마 이러한 기분을 풀어 놓지 않는다면 분명 얼마 동안 이 이야기를 쉬이 떨쳐 버릴 수 없을 것이기에 이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떠한 점이 그리도 놀랍고도 만족스러운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 정연한 구체적 이야기를 풀어 놓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역량으로 인해, 조잡한 감상이 되어버리겠지만……
2. 퍼즐의 완성-1800피스를 완성하라.
프롤로그의 첫 페이지, 그 하나의 퍼즐로 시작된 이야기는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에 와서는 하나의 거대한 퍼즐의 완성을 자랑한다.
한권 당 600여 페이지 남짓으로 구성된 개정판 3권의 1800여의 페이지들은 하나라도 빠져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퍼즐의 조각과도 같았다. 필요 없는 늘어짐은 전혀 없다. 평소 책을 빨리 읽는 편에 속하지만 팔란티어의 경우 평소보다 오랫동안 책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쓸데없는 장면의 낭비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공들여 쓰여진 만큼 당신도 공들여 읽을 의무가 있음을 책 스스로 증명하는 것처럼.
하나로 관통되어진 유기적 이야기가 뿜어내는 생동감. 그 거대한 기운은 책을 읽는 내내 모습을 드러낸다.
3. 게임(판타지)과 현실 그 공존의 균형추.
개정판 팔란티어의 경우 일반소설(스릴러)물로 분류되어 있지만, 그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게임(판타지)로 지칭하는 것 역시 낯설지 않다. 3-4종류 게임소설을 접해보았지만 대부분 게임소설에서 현실파트의 쓰임새란 게임소설과 판타지소설을 분류해주는 역할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 진다.
그러나 팔란티어의 게임과 현실의 유기적 인과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게임과 현실 그 공존의 균형추를 맞추어 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마 게임소설의 여신이 있다면 그녀가 들고 있는 저울은 기울어진지 오래일터. 그녀의 찡그린 얼굴이 눈에 보이는듯싶다.
4. 인간에 대한 고찰 그리고 살아나는 인물들.
소설은 입체적 인물이 중요해. 그럼 중요하지. 이것은 돼지갈비가 맛있으려면 양념이 중요해, 혹은 수제비가 맛있으려면 반죽이 중요해와 같은 말-어쩌면 2세기가 지난 후에는 입체적 인물과 양념과 반죽이 같은 의미로 쓰여 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감칠맛 나는 양념과 쫀득한 반죽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것처럼 입체적 인물을 빚어내는 일 역시 쉽진 않다. 무슨 일이나 그러하듯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팔란티어의 등장인물들은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고찰이 인상 적이다. 인간이 가지는 오욕칠정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어느 것에 더 큰 비중을 주느냐에 따라 성격도 성향도 다른 인간군상의 모습들.
다르면서도 또한 같을 수밖에 없는 그런, 그래서 인간이라 부르는 우리들이. 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이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이러한 인물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이야기가 풍성하지 않다면 어떠한 이야기가 풍성하다 할까. 심지어 주인공 원철과 그의 게임 속 캐릭터이자 무의식이기의 자신의 일부이기도한 보로미어가 전혀 다른 두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에 혀를 내둘를 수밖에 없다.
5. 소비자를 질투 나게 만드는 생산자에 대하여.
장르 문학계에서는 이영도가 그러했고, 순수문학 소설가로는 박민규가 그러했다. 작가가 만들어낸 생산물을 소비하는 독자가 만족감, 즐거움 혹은 그와 상반된 불쾌함과 짜증이 아닌 질투라는 생소한 감정을 소비하게 만드는 그런 생산자들.
작가 소개를 펴보니 심지어 글쓰기에 모든 것을 내던지신 분도 아닌 너무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분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문학의 신이 있다면 원망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신이시여! 재능은 부디 공평하게 나누어 주시길.
독자이길 망정이지 내가 작가였다면 문학의 신을 저주하며 ‘신이 된 작가’라는 이름의 책을 내놓았을지도.( 물론 농담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유행에 민감한 장르소설의 경우 어떤 글을 접하냐도 중요하지만 그 글을 언제, 어떻게 접하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서두에 밝힌 읽기를 미뤄왔던 이유인 지나친 기대감에 대한 부담 외에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재미가 함께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걱정 역시 발목을 붙잡았다.
이제와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며 한마디 하자면, 명작은 시간이 흘러도 명작이라는 상투적인 말을 주절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길 바라며.
*책방에서 구하기 힘드신분들, 개정판이 도서관에 있습니다. 밀리언셀러클럽으로 나왔기에 아마 대부분 구비되어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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