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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 인위
작성
03.11.28 13:46
조회
1,380

  무협 독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책을 읽을 만큼 읽었고 이를 통해 다분히 객관적인

비교를 할 수 있다고 오판합니다. 무협 입문 후 100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스스로

많은 작품을 보았다 평가하고 만권의 책을 읽은 후에도 스스로 많은 책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둘 사이에 얼마의 격차가 있다 한들 결국 스스로 오만에 빠져

다른 새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 뿐인 것입니다.

  

무협을 향한 길은 많이 읽고 적게 읽고를 떠나 끝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함입니다.

Fantasy계열을 좋아하는 나이어린 분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심하더군요.

저또한 10년 전에도 많은 책을 읽었다 장담했지만, 하루에도 몇권의 책을 읽으며

보낸 세월을 따라 지금에 이르러선, 읽고 던진 책의 수에 집착해 스스로 독서광이라

지레 단정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지금 똑딱거리는 시계바늘 초침이

부르르 떠는 동안에도 책들은 무수히 양산되고 있으니까요. 많이 읽고 적게

읽고를 떠나서 얼마나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작품들을 만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세인들의 평가가 자신과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표무적은 어느샌가 또한번 다가온 충격이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어라? 내가 볼 때는 재밌긴 했지만, 충격받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사람 참

말 한번 실없이 하는 사람이군'  라고 말입니다.

남이 재밌게 본 소설을 깍아내림으로서 내 자신의 소설을 보는 눈이 높다는

것으로 판단해버리는 고약한 버릇이 아직까지 관성처럼 남아있는 저로서는 그

그릇된 자만심을 쉬이 내치지 못하고 있기에,

아무 소설에나 대단하단 추천을 갖다 붙인다며 저를 경박스럽게 여길 어느 누군가의

존재를 상상하면서 그 비웃음에 대한  자괴감까지 미리 앞서 느껴버립니다만...

어쨋든 그것을 감내하면서까지 이 글을 적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보표무적을 읽고 경악한 배경엔, 어쩌면 '혈리표'의 잔상이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일련지도 모릅니다. 역시나 Go!무림 신춘무협 당선작인 그 소설입니다.  

혈리표는 간단히 평하자면, 어디나가서 "이 소설 내가 썼다"라고 말하고 당당히

가슴펼 수 있을 법한 작품입니다. 제가 나가는 글의 방향과 정면으로 부합되는

필체이며 그 글을 읽으면서 동질감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묘사력이 있고 단어의 조합이 빼어나며 그 어휘활용 창고의 면적이 넓고 중후한

편이라는 게 제가 느낀 혈리표였습니다. 스스로의 문장력에 자신이 넘치는 거죠.

하지만 불필요할 정도로 단어의 무게를 늘린 것이나, 정형화된 글에 대한 관념이

빚은 지 모를 두텁고 딱딱한 시선의 이동, 어느샌가 중후함이 지나쳐 고정화까지

된 듯한 등장인물들의 대화, 그리고 상상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듯한 꽉막힌 스토리가

머리 속 뉴런의 통로를 껄그럭거리면서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물론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렇게 쓸 것 같다."는 스타일이라, 혈리표를

읽으면서 느낀 잔정은 대단했죠. 하지만 그 많은 장점들이 오히려 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엔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보표무적 3권을 집어들게 된 것입니다.

보표무적 3권을 읽으면서 저는 수없이 경악했습니다.

장중하고 위엄있는 단어를 이용하여 훑듯이 묘사를 해나가는 혈리표완 달리,

보표무적은 간단하고 짜임새있는 구성을 이용해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알맞은 대화를 넣음으로해서 사건들을 말끔히 풀어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마치, '그렇게 쓸데없는 장신구를 치렁치렁 매달지 않아도, 이렇게 시원히 맵시를

낼 수 있잖아' 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간결하고 매끄럽게 읽히도록 쓴다는 것,

단순히 그것만 가지고 따진다면 '작가가 자유를 넘어 방종에 치닫는 먼치킨 류'의

가벼움 또한 범주에 속하지 않겠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절대 아닙니다.

주인공이 나이에 맞지 않게 방정맞고 독단적이며 그 수준이 유치하다 판단되는

작품들의 작가는 대부분 초출이라 묘사에 대한 강박감이 강해서 적시적소에

알맞은 배분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보표무적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마치 초록빛 풀내음의 향긋함이 공기처럼 호흡기로 스며들어 머리를 편안히

채워주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유치하지도 경박스럽지도 않게 웃음을 주는 대화와,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의 행보마냥 부드럽게 날아가 적시적소에 꽂히는 스토리- 그리고 독자가

일부러 나서서 대입하지 않는 한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은근히 표현하는 사회

세태 풍자는, 일방적 설교를 받았을 때 느끼기 쉬운 '반발감'을 극도로 줄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글을 쓸수 있다는 것에 놀라, 이런 책이라면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만 저였습니다.

재미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근래 나온 학사검전이나 신승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흔히 소설의 가치는, 작가와 소설 그리고 독자-  이 셋에 있다 하지 않습니까.

후에 시대에 밀려 그 가치가 퇴색된다 할지라도 '바로 이 작품이다!'하는 탄성이

스스로에게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짧고도 긴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구겨놀

장탄성 혹은 격동의 한자락이 될 것이기에...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근래 발간되는 소설들 중 후대에 꼭 물려주어야 할 신무협 유산이라 단정했던

용대운 작가의 '군림천하'-.... 사실 이 작품으로 용대운 작가분을 새로이

인식하게 된 것에 대해선 너무 때가 늦었나 싶어 송구스럽기 이를데 없지만

그 글을 읽으며 작가분께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멋들어진 연출을 하시더군요.

전업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바로 그 작품을 맨 앞 자리에 가져다 놓았지만 그 옆에 자리를 하나 더 늘려,

보표무적을 함께 얹어놓고야 말았습니다.

신춘무협 금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보표무적 정말 대단하군요.

기억에 남는 놀라운 재미의 작품은 많지만,

가슴에 남는 무협은 아직 최후식님의 '표류공주' 뿐인데, 그 자리에 과연 보표무적이

들어가 줄 지는 이후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느냐에 달린 듯 하군요..

괜시리 사설을 길게 적어가며 자기방어기재를 유감없이 발휘한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마칩니다.


Comment ' 7

  • 작성자
    Lv.1 헌원항아
    작성일
    03.11.28 14:50
    No. 1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검모수
    작성일
    03.11.28 16:56
    No. 2

    동감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몇분있는데,
    (예를들면 좌백, 임준욱, 이재일, 운중행, 용대운등)
    장영훈님의 활발한 작품활동 앞으로 기대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3.11.28 23:01
    No. 3

    보표무적. 지금 돈이 없어 못사고 있다는...;;
    으음. 어서 사고 싶은데... ㅠ.ㅠ
    아, 보표무적 4권, 건곤권 5권은 과연 언제쯤 돼야 나오려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은검
    작성일
    03.11.28 23:52
    No. 4

    매끄러우면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문장... 참 좋죠!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8090임
    작성일
    03.11.29 12:51
    No. 5

    무협지를 본지 20년이 넘었지만 서점에 갈때나 빌릴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책을 읽는 동안은 행복 그자체 입니다.
    처음 무협지를 볼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새록새록
    남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 이지만 여자보다 더 좋은게 무협입니다.
    예쁘고 쌕시한 여자를 좋와하듯이 완성도가 좋은 작품을 찾고 평가하는
    것이 본능 입니다. .......요즘 청용장을 읽고 있는데 행복 그자체 입니다.
    보표무적도 꼭 구입해서 읽어 봐야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배고파
    작성일
    03.11.29 21:46
    No. 6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어!!! 보표무적!!!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포자
    작성일
    03.12.09 00:25
    N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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