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 생략합니다.)
1.
무승과 학승이라는 설정은 간단하게 생각하면 상당히 설득력 있어보인다. 소림사는 선종사찰이면서, 무림문파의 하나이니 무공을 읽히는 무승과 불교경전을 연구하는 학승이 존재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소림사에 대해서 다룬 몇몇 무협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신승에서의 '학승'만 문제가 되는가? 신승에서 등장하는 학승처럼 번역과 경전정리만 하는 승려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사상적 논쟁보다는 '수행'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사상적인 면을 등한시하고 완전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수행의 한 방편으로서 사용될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수행이다. 그런데 무승은 무공 익히느라 수행안한다고 하더라도 학승은 왜 수행을 안하는가? 무승도 학승도 '수행'을 안한다면 그것이 무슨 사찰인가?
그리고 기본적인 교리에 있어서, 그리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불교적 수행자에게 있어서, 생사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목숨이 아까워서, 힘이 없어서 외세에 굴복했다는 신승의 '학승'은 불교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자, 모독이다.
가장 대표적인 선종사찰에 불교적 수행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니...... 이전에 소림사를 다룬 작품들은 대개가 무공과 수행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균형을 읽게 되더라도 다른 부분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신승'은 무림문파로서의 '소림사'만을 남겨둔 채, '선종사찰'로서의 소림을 없애버린다. 아무리 무협이 상상력의 세계라고 해도 너무 지나치다. 나아가 작가는 소림사에 대해 글을 작품을 썼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 흔한 불교적 우화나 게송 한 마디 나오지 않고, 불교적 사상이나 가르침에 대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앞으로 진행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신승'의 의미도 무공이 '신'처럼 높다는 의미로 쓰여질 것 같다. 아니면 세력갈등을 잘 조율해낸 영웅으로의 의미이거나. 수행의 결과로서, 뛰어난 인격과 깨달음을 가진 존재로서의 '신승'아니라.....
소림사를 다루면서 '불교'적인 부분을 완전히 빼버린다는 것은 무협적 설정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정말 상상을 초월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과거라면 나름의 흥미를 가졌겠지만, 지금은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상상력에 불과했다. (앙꼬없는 진빵이라고나 할까......)
2.
소재적인 측면에서 맥이 빠져버린 만큼 다른 재미를 찾아야 했다. 먼저 주제적 측면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크게 느껴지는 주제가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 찾자면 '운기칠삼'으로 대표되는 '명문'과 '낭인'의 문제가 있는 것도 같은데,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다루어진 문제이므로 신선한 맛도 없고, 작품내의 가벼운 분위기 때문인지 가슴에 와닿지도 않았다..
마교첩자와 무림대회와 관련된 부분이 조금 흥미를 끌기는 했으나, 치밀한 구성으로 짜여진 추리물로 보아주기에는 수준이 많이 떨어졌고, 그저 정각의 좌충우돌 생존기 정도로 본다면 보아줄 만한 정도였다. 이후 마교에 가서도 비슷했다.
그럼 주인공은 어떠한가? 비뢰도보다 빨리 나왔다면, 상당히 재밌는 성격이라고 보아주었겠지만, 지금은 별로 새로울게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무공'을 발전시켜나가는 재미가 있는가? 그것도 아니올시다였다. 체계적인 무공발전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무공'에 대한 설정이나 비중이 너무 작았다. 더욱이 주인공이 얻은 무공 중 '역근경'은 써먹지도 않고, 중간에 나오다 만다.
3.
전체적으로 보면 특색이나 개성이 없는 것 같다. 불교없는 소림사라는 설정은 특이했지만, 그로인해 정통무협은 아니게되고, 마교첩자와 관련해서는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지나친 우연으로 인해, 추리무협이라고 부르기에는 힘들고, 실전무협이나 비정무협처럼 비장감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범람하고 있는 '비뢰도'류의 명랑물과 가장 비슷한 것 같은데, 그보다는 유머가 적고, 조금은 더 진지한, 아주 애매한 작품인 것 같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신승은 소재는 불편하고, 주제의식은 별로 새롭지 않고, 그 외에 개성적인 면이 별로 없는 아주 밋밋한 평작이었다
4.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
개인적으로 꽤 많은 무협을 읽어 왔다. 솔직히 출판되는 거의 모든 무협을 읽어 왔다. 그리고 아무리 작품 수준이 떨어져도, 취향에 맞지 않아도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었다. 그러나 얼마전 처음으로 중도포기작이 나오고야 말았다. 비뢰도와 묵향이었다. ^^;;; 무협인생 20년에서 최초의 중도포기작이 하나도 아니고 두개씩이나 한꺼번에 생겨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비뢰도는 14권 초반, 묵향은 15권까지 읽는 인내력을 보였다는.... ^^;;;)
중도포기를 하게된 것에는 비뢰도와 묵향에도 일부 책임이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나자신에 있었다. 과거에는 모든 여가시간을 무협을 통해서만 보내었는데, 이제는 '공부'(^^;;) 쪽으로 여가의 방향을 선회하다보니,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대한 선택이 더욱 까다로워진 것 같다. 이제는 '저항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정말 몇 되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대한 '비판의식'이 더욱 높아져 버렸다. ㅠ.ㅠ 이러다가 '무협'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신승을 읽으며 이러한 위기감이 단순한 위기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이라면 평균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인데, 더 읽을 생각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신승은 앞으로 많아지게될 것 같은 중도포기작에 세번째로 이름을 올릴 작품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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