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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의 데뷔작. 광검유정.

작성자
Lv.33 로르샤흐
작성
03.11.26 14:46
조회
1,835

치열한 연극운동의 투사에서 속세의 대중소설가로 변절한 인간. 장르에 대한 천재적인 직관력의 소유자. 게으름을 유지하는 능력은 특급. 로맨스 계를 평정한 혜성. 판타지 소설 유령 작가. 망한 장르문학 웹진 편집장. 울티마 온라인 복음 전파의 선도자. 마님. 죽작가.

제가 이리 저리 돌면서 주워들은 소설가 진산에 대한 평들입니다.

음. 막상 정리해 쓰려니 잘 정리가 안되는군요.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쓰겠습니다.

[2세대 무협]

2세대 무협 최고의 성과는, 사람들이 잊고 있던 강호라는 세계를 되찾게 했다는 부분입니다. 강호를 되찾다. 무협소설이란 장르 자체의 중흥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무협이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상을 찾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 이전 한국 무협소설을 보면,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주인공은 있지만 사람이 없고, 사람이 사는 강호 역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임아행이 '사람이 사는 곳이 곧 강호다' 라 했지만, 2세대 무협 이전의 소설들에서 주인공의 활약이 아닌 사람의 삶이란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세대 무협에선, 사람들은 풍자조가 어떤 식으로 사는지, 당문의 독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과거 시험의 풍경이 무엇인지, 하류 잡배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적들을 즈려밟으며 여자들과 쎄쎄쎄하기 위한 강호가 아니라, 사람들과 주인공이 사는 강호가 나오는 게 바로 2세대 무협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편 무협]

무협소설에서 단편이란 상당히 쓰기가 힘듭니다. 거의 대부분이 주인공의 일대기 형식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커다란 사건을 무협소설은 다룹니다. 그리고 사건을 만들어내는 갈등 역시 큽니다. 하지만 단편이란 인생의 모든 면이 아니라 극적인 단 한순간을 표현하는 형식입니다. 무협소설이란 커다란 이야기를 단편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풀기란, 말 그대로 코끼리를 냉장고 집어넣기나 같을 정도입니다. 설사 어떻게 단편을 만들려 해도,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기에 익숙한 글쓰기는 단편이란 근접 박투에선 힘을 쓰기가 영 애매합니다. 창이 백병지왕이라 하나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적을 대적하기엔 비수보다 위력이 떨어지는 거나 같달까요.

[광검유정]

보통 소설을 쓰면 작가의 모습이 제일 드러나는 작품이 첫 작품이라는데, 이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방울소리에 쫓긴 한 검객이 무덤을 지키는 노인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소설 속의 공간적 배경은 무덤과 바로 그 주변뿐입니다. 거기다 사건의 모든 진행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희곡을 가장한 소설이랄까. 단편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정된 공간과 사건이 폭발하는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하는 단막 희곡의 원칙에, 철저히 충실한 작품이 이 소설입니다. 해서 보통 단편 소설보다 이야기의 밀도가 아주 높고, 갈등의 폭발 역시 극적입니다.

보통 무협소설에서는 대화만으로 사건 진행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지루해지기 쉽고, 작가가 직접 소설 속에 개입해 이야기해주기보다 아무래도 사건을 전달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진산이 이 작품에서 대화만으로 이야기 전달에 성공한 건, 역시 대학 시절 자신이 공부한 희곡이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르였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합니다.

진산이란 작가. 떼아뜨르 3부작이란 로맨스 소설에선 자신이 대학시절 배운 것들을 오지게 써먹은 데 비해, 무협 소설에서는 뭐 장르의 특성도 있겠지만 대학시절 공부의 활용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장편 데뷔작인 [홍엽만리]에선 작가의 대학시절 정서가 오지게 풍깁니다만.

광검유정의 기본적인 이야기 얼개는 이른바 1세대 무협과 큰 차이 없습니다. 어떤 이는 그 점이 광검유정의 한계라 했지만 전 그점이야말로 광검유정의 미덕이라 봅니다. 무가 있고 무를 행하는 인간들이 있는 곳이 강호입니다. 무라 하는 극단적 폭력을 가진 인간들의 극적인 삶을, 진산은 무덤 주변이란 좁은 공간과 단 세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그렇기에 전율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나 다르면서 밀도있게 그려냈기에.

[마치는 잡상]

무협에 손을 떼다시피 한 후 판타지 소설 두 편 말아먹고 로맨스 소설에서 박 터트린 진산, 그녀가 다음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 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왕이면 무협 소설을 썼으면 합니다만 어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화려한 누님 고수와 귀여운 강호초출 소년의 알콩달콩 강호 기행기 같은 걸로 누님연방의 기세를 거들어줬으면 하지만, 희망일 뿐입니다.

무협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무협 소설 내용 중 제일 설렁설렁 보는 부분이 무술 수련 묘사와 대결 묘사입니다. 피와 눈물 속에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되 보통 사람이 아닌 이들과 그들의 세상인 강호를 좋아하는 데 비해, 내공이 몇 갑자고 혈도가 어떻다 해도 이상하리만치 끌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또 다른 세상, 하지만 무가 있기에 극적인 세상. 그런 세상의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하나 더]

무협 소설을 습작하는 이들에게, 장편보다 단편을 먼저 써보기를 권합니다.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을 짧은 글로 먼저 써보는 겁니다. 짧은 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그것을 길게 풀어냄으로써 장편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이 두서가 없군요. 혹시 된다면 다음에는 [백결검객] 감상이나 써볼까 싶습니다.  


Comment ' 11

  • 작성자
    Lv.11 風蕭蕭
    작성일
    03.11.26 15:31
    No. 1

    좋은 글이군요.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진산님 글 무척 좋아 하는 편인데 광검유정은 못봤습니다
    초기 장편 소설 부터(홍엽만리)봤으니까요..
    구할수 있다면 한번 보고 싶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이길조
    작성일
    03.11.26 17:43
    No. 2

    전 홍엽만리가 데뷰작인 줄 알았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박정현
    작성일
    03.11.26 20:02
    No. 3

    아마 작가가 아닌 프로 작가로의 등단은 홍엽만리가 맞을 겁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인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마약베개
    작성일
    03.11.26 20:50
    No. 4

    칠석야와 한권에 묶여서 나왔던 진산님의 첫 출판작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네요 -_-;;(ㅜ_ㅜ 머리에 점점 석화가..)
    혹시 그게 광검유정인가요?....
    근데 왜 머릿속에 내용이 기억이 안 나지 ㅠ_ㅠ..
    전 진산님 작품 중에 제일 좋았던건.. 홍엽만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세검(洗劍)
    작성일
    03.11.27 01:45
    No. 5

    2세대 무협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정말 공감가는 말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슈아~~
    작성일
    03.11.27 07:00
    No. 6

    박정현님.. 용소야를 기억하시는지... 저입니다. ㅡ,ㅜ

    하아... 은자림의 정현님 맞으신지.. 하아..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63 번수탄
    작성일
    03.11.27 11:48
    No. 7

    이재일님의 칠석야와 같이 나왔던건
    청산녹수였죠...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만화량
    작성일
    03.11.27 16:23
    No. 8

    청산녹수에 같이 들어있습니다. 이우형님의 비애도 같이 있구요^^ 근데 마님이 썼다는 환타지 소설은 뭐죠? 마님의 최고 히트작은 뭐니뭐니해도 마님되는 법일텐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88골드
    작성일
    03.11.28 20:34
    No. 9

    시공사에서 나온 테라의 전쟁일겁니다. 근데 마님 개인이 쓴 작품이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 작가명엔 무슨 창작집단이라 했던걸로..기억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만화량
    작성일
    03.11.29 01:34
    No. 10

    창작 집단 발키레 였던가요? 거기에도 마님의 손길이... 작품수준은 괜찮다고 하던데... 망했죠 ㅡ.ㅡ;;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이길조
    작성일
    03.12.02 00:29
    No. 11

    아, 이글을 너무 늦게 쓰게 되었군요... 님 부탁입니다. 광검유정을 어디서 구해서 보셨나요? 알려주세요~~ 전 진산의 팬이랍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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