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안토니 에버릿
작품명 : 로마의 전설 키케로
출판사 : 서해문집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보면 키케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키케로의 여러가지 작품이 교양으로서 비교적 넓게 읽히는 서양과 비교했을때 지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아는건 솔직히 말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힘들다.
키케로의 정치적 노선은 보수적인 옵티마테스 즉 원로원파였으며 다수의 중도 원로원파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즉 우리가 원로원파, 민중파로 번역하는 옵티마테스와 포플라테스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책에서는 당시 민중파와 원로원파는 뚜렷한 구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내생각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옵티마테스와 포플라테스의 신분상의 구분은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양자의 차이는 정책적 당파적이라고 하기보다는 권력을 위한 투쟁의 차원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민중파와 원로원파의 차이는 무엇일까? 민중파는 빈민과 군사 둘중하나 또는 둘다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자들이다. 여기에서는 민중보다 군사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겠다. 그러한 의미로서 보면 우리가 원로원파로 생각하고 있던 술라나 폼페이우스 또한 민중파에 속한다고 할수있다. 실제로 이들의 행보 역시 민중파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술라의 경우 자신의 권력획득에 방해하는 자들을 모두 숙청하고 자신의 편에선 군인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줌으로서 토지분배를 해결하였다. 폼페이우스의 알다시피 카이사르와 동맹을 맺으므로 해서 이를 해결하였다. 즉 문제는 토지분배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에 그렇다면 이들이 왜 원로원파로 구별 되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당파의 수장으로서 역활을 했기 때문이다.
공화정말기에 들어가면 소수의 가문에 집중된 형태가 된다. 키케로같이 신참자가 집정관에 오르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키케로의 경우 돌라벨라와 원로원과의 갈등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집정관직이 한사람에게 집중된 경우도 없었다. 그경우는 마리우스가 유일하다. 즉 소수의 가문에 의해서 국가의 요직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다수의 계층이 정치의 요직에서 소외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외된것은 아니다. 즉 가문과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피보호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각가문의 수장들이 그우두머리로 위치한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 바로 그것이 문제인것이다. 즉 원로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실질적인 부와 함께 권위가 있어야 되었고 그것을 얻게 해주는 것이 군대이다. 이러한 경우가 마리우스와 술라이다. 마리우스나 술라 모두 외국 특히 동방의 전쟁을 갈망한 이유는 그것이 부와 권위의 증대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키케로의 경우는 흥미롭게 변호사업을 통해서 원로원에 들어오게 된다. 로마는 문관과 무관의 구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는 문관인 것이다. 즉 로마의 확대로 인해서 그확대 재생산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전쟁은 돈이 든다. 그렇다면 로마의 전쟁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국유지등 로마 주변 식민지등에서 나오고 실제적으로 대다수가 원로원들의 소유지이다. 즉 원로원들의 재산이 어떻게 보면 국고로 들어가서 전쟁자금이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마리우스의 개혁이후로 군대가 사병화 되면서 원로원들은 전쟁의 확대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로원 계층안에서 권위와 부를 더 얻고 보다 더 강한 영광을 얻기 위해서 전쟁을 원한 사람도 있다.
즉 여기서 생각해보면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전쟁에 대한 해석도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폼페이우스를 원로원파 카이사르를 민중파로 구별하기 보다는 보수와 개혁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이다.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모두 민중의 지지얻고 있었고 폼페이우스가 원로원파를 위해서 카이사르와 싸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민중에 대한 지지 즉 권위를 두고 카이사를 제거하려 하였다고 볼수 있다.
어쨌든 내생각이다. 쯥 비정치적이니 댓글도 적을꺼고 그냥 인문도서니 읽는 사람도 적을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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