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운의 비정 강호 -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
한상운의 <비정강호>가 4권으로 완결되었다.
복건의 지배하는 명문세가 홍가를 가운데 놓고 홍가의 셋째 아들 홍장환의 중심으로 펼쳐지는 뒷골목 풍경을 보여 준다. 비정한 아버지의 배신과 음모에 걸린 아들과 딸,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상운의 독특한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긴장감과 사실성>의 균형을 통해 강물을 흐르듯 이어진다.
주인공인 홍장환은 가문의 사람이지만, 뒷골목의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홍장환을 통해 두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낮의 세계는 명문세가가 지배하지만, 밤의 세계는 뒷골목이 지배한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밤의 세계를 만들도록 허락한 명문세가들의 탐욕이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밤의 세계도 결국은 낮의 세계가 지배하는 것이다. (풍생이 마지막에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런 낮의 세계의 탐욕을 거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천박함, 나약함, 비열함들은 결국 낮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본질의 다른 모습>일 뿐인 것이다. 낮의 세계가 겉으로 보여주는 명문세가의 특징들-정통성과 대의명분-의 뒷면이 결국 뒷골목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인과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더라도 뒷골목의 인물들은 자신의 삶에 철저하게 정직하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는 점에서 대의명분 속에 숨어서 뒷골목과 똑 같은 짓을 벌이는 명문세가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정직하다.
4권의 마지막에서 홍장환은 낮의 세계와의 타협을 거부한다. 주인공(아마도 작가 본인)은 이런 것들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은 인정하지만, 이런 것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낮의 세계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깨달음조차도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비정강호>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가? 거대한 낮의 세계에 대항하는 하나의 부나방이 바로 홍장환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바로 그런 절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4권의 마지막 부분은 탁월하다.
40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못한다. 그들은 비정규직으로 허덕거리고 있다. 시민단체가 이들에게 경제사면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제단체나 금융기관은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그런 경제금융기관들은 엘지카드에 2조나 되는 돈을 턱 내 놓는다. 엘지카드가 무너지면 나라 경제가 위험해진다고 하면서.
나라 경제가 위험할 정도의 일을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한 경제-금융기관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알고도 가만 있었을까? 나라의 경제가 위험할 정도로 일이 커져야 쉽게 특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비열한 시장 논리-그들의 탐욕-가 다시 살아 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낮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들은 늘 밤의 세계를 천박하고 비열하다고 조롱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낮의 세계가 밤의 세계에게 내세우는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자신들의 도덕적 해이에는 침묵한다. 결국 이 세상의 주인은 <탐욕을 경제로 말바꾼> 자기들이라는 말이다.
밤과 낮의 구분이 사라지는 대동세상이야말로 한상운이 <비정강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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